[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진료가 불편한 분의 사연> 

정신과에 상담받으러 다니고 있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좋은 분이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다니는 건데 저분은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병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상담하고 나서 돌아올 때 너무 허무해서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선 최대한 저한테 맞춰주려 애쓰는 표가 나요. 좋은 분 같은데도... 여전히 그냥 지켜보는 시선 앞에만 서있는 기분이고 여기에 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상담이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정신과 상담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두 사람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경우 내담자는 자신의 힘든 점을 충분히 표현해야 하고, 치료자는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화와 다른 점이 있겠지요. 

내 내면의 힘든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이런 상담 과정 자체가 힘들고 부담이 되어서 정신과에 오기를 꺼려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상담은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보통 정신과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환자의 표정이나 행동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로 상태를 평가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치료에 필요한 정보의 90% 이상은 환자가 하는 말을 통해서 습득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기분, 감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직접 인지한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그것들은 단지 추측만 할 뿐입니다.

환자가 부인과 사별 후 슬픔과 우울감에 병원을 찾아온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정신과 의사는 '내가 부인과 사별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라고 가정하고, 또는 정말로 부인과 사별한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그때 내가 무슨 감정이었나'를 회상하고, 이 사람도 이와 비슷한 기분이겠다는 가정 하에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으로 추정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과 나아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합니다. 기존에 연구되어온 상담 관련 지식과 지속적인 진료 경험을 통해 점점 더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에 익숙해지겠지만, 100%에 도달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상담자는 여러 방면해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또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흔히들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공감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공감을 통한 환자의 이해와 더불어 적절한 치료를 하려면 정신의학 제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 이 점들을 강조하고, 또 공부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의학지식에 대한 것은 충분히 배우고 평가를 통해 검증을 하지만, 공감능력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는 의학 교육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공감능력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또 어느 정도 타고난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는 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 공감능력이 특히 중요한 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정신과에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진료의가 될 것이고, 머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더라도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정신과 상담에서 환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치료자에 대한 신뢰입니다. 상담에서 본인 이야기를 충분히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대부분 치료자를 믿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공감과 관련하여, '나한테 이렇게 힘든 일인데, 내 마음을 다 이해해 줄까?',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할까?'와 같이 바로 사연 보내주신 분과 같은 생각을 흔히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의 고통을 이야기해도 치료자가 충분히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뢰와 연관된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비밀 유지입니다. 정신과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치료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이 이야기가 어딘가로 새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누구도 편하게 상담에 임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전혀 남이었을 정신과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어려운 이야기를 전부 꺼내도록 하는 것은 무리된 요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유대관계를 정신과에서는 라포(rapport)라고 부릅니다. 라포는 저희가 정신과 수련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듣고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환자와의 라포 형성이 정신과에서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라포가 커지면 치료에 있어서 직접적인 도움이 되며, 때로는 라포 형성 자체만으로 큰 치료 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라포 형성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시간입니다. 치료자의 역량이나 환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 요소들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힘을 얻기 마련입니다. 보통 상담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되려면 최소한 몇 개월은 지속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그만큼 치료에 필요한 정보나 내용이 쌓이는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라포 형성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의미 있는 대화들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우선은 치료받고 계신 선생님을 믿고 꾸준히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내 내면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도록 긴장을 푸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만남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도 인간이기에 한계는 있습니다. 저희도 환자의 태도나 대화 내용에 따라 긴장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환자가 미운 생각이 들거나 상담이 고통스럽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정신과 상담이기에, 신뢰가 그만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위 사항들을 잘 숙지하시어, 힘들다고 표현하신 상담 시간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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