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정신과 약은 대체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
‘약을 몇 년간 먹고 있는데, 끊고 싶은데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요.’
‘이 약을 계속해서 먹다 보면 중독되는 것 아닌가요?’

공황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다 보면 필연적으로 듣게 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내가 먹고 있는 약을 과연 언제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이 ‘해로운’ 약을 혹시 평생 먹어야 하는 건 아닌가. 

 

국내에서 몸의 건강에서 마음의 건강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공황장애라는 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신과적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신과적 치료와 약물에 대해서 편견과 근거 없는 도시 괴담들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정신과 약을 한 번 먹으면 평생 끊지 못할 정도의 의존성(dependence)이 생겨난다든지, 약을 일정 기간 먹게 되었을 때 하루 내내 졸려서 생활에 지장이 갈 거라는 생각이나, 뇌나 장기에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들이다.

약물에 대한 편견과 함께 정신과 치료 자체에 대한 편견 또한 흔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될 경우 마치 주홍글씨와 같은 사회적 낙인이 생겨나 자신이 지원할 학교, 면접 보게 될 직장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순간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괴소문 등이 정신과로 가는 문턱을 높이기도 한다. 

사진_픽사베이


약물치료 중단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웃프게도 애초에 약을 먹지 않고 참아내야 한다는 말, 한 번 먹으면 그냥 영양제처럼 오랫동안 먹으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공황장애 치료에 정답은 없다.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릴 수도 없다.

감히 ‘약은 언제든 끊을 수 있다’라거나 ‘약은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때에 따라 많은 기간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과 약이 꼭 필요한 이도 있을 테다. 다만 이 칼럼에서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정신과 약은 분명 중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약을 중단해도 될지를 가늠하려면 현재 자신이 공황장애와 약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황장애에서 약을 쉽게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 :  심리적 의존과 안전추구행동

공황장애는 병의 특성상 약을 갑자기 중단하게 되었을 경우 증상의 편차가 상당히 크게 나타난다. 특히 투약을 유지할 때는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가도, 갑작스러운 약의 중단 후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감에 대처할 수 없어 금세 다시 공포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면 약을 끊을 엄두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포감을 느끼는 상황이나 경험을 회피하려 하는데, 정신과 약은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초조감을 줄여 일시적으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종의 안전지대(safety zone) 역할을 한다. 본능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를 안전추구행동(safety seeking behavior)이라 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약이, 결국 무의식적으로는 안전함에 대한 일종의 상징으로 인식되어버린다.

안전추구행동의 반복은 심리적 의존을 만들어낸다. 급기야 약이 없으면 외출을 못 하거나, 일상생활을 잘 해내다가도 문득 약이 다 떨어진 것을 알고 난 후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황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약은 삶에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공황장애뿐만 아니라 여러 불안장애,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 불면증에서도 약물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생겨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공황장애 치료, 나는 약에 얼마나 비중을 두고 있나? 

공황장애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약물치료는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공황장애에서 나타나는 심한 신체적 불편함, 불면, 생활의 제약에서 비롯한 우울감 모두 얼마간의 약물치료를 통해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은 약물치료가 치료의 알파요, 오메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약물치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약 자체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즉, 약을 이용한 치료는 공황장애를 극복해나가는 데 있어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약물치료가 의사의 판단과 처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동적 과정이라면, 약물치료를 하는 중이라도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본인의 다양한 측면에서의 능동적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능동적 노력에는 공황장애를 이해하고 공황과 불안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익히기 위한 노력,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해소하는 수단을 찾아보는 것 등이 해당될 것이다. 

 

공황장애, 약을 중단해도 괜찮을까? 

정신과 영역에 있는 모든 질환에서 약물치료를 중단하기 위한 명확한 지침은 없다. 개인의 증상 경과와 치료 과정에 치료받는 이의 수만큼 셀 수 없이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신과 질환의 진단기준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항목이 있다. ‘사회적, 직업적, 혹은 다른 중요한 삶의 영역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경우’라는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추상적이긴 하지만, 공황장애에 있어 약을 중단하는 기준은 충분히 증상이 호전되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인지의 여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신과적 증상이 호전되었다 해서 약을 중단하게 될 경우 약에 대한 심리적 의존으로 인한 불안과 자주 재발하는 병의 특성으로 인해 얼마든지 이전과 같은 수준의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과한 의존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성급한 중단 또한 공황장애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점검해본다면 자신이 약물치료를 중단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판단하는 데 있어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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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공황장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공황장애 반응의 본질은 스트레스 반응이다. 취약해진 몸과 마음의 상태에 스트레스가 덧씌워지며 자율신경계는 과잉 활성화되고, 때로는 극심한 신체 반응을 유발한다. 하지만 어떤 연구는 인구의 60% 정도는 살아가며 한 번쯤은 공황발작에 가까운 불안 반응을 경험한다 밝혔다. 그만큼 공황반응은 드물지 않으며 처음과 끝이 있는, 지나가고 나면 후유증이 남지 않는 정상적인 생리 반응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신체 증상들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오해가 ‘증상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버리게 되면 공황반응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갇혀버리게 되는 셈이다.

자신이 겪는 반응들이 불편하긴 하지만 ‘뭔가 몸에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피로와 스트레스가 만든’ 반응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충분히 좋아졌다 할지라도 마음 한켠에 공포감과 의구심이 남아 있다면 스트레스가 심한 어떤 시기에는 언제든 공황증상이 나타나고, 악화되는 과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2) 불안과 공황반응에 대처할 수 있는 ‘무기’가 있는가? 

약물치료는 공황장애를 비롯한 불안장애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불면, 불안이 금세 가라앉고 단기간에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옵션 중 하나라 하겠다.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약물치료의 비중이 과하다면 자연히 약을 중단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때로는 약물치료만으로 가벼운 수준의 공황증상이나 불안은 조절이 되며, 그 정도로 충분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심한 수준의 불안을 여러 차례 겪거나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았던 이들은 약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약을 중단한 후에도 불안 반응이 시작될 때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호흡법이나 명상 기법들, 불안을 조장하는 생각을 다루는 인지적 기법에 대한 연습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며 공황장애 증상을 다시 마주할 가능성은 꽤 높다. 공황의 본질은 스트레스 반응이며, 우리는 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판단해 약을 중단하더라도 언제든 증상은 우리에게 나타나기 마련이며, 이에 대처하고 다루기 위한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언제라도 공포감은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3) 스트레스를 관리할 방법이 있는가? 

대개 공황장애의 첫 시작은 극심한 압박감과 신체적 피로가 겹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나타나곤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 여부가 증상의 경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꼭 기울여야 할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꼭 비용이 많이 들거나,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과 ‘성취감’을 두 축으로 생각해보자. 운동, 취미활동, 사람들과의 만남 등 어떤 영역이든 즐겁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또,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적절하고 건강한 결정 방법을 고민하거나, 일하는 때와 휴식하는 때에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어느 정도 선을 그으려는 노력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4) 공황장애 반응과 증상들을 얼마나 삶에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받아들이기’와 ‘허용하기’. 이 두 키워드가 공황장애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황장애의 치료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이 두 가지다. 

'나는 공황장애라는 병과, 그 증상들을 얼마나 내 삶에 받아들이고 허용할 수 있는가?' 

사실, 일정 기간의 치료를 거친 후 공황장애로 인한 불편함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 할지라도 100%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감,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쇼핑몰과 같은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어쩔 수 없이 찌꺼기로 남는다. 일상의 불편감과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반응을 파도의 이미지로 연결해보자. 파도는 어느 순간 세차게 몰아치다 다시 잦아지길 반복한다. 이처럼 스트레스와 공황 반응 모두 내 삶에서 갑자기 와서 불편감을 주다가, 어느새 지나가곤 한다. 모든 삶의 고통이 그러하듯이. 그러니 이러한 증상들과 싸우고 다투는 데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한순간 증상이 나타난다면, 불편하겠지만 이를 물리치려 하기보다 내 옆에 잠시 ‘앉혀둔다’ 생각해보자. 옆자리가 잠시 소란스럽고 신경 쓰이겠지만 그저 왔다 갈 것이고, 지나고 나면 사라질 증상들이지 않은가. 증상이 언제든 나타나고 잠시 불편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이 증상들이 나타났을 때 잠시 내 몸과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도록 허용해보자. 증상들이 제거하고 싸워야 할 것이 아닌, 그저 왔다가는 불편한 손님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공황장애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워질 테다. 

 

글을 맺으며

첨언하자면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 약물치료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약을 중단하는 것 또한 맹목적인 치료의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실은 약물치료를 중단하기 가장 좋은 때는 역설적이게도 ‘약을 중단해도, 아니면 유지를 해도 별 상관이 없는 상태’일 것이다. 오히려 약에 대한 거부감과 과도한 의미부여가 약물 치료 자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찾아오는 두통에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사용하듯, 약간의 불편감에 항불안제를 사용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공황장애에 대해 좀 더 건강한 인식을 갖고 이를 다루기 위해 노력하며, 한편으로 이 과정을 내 삶의 전체적 맥락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약물치료를 중단하는 때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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