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Doctor's Mail] 가족이 성추행을 해요

기사승인 2020.05.24  01:57:14

공유
default_news_ad1

[정신의학신문 :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20대 여자입니다. 시험 준비 중이고 되게 우울하고 재미없게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지금 집에 내려와 있는데 아빠가 가슴을 노골적으로 쳐다봅니다. 제 착각 절대 아니고, 친오빠가 제 몸 만진 경험이 몇 번 있으며 아빠도 되게 가부장적이고 여자 하찮게 보는 옛날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거의 20년 넘게 싸웠고요. 다 이겨내고 공부 잘하고 있었는데 최근 집에 내려와 보니 아빠가 좀 변하고 있습니다. 노망난 표독한 늙은이 같습니다. 더 신경질적이고 더 감정표현 심해지고 더 노골적으로 가슴을 보고 더 권위적으로 변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싫은 티를 더 팍팍 냅니다.

노망이 난 걸까요. 이미 친오빠 성추행 경험이 있어서 친족이 성적으로 건드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혹시 조언해 주실 수 있나요. 예전에도 그런 기운이 있었지만 요새 더 심해집니다. 엄마는 최대한 피하라 하는데 화가 나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됩니다.

서울에 다시 올라갈 수 있기는 한데 시험공부로 예민한 사람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에도 면박을 주니까 숨 막혀서 집에 내려온 거거든요. 시험 전까지 집에서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제 시험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될까요? 상담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연입니다. 

가족에 의한 성추행 자체도 워낙 충격적이지만, 어머니의 반응이 더 충격적이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가족에 의한 성추행도 주로 남자가 가해자고 여자가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양상이 가족이 아닌 사람에 의한 성추행과 다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면 보통 경찰에 신고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합니다. 하지만 가족에 의한 성추행은, 가족의 형태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이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거나 심지어 가족 중 힘이 없는 편인 피해자의 탓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극히 드물죠. 

 

병에 걸린 사람처럼, 집단도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이런 가족을 병에 걸린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병보다 그들이 합쳐졌을 때 더 심한 병적인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병적인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 병들게 됩니다. 가족은 보통 사람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자,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닮아갈 사람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병적인 가족과 오래 접촉하게 될수록,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이런 변화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악영향을 줘서 사회에서도 스스로 고립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아서 괴롭히는 악인들의 표적이 되기 쉽죠. 

 

현재 가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바뀌고 싶은 한 사람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바꿀 의지가 없는 서로 엉켜있는 세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병적인 가족과 함께 하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언은, ‘가족에게서 떨어지세요.’입니다. 

서울에서의 분위기도 예민한 시기에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으며, 더 오래 악영향을 줍니다. 종종 평생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기도 하죠. 그러니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면, 가족에게서 떨어지셔서 생활하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물론 평생 가족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또 언젠가 가족들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본인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자분 혼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시험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