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4화 이런 내가 정신병원을 가도 될까? - 2

 

예약한 날짜와 시간에 맞게 도착하자 내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신규 환자 접수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건강보험처리를 할 것인지, 기록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물었다. 5년 안에 보험 가입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건강보험처리를 했다. (신규 보험 가입 시 의료기록 조회는 최대 5년이다.) 꽤나 묵직한 설문조사지 같은 질문지를 받았다. 근래의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용도였는데, 1부터 5까지 중에 내 기분, 경험이 비슷한 것에 체크하면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젊은 의사는 친절했다. 나를 평가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태도였다. 의사는 적절한 질문을 이어갔고, 방금 한 질문지에 체크한 항목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 그리고 차분히 자신이 판단한 내 상태에 대하여 설명해줬다. 그림을 그려서 뇌의 작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상담과 약물을 모두 권유받은 채 F 코드 2개를 받았다. 40분간의 초진이 모두 끝났다. 

 

상담이 다 끝나가고 내 앞을 보니, 작은 티슈 박스가 놓여있었다. 그래, 내 얘기를 하다 보면 눈물이 날 수 있다. 작은 배려가 고마웠다. 나의 경우, 질병의 수도 많고 치료가 오래 걸릴 케이스였다. 질문지를 작성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쓱 보니, 2-4주에 한 번 상담 오는 사람도 있었고, 약 없이 상담만 받는 사람도 있었다. 
 


나오는 길, 나는 정말 개운했다. 이제 매주 1회, 약속한 시간에 병원을 찾아가면 뭐라도 될 것이다. 치료가 되지 않으면 안 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큰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었다.

금액적인 부분은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 중에 하나였다. 인터넷 검색에 나온 병원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라고만 했고, 상담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은 수십만 원을 받는다는 정보가 나돌기도 했다. 매주 가야 하는 병원의 특성상 너무 비싸면 감당되지 않을 게 뻔했다. 나조차도 공개된 장소에 내가 다니는 병원의 치료 금액을 끄집어내기가 힘들다. 다른 병원도 그렇게 짐작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금액별로 실력을 짐작할까 지레 겁나기 때문이다. 

정신과는 향정신성의약품(중추신경계에 작용하며 오·남용시 인체에 심각한 해를 입히는 약품) 다루는 곳이다 보니, 약의 특성상 약처방과 조제를 모두 병원에서 받았다. 무슨 약을 먹는지 궁금할 수 있다며, 휴대폰을 가져가 처방전을 찍어주었다.

그 후 내가 낸 치료비는 바깥 음식을 조금 덜 먹으면 될 정도였다. 나의 경우, 겁먹었던 것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안심했다. 다만, 초진비는 검사지도 많고, 상담시간도 평소의 두배이기 때문에 평소의 30퍼센트 정도 더 나왔다. 

 

알고 있다. 이렇게 내가 열심히 정신병원에 대하여 나열해도 당신은 겁먹고 도망갈 수 있다. 혹은 내가 나열한 사실이, 당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것이 있어서 무서워졌을 수도 있겠다. 내과, 이비인후과처럼 조금만 아프다고 쉽사리 손을 뻗을 수 있는 병원의 종류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한다. 우울증을 감기처럼 생각하고, 감기 걸린 것처럼 가볍게 들르라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동감한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우울할 수 있다. 당신도 그러할 수 있다. 근 한 달간을 뒤돌아보자. 이유가 있든 없든 우울한 감각이 이어지는가? 대부분의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유 없이 불안한 감각이 느껴지는가? 평소보다 모든 것에 무기력한가?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에 큰 결심이 필요한가?

 

위의 질문들은 내가 모두 겪은 것이다. 근 한 달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 시간을 겪어야 했다. 스스로 위의 감각임을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 기운이 없을 때도 있고, 살짝씩 우울할 수 있는데 내가 나약해서 크게 느끼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픈데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아플 때까지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자. 아프고 괴롭고 슬플 때에 그 감각과 고통은 오롯이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것조차 버거운데 눈치 보고 비교하며 치료를 미루면 병이 커진다. 
 


흔히들 치과를 부지런히 가라고 한다. 조금만 아파도 빨리 가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진행되는 병증은 심각해지기만 하고, 스스로 낫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다.

내 판단으로는 정신병도 마찬가지다. 한 번 스며든 우울, 불안, 무기력, 공황 증세 등은 홀로 치료되지 않는다. 스스로 깨치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마음에 멍울처럼 남는다. 그리고 계기만 되면 당신이 아팠던 마음을 찾아 다시 흔들 것이다. 마음이 신체 장기 중 하나라면 쉽게 판단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유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다쳤을 때 우리는 얼마나 모질게 모르는 척하는가.

 

당신을 억지로 정신병원 문 앞에 세우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기분 좋은 산책이나, 짧은 여행, 나를 위한 쇼핑, 업무에서의 성취감 등으로 기분이 훨씬 나아질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제안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당신이 기분이 우울할 때 짧은 여행, 쇼핑 등 중 무엇을 할까 상상하는 상황에서 ‘정신병원’을 집어넣는 것이다.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정신병원을 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에게는 마음을 다스리는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내가 망설였던 만큼 당신도 망설일 것이다. 내가 내야 했던 용기만큼 용기를 끌어모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족도 친구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망설여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만히 나를 마주하여 바라보자. 마주하는 나, 내가 답을 알고 있다. 낮아진 자존감과 자꾸 흐르는 눈물로 홀로 괴로워하지 말자. 정신병원 의사는 괴물이나 요괴가 아니다. 당신을 도와줄 의사를 찾을 때까지, 병원 여행을 해도 좋다.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전문가, 그 단 한 사람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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