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임찬영 전문의] 

 

사연) 

제목 그대로인데요. 사회를 살다 보면 불합리하게 차별당하고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보다 그 빈도가 높은 것 같아요.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이기도 할 거고. 소위 말하는 돈이나 학벌의 배경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부가적으로 저는 좀 정의로운 사람이라서 뇌물, 선물 이런 거 전혀 없이 상황을 청렴하고 결백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무리에 소속되는 일이 적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가 차별을 받고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돌이켜 보면 아주 오래 그래 왔어요. 나는 따돌림을 당한 어느 친구에게 친절했을 뿐인데 갑자기 잘 지내던 친구들에게서조차 왕따가 되어버리는 그런 일들. 그리고 회사에서 어느 열등감을 가진 동기의 질투로 인한 이간질과 없는 말을 지어낸 험담, 그리고 그 동기와 친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을 믿는 사람들. 그걸 보면서 참 세상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바른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요. 사람들은 그런 불합리함도 버티지 못하면 너 이곳에 맞지 않다거나 너무 약하다는 말을 해요. 결국 잘못의 주체는 악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가 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강해지더라도 악해질 자신은 없어요. 그리고 악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희생되거나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게 제가 봐온 세상이에요. 아무리 강해도 악한 무리를 방관하는 입장이 되어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희생당하더군요. 제가 바로 본 게 맞을까요? 지금은 거의 그런 사회생활에 지쳐 사회생활을 놓아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찬영입니다.

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신념에 따라서 선택을 했지만 따돌림을 받는다든지 좋지 못한 결과나 희생을 당했던 적이 많았다고 말씀하셨네요.

말씀하신 대로 세상은 바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대로 살아왔지만 좋지 못한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쁜 생각을 지닌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주고, 탄탄대로를 걷는 일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에 맞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질문자분은 이런 경험을 많이 했고 이로 인하여 사회생활을 놓아버렸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게 무척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질문자분이 올바르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믿고 있는 신념이 있고 타협하지 않고 행하는 것은 분명히 용기 있는 행동이고 훌륭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부분들이 과연 분명히 정의로운 것일까요? 아마 정의로운 부분이 있지만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흔한 경우로 얼마 전에 동사무소 민원실에서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등본을 떼지 못하고 돌아간 일을 봤습니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탓이죠. 할머니의 신분이 비교적 확실한 분이라 공무원들도 안타까워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분명 올바른 일처리지만, 친절하지는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죠.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있고 개인별로 우선하는 가치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분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질문자분이 올바르지 못한 일에 타협하라는 말보다는 유연하게 사람마다 다른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분명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내 신념을 꺽지 않고 부드러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처럼 업무 관련 청탁이나 선물은 분명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선물을 받는 상황에서 거절하면서 강하게 거절하기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거절해도 의사는 전달될 수 있습니다. 나의 신념은 변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기분도 상하지 않을 수 있죠. 반면에 너무 강하게 거절을 하면 신념은 지키지만 상대방은 이런 상황을 모욕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판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타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념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부드러운 결과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고 고려해 볼 수는 있습니다.

 

질문자분은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세상은 마냥 올바르게만 흘러가지는 않고 이로 인하여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근자에 질문자분의 신념이 존중받을 수 있는 집단을 만나고 또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념을 굽히지는 않지만 조금은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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