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저는 이제 20살이 되는 남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죽음에 관해 꽤 깊이 생각을 하며 불안에 주기적으로 빠졌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이런 걸 생각한다고 해서 어떤 유의미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한동안 잊다가 또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들면 다시 한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고3 대입에 낙방하고 올해 재수를 결심해서 재수 중에 감정 상태가 나빠져서 우울함이 계속되다가 또다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울한 데다가 그런 생각까지 하니 너무 괴롭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제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론 죽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가? 때문에 공포를 가지게 됩니다. 죽음으로써 의식이 정지하면 그걸로 끝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면, 그럼 그 의식이 없는 상태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말 공포스럽습니다.

저는 어떠한 종교도 믿지 않기 때문에 의지할 대상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참 거짓 유무를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종교계에서 말하는 소위 '하느님'이라 불리는 신이 실재하여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지속되어 나가고 또 먼저 죽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듭니다. 

 

두 번째론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슬퍼집니다. 특히 가족들이 언젠가는 죽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사람들이 부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한참 뒤의 일이지만 너무 불안하고 공포스럽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런 공포가 최근에 너무 심해져서 가슴이 답답하고 가만히 있을 때도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누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만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도 없고 제 고민이 다른 이에게 전이될까 싶어서 또 삭히고 있던 와중에 제 고민을 이렇게나마 올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생각을 멈출 수 있고 제발 죽기 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대로 살아가다간 공포에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써서 말이 이상해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철학적인 주제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상 후에 어떠한 결과가 있을지 인간은 미리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죽음 후에는 상실과 슬픔이 뒤따르기 마련이기에, 질문자님처럼 때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는 철학자가 아니기에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려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아마 질문자님만큼 죽음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도 않았을 테고요. 

다만, 질문자님의 ‘생각’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고 싶어요. 질문자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대해서, 약간은 강박적인 성향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강박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에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예전에 모 통신사 광고에서, ‘비비디 바비디 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 어찌 보면 가슴 뛰는 문장이지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하지만 강박적 성향은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에 과도한 힘을 부여합니다. 즉,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당장 현실이 될 것 같거나, 이에 대해 당장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나 가까운 타인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럴 때 공포를 느끼는 것 또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생각이 기차이고, 우리 마음이 기차역이라고 한다면, 기차역에는 하루에도 기차가 수천 번씩 들어옵니다. 그 생각의 범주에는 구체적인 일상과 관련된 생각부터, 정말 말도 안 되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은 생각까지 포함됩니다.

기차가 들어오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물어보셨는데, 통제를 하는 건 할 수 없을뿐더러,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백곰효과’가 이를 증명합니다. 생각은 통제하려 하거나,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질문자님께 드리고 싶은 조언은 한 가지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으로부터 조금은 떨어트려 놓고 볼 수 있으시면 좋겠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서 이를 감정적으로 평가하거나(혐오감과 공포 같은), 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내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차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 있는 상상을 잠깐 해볼까요. 우리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순간 기차가 요란스럽게 들어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차에 굳이 올라타려 하거나, 가까이 가서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의 기차는 때가 되면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앉은자리에서 힐끗, 기차를 바라보기만 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됩니다.

떠오른 생각을 억지로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상에 집중하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기차가 들어왔군’ 의식만 하며, 내 일을 계속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방법이 바로 강박증상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기법 중 하나인 ERP(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 노출 및 반응 방지)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경우 이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대하고, 내 일상에 몰두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현재 갇힌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강박증상은 현재의 스트레스 수준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우울감이 오래되었다면, 일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테고, 이 또한 강박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평가와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자님의 고민에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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