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5화 지금 내 성격이 원래의 내가 아니라고요?

 

“제 앞날은 다 망쳐진 것 같아요.”

정신병원에 다닌 지 6개월쯤 됐을까? 나는 언제나처럼 괴로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하루 빼고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요”, “엘리베이터에서 공황 증세가 나타나서 중간에 내렸어요.” 등등 부정적이고 듣기에도 괴로운 얘기 투성이었다. 가끔 선생님께 미안한 날도 있었다. 저 사람은 하루 종일 저 자리에 앉아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의 푸념을 듣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괜히 내 얼굴이 다 민망스러웠다. 

선생님은 그것이 직업이었고, 전문가였다.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전 상태와 비교해서 현재를 파악하고, 나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였다. 그리고 나는 매주 보는 친구에게 징징대며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가 선생님이 친숙해진 나머지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 내 불완전한 상태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나의 아이 때 이야기부터 집에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저는 너무 부정적인 사람 같아요, 저도 제가 지겨워요. 하지만 상황이 이런걸요.”

라고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지금 알고 있는 심경선 씨의 성격이 원래의 심경선 씨가 아닐 수도 있어요.”

라고 차분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설명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나’란 오롯이 나의 시선이다. 현재의 상황과, 일부 나의 편견과, 굳어진 상처 등이 버무려진 총체적인 ‘나’이다. 하지만 변수를 하나만 줘보자. 현재의 나의 오랜 고민이 어느새 풀려버린다면? 나는 나에게 더 너그러워질 것이다. 질책하는 대신 보호하려 들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굳어진 상처가 많이 나아진다면? 나는 더 긍정적이고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큰 변수가 주어지면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유기적 존재라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설명할 때면 늘 그렇듯, 선생님은 종이 한 켠에 그림을 그리고, 동그라미를 빙빙 그리며 차분히 설명하셨다. 나는 어려운 수학공식을 이해했을 때처럼 명쾌한 답을 얻은 것 같았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시원한 감각이 느껴졌다.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게 지금의 성격이 된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다소 느리더라도 말이다.

난 마치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뻤다. 애타게 기다리던 어떤 소식보다 반가운 이야기였다. ‘내’가 ‘나’와 살아가야 할 날들이 아마 더 길 텐데, 나는 나 자신에게 숨이 점점 막혀가고 있었다. 우선 너무 게을렀다. 우울증이 돋으면 움직이지 않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만을 반복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은 정말 움직임이 무(無)하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부정적인 방향의 나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씻으러 움직이지도 못하고, 씻지를 못하니 외출마저도 피하게 됐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에도 안 가곤 했다. 그럼 약이 끊기고, 금단 증상으로 손이 떨리거나 땀이 많이 흐르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자학했다. ‘역시 나라 인간은 여기까지군….’ 

 

불안증은 사실 병원에 가서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다. ‘우울하긴 한데, 그것만은 아닌데…’ 무언가 있구나 하고 짐작만 해왔다. 그런데 ‘불안’이 증세로 구분되어 치료가 요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불안증은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불안한 상황이 오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 어떤 변화나 부정적인 메시지가 오면, 그 자체에도 불안함으로 휩싸이곤 했다. 불안하다는 감정은 온갖 부정적이고 흔들리는 마음을 나에게 투척했고, 우울증만큼 피곤하고 고단하게 만들었다. 

공황 증세… 이건 뭐 어쩌고 저쩌고 쓸 이야기도 아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증세인데, 많은 인파 속에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불안한 상황, 또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놓이면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서 죽을 것 같은 압박감이 느꼈다. 식은땀이 무척 많이 났고, 겪을 때마다 처음 겪는 감정인 양 견뎌야 했다. 종종 혼절해서 잠깐 사이 기억을 잃기도 했다. 별난 병이다.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부정적이고 때로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곤 했다. 큰 파도들은 내게 살이 되리라고 믿었지만, 깊이 파헤쳐져 상처와 흔적을 남길뿐이었다. 전혀 긍정적인 것을 주지 못했다. 자기방어적이었고, 비판적이었으며, 악착같은 끈질김을 흉터 자국처럼 남겨뒀다. 난 그런 내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과거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종종 우리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가 좋아?”라고 질문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현재’라고 답한다. 나는 알고 있다. 과거 어느 상황으로 돌아간다 한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성격이 참 싫었다. 어릴 적 사진을 봐도 자발적으로 웃는 사진은 흔치 않았다. 그리고 난, 나는, 그 사연 있어 보이는 눈빛이 가장 싫었다. 맑고 깨끗한 얼굴이 필요했다. 이제 깨닫는다. 그건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현재의 나를, 내가 바라는 나로 바꿀 수가 있다고?’ 그 순간 선생님은 램프의 요정 ‘지니’로 변했다. 내게 몇 개 정도의 소원을 들어줄 것 같았다. 쉽지만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내가 들은 말을 이제 여러분께 돌려드릴 차례이다. 

“지금, 당신이 함께 살고 있는 당신 스스로를 달래고, 어루만져주면 다른 사람이 된답니다.” 

솔깃한 이야기 아닌가. 죽는 것만을 생각하며 숨어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다른 옵션이 생겼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램프의 지니는 소원만 들어주고, 그 뒤 감당은 소원을 빈 사람의 몫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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