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심리툰 작가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바야흐로 음식의 시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쉐프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TV에서도, 유튜브에서도, SNS를 봐도 어디서든 먹는 영상과 음식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맛집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블로거는 물론이고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알려진 맛집 앞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섭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음식을 먹기 전, 그것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고 나서 생긴 현상이지만, 왜 우리는 기록까지 해가며 그렇게까지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문득 의문이 생깁니다.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속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영위해야 하는 것 중 가장 원초적인 활동이기도 하지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제가 아침 회진 시간에 빼먹지 않고 꼭 환자분들에게 여쭙고 확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잘 잤는가, 잘 먹었는가, 잘 쌌는가 하는 기본적인 활동들입니다. 그런 기본적인 신체 기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기분이라든지 다른 정신 증상은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식사하셨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인사말로 쓰여 왔을 만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먹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먹을 것을 나누고 더불어 살아오기도 했지요. 그러면 먹을 것이 풍족해진, 아니 오히려 먹는 것이 너무 과잉되어 비만이나 성인병이 문제 되는 지금에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사진_픽셀


먹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구강기 고착 같은 정신분석 이론의 전문적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힐링 푸드’라는 말이 있듯이 음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정서, 기억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집니다. 고향이나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는 일은 한 개인에게는 회복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는 신뢰나 연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 우리는 늘 먹는 일로 관계를 시작합니다. 친구나 동료에게 “우리 관계를 유지하자.”라는 말 대신 “야,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밥이 안 넘어간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적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적이라도 함께 하는 식사는 화해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배우 하정우의 먹방으로 유명한 영화 “황해”에서도 면정학(김윤석 분)과 구남(하정우 분)의 첫 관계는 투견들이 짖어대는 시장통 한가운데서의 식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범죄를 모의하는 상황에서의 게걸스러운 식사였지만, 그 식사는 그 둘 간의 합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늘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에 우월감을 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모멸감을 느낍니다.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은 우월한 위치에 있어 보이는 것을 시기합니다.

SNS에서는 외적인 우월함이 넘쳐납니다. 최근 생산된 좋은 옷은 OOTD라는 이름으로 태그되고, 많은 사람들이 비싼 명품을 사서 사진을 올립니다.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매를 담은 사진이나 셀카, 내가 다녔던 여행지에서의 사진들도 좋은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외적인 만족만 있다면 그 만족은 너무 공허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독특한 음식을 맛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다니는 배고픈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모험이나 탐험에 가깝습니다.

음식은 내적인 만족을 줍니다. 음식을 먹었을 때의 식감, 풍미는 물론이고, 따라오는 포만감과 한겨울의 추위도 잠시 잊게 할 만한 충만감은, 외적인 만족만으로 부족한 심리적 공허감을 채우기에 더없이 보충적입니다. 사실 내적인 만족의 재료는 긍정적인 정서나 관계, 지혜 같은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 허전해.”라는 말이 때로는 “나 배고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느끼는 외적, 내적 표상들은 어쩌면 정말 채워져야 하는 나의 무언가와는 너무 동떨어진 구체성을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고독감, 공허감, 그리움, 갈망 같은 것은 언제나 희미하고 그 실체가 모호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Latte is...), 주말 드라마에서는 가족의 이야기가,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주말 오전에는 ‘장학퀴즈’나 ‘퀴즈아카데미’ 같은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주는 프로그램들이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물들에 대한 공감을 함께 하는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나 하교하고 집에 가면 바로 시작했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들도 기억이 납니다. 사극에서는 역사상의 인물과 공감하고 동일시할 만한 거대한 이야기들도 펼쳐졌었습니다. 굳이 공부하지 않고 만화만 보아도 삼국지나 연산군의 일대기 정도는 이야기 삼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들은 특별한 음식들이 아닙니다. 곱창, 햄버거, 떡볶이, 튀김. 피자, 라면, 누구나 즐겨먹을 듯한 음식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맛의 음식을 먹는 방송을 보면, 우리는 더 잘 그 원초적인 감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TV를 통해 다양한 누군가의 이야기, 삶에 공감했다면, 우리가 지금 매체들을 통해 공감하는 것은 그런 원초적인 감각에 대한 공감입니다.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실제의 삶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고 계시나요? 한편 그런 매체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어떤 실수나 잘못에 대해 사람들은 또 너무 냉정하게 등을 돌리곤 합니다.

 

식사하셨습니까?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며,
나에게는 회복과 치유를 선물하고,
타인과는 친밀함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시 한번 조심히 여쭙고 싶습니다.

당신은 배가 고프신가요?
아니면 마음이 고프십니까?

 

알고싶니마음 #심리툰 작가 팔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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