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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 17. 일상을 지키는 일

기사승인 2020.06.10  0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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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7화 일상을 지키는 일

 

고백하자면, 나는 머리 감는 일이 힘들다. 

지저분하다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꽤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 머리를 감을 때면 스스로 어르고 달래고 혼내고 설득한다. 단순히 머리가 길어서는 아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보틀넥(bottleneck :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일상의 일들이 이유 없이 힘들거나 불가능 해진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고, 매일 해야 하는 일 중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단순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꽤 있다. 적당한 시간에 잠에 들어야 하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왜?”라는 생각 없이 씻을 수 있어야 하고, 직업군에 따라 적당한 옷을 입고, 정해진 곳에 가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 기쁨도, 슬픔도, 짜증도, 지루함도 있고 그것을 살짝씩 견뎌가며 매일을 반복해 나아가야 한다.

일상을 지켜나가는 일은 굉장한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다. 끈기와 노력 또한 필요하다. 

“매일 뭐 비슷하게 살지.” 

이 한 줄에는 그가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긍정적인 사소함이 들어있다. 특히 우울증 환자들에게 일상을 지키는 것은 지구를 지키러 나가는 것만큼 어렵다. 능력이 있다면 지구를 지키는 것이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라고 머리 감는 일을 자동 반복적으로 하려고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브랜드의 샴푸와 컨디셔너, 향이 좋은 헤어 오일을 샀다. 머리 감는 일 자체를 즐겨보자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효과가 좋았다. 나는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는 일이 잦아졌고, 컨디셔너 후의 부드러움을 즐겼다. 에센스 오일의 파우더 향은 완벽한 마무리를 갖추어 주었다. 

꿈만 같은 시간이 흘러 3개월쯤 지났다. 나는 다시 ‘우울한 나’로 돌아왔고, 머리 감기가 죽기보다 어려워졌다. 씻는 게 어려운 일이 되면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어느 때는 약속을 잡아 놓고, 씻을 시간이 지났는데 못 씻으면서 엎으려 엉엉 운 적도 있다.
 


병원에 다니면서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집 밖으로 나가질 못 하겠어요.” 

차마 머리를 못 감겠다고는 선생님을 눈앞에 두고 말이 안 나오더라. 선생님도 코드를 잘못 짚고 “산책을 삼십 분씩 해보세요.”라고 하셨고, 나는 시무룩하게 “네…”라고 한 게 전부였다. 산책을 하려면 머리를 감아야 했다.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음 주가 되어 나는 같은 고민을 반복해서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가질 못 하겠어요. 집에서도 아무 일도 안 하고 누워있어요.” 

선생님은 다른 답을 내놓으셨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도록 해보세요.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도록 해보시고요.”

선생님은 종종 이렇게 정답을 말씀하신다. 동시에 종종 샌님 같은 말을 하곤 하신다. ‘정답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같은 시간에 자는 것은 내 새벽 시간을 종료하라는 뜻이었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은 나만의 일상을 꾸려보라는 뜻이었다. 말끔하고 깨끗한 답안이다. 문제는 ‘나’였다. 십여 년째 휴대폰을 밤새 보다가 쓰러지듯 스륵 하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는 것도 눈이 떠지는 시간이었다. 완전히 생활 리듬이 깨진 상태이다. 멋대로 자고 일어났다. 

처음부터 휴대폰을 보고 잠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휴대폰을 저 멀리 두고, 삼십 분, 한 시간, 세 시간···. 눈감고 허리가 배기게 참아봤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꿈틀거리며 편한 자세를 찾아보기도 했다. 나의 불면증은 나에게는 병에 가까운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 

샌님이라고 평했던 선생님은 내 불면증 이야기를 들으시고, 멋진 선생님으로 변신하셨다. 하루에 먹어야 할 약 중에 졸음이 오는 약을 모두 저녁약으로 몰아넣으신 것이다. 십여 년의 나의 밤, 그 고통스러운 밤이 졸피뎀(불면제 단기치료제) 없이 해결됐다. 양약의 훌륭함을 몸소 깨닫고, 꼬박꼬박 잘 먹기로 다짐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우선 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를 꾸리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번에 일반인들처럼 될 수는 없었다. 나와의 약속은 매우 느긋하게 시작됐다. 겨울이면 해가 짧아져, 일어나면 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과거와 달리, 오전 11시엔 일어나기로 다짐했다. 
 


나에게 우울함은 엉망이 된 잠과, 머리 감기 어려워 엎드려 우는 내 등허리이다. 외출이 불가능해지는 조건 두 가지인 셈이다. 당신이 만약 잠들기 힘들다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려운 점 등, 지켜 나가야 하는 일상을 지킬 수 없다면 당신은 단순히 게으른 것이 아닐 수 있다. 

우울증은 당신의 등허리를 타고 어떤 것이든 파괴시킨다. 고독한 사람이 되도록 가둔다. 당신은 게으르지 않다. 내게 잠을 조절할 수 있는 일상이 돌아온 것처럼, 당신도 당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심경선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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