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다시 아프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청년이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수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고, 성실함으로 주위 평판도 좋았으며 어울리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그런 그가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실은 제가 초등학교 때 은따를 당했어요. 앞에서는 다들 저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제가 없는 자리에서는 제 욕을 했던 거죠. 우연히 험담을 엿듣게 되었는데, 그게 제 이야기란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어지지 않아요.”

“그 뒤로, 사람들이 같이 있을 때 저를 빼고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 져요. 그렇지 못하면 불안해요. 그 아이들이 그럴 애들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불안이 주체가 안돼서 자꾸만 억지로 이야기를 확인하고 끼어들게 돼요.”

“이런 제가 버겁고 이상해요.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불안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해야만 하는 게 지쳐요. 제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 같아요. 마음이 고장 난 것 같고, 어떻게든 고치고 싶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혹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이에 대해 분노하고 초조해한다. 분노란 ‘왜 억지로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느냐.’라는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야속함이며, 초조함은 ‘마음이 어딘가 고장 나고 잘못된 것 같아, 어서 고쳐야 해.’라는 조급함이다.

이러한 마음은 보통 마음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유’를 파고든다. 언제부터 마음이 고장 난 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음이 이지경이 된 걸까. 이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늘 우선 원인을 고민한다. 이를 통해 그러한 문제가 내 삶에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 이유를 개선하면 원하는 결과도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나 ‘마음 같지 않은 마음’의 이유는 대개 과거에 있다. 그리고 누구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 속에서 헤매다 보면 지금 내 마음속의 문제, 고장 난 마음은 어떻게 해서도 고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로 인한 버거움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다시금 마음이 버거운 이유를 찾곤 한다. 그 악순환 속에서 힘든 마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힘든 마음의 이유에 대한 생각만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진료실에서의 면담은 늘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그러셨군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진심으로 그간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먼저 건네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주신 말씀을 듣다 보면, 저는 그 마음이 전혀 이상하다거나 고장 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러워 보여요. 그 마음은 단지, 더 이상은 힘들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에 따라 고통을 피하고 있을 뿐으로 보입니다.”

 

마음은 경험한 상처를 결코 잊지 않는다. 크게 다친 상처가 흉터를 남기듯, 마음의 아픔도 흔적을 남긴다. ‘다시는 이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다. 이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예전의 고통과 유사한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다시 마음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인해 황급히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음은 고장 난 것도, 문제도 아니었다. 단지 예전에 경험했던, 어떻게 하여도 잊을 수 없는 따돌림의 깊은 상처를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는 그것이 내 험담이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고, ‘과거의 상처가 재현되는 상황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도, 그의 마음도 잘못한 적은 없다. 단지 다시 상처 받지 않는 길, 행복해지는 길이라 스스로의 마음이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땐 그 내용을 확인하기.’라는 방법이, 그가 기대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고 오히려 불편을 가져다줬을 뿐이다. 그의 마음은 단지 어린아이처럼 속삭였을 뿐이다. ‘너 예전에 친구들에게 상처 받아서 힘들었지? 지금 또 저기서 너를 빼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우리 다시 상처 받지 말자. 어서 저기 가서 이야기에 끼어서, 너를 험담하는 것이 아닌 지 확인해 보자.’

 

그래서 우리는, 그와 나는, 그의 마음에게 함께 이야기를 해 줬다. 

‘그래,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네가 자꾸만 불안해하는 것이 너의 어디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서가 아니라 더 이상 예전의 상처를 받지 않고 싶어서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

‘그런데 이제 나는 많이 괜찮아졌어. 친구도 많이 생겼고,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죽을 때까지 10명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중 2명은 나를 좋아하고, 4~5명은 그저 그렇게 나를 생각하고, 3명은 나를 싫어한대. 이건 나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다 달라서 그런 거래.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은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사람은 몰라주더라도 나는 너,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주도록 할게.’

그는 울었다. 하염없이 많이 울었다. 문제 투성인 것 같아 그간 너무 미워만 했던 스스로의 마음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면담을 하고 책을 읽으며 구해 왔던 어떠한 그럴듯한 설명들보다도, 자신이 고장 나지 않았다는, 그 이야기 자체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괜찮다는 이야기가 범람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뜬금없이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해서 그의 불안과 아픔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틀리지 않았어요, 라는 메시지는 너무 흔하게 느껴질 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나 자신은 얼마나, ‘때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긴 하지만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틀리거나 잘못된 마음은 없다. 힘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불편할 수 있을 뿐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불편하지만 이해는 되는’ 마음들. 스스로, 진심으로 선사하는 그 작은 이해만으로도 어쩌면 마음은 큰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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