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논현동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상황을 흔히 트라우마(Trauma)라고 말합니다. 정확히 트라우마는 신체적 상처와 심리적 상처를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교통사고나 폭행 등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 신체와 마음에 모두 상처를 입힙니다. 신체적 트라우마로 뼈나 신체 장기가 손상되면 통증과 후유증으로 한동안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고 재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마찬가지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는 공포와 불안으로 한동안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이어가기 힘들고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트라우마에 대한 경중을 따질 수 있을까요?

물론 신체적 손상 정도에 따라 통증이나 후유증의 정도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체적 통증은 강도나 빈도, 지속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고 신체적 장애는 운동 제약이나 감각마비의 정도로 심각도를 나눕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나 새끼손가락의 차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신체 부위이냐에 따라 중요 정도를 평가하기도 하죠.

정서적 고통도 강도와 빈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에 따라 증상의 정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극도의 무가치감이나 자기 비하로 자해와 같은 위험한 행동까지 이어진다면 심각 정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이처럼 신체적 상처와 심리적 상처, 각각의 영역 내에서는 그 고통의 경중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몸에 난 상처와 마음에 난 상처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고통이 크고 깊은지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마치 내가 중병에 걸려 몸이 아플 때의 고통과 내 가족이 중병이 걸렸을 때 내 마음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처럼 상황에 맞지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우리 뇌에서 감지하는 몸의 고통과 정서적인 고통은 유사합니다.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모든 통증은 뇌에서 인식합니다. 몸의 고통은 신체 감각 기관에서 감지한 후 척추신경을 따라 뇌로 들어오고 통증으로 느끼게 됩니다. 정서적 고통은 뇌 안에서 감지하고 뇌 안의 다른 영역에서 다시 통증으로 느끼게 되죠. 관련해서 2011년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1) 

연구진은 최근 원치 않은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다음에는 통증을 유발할 정도의 뜨거운 자극을 주고 이 과정을 뇌기능영상(fMRI)을 통해 비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때의 정서적인 고통과 뜨거움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 뇌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관찰하는 연구였습니다.

연구 결과 두 가지 통증 모두에서 신체 감각을 이차적으로 해석하는 배후측 뇌섬염(dorsal posterior insula)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이별과 같은 사회적 거절도 신체적 통증처럼 우리 뇌에서 신체 감각적인 괴로움으로 느끼는 셈입니다.
 

사진_픽셀


우리 몸과 마음은 생물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심리적인 갈등은 우울, 불안 등의 마음의 증상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배앓이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통이 생기기도 하죠. 심리적 불안이 극심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은 공황장애입니다. 만성적인 불안이 예기치 않게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식은땀, 손발 저림과 같은 극도의 신체 증상으로 표출되어 버립니다.

또한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에서는 우리의 정서적인 상태에 따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도 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인 어려운 상태에는 몸의 면역기능을 반영하는 인터루킨, 사이토카인 등 혈중 염증 물질도 변화해 질병에 취약해집니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나란히 놓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두 가지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치료도 함께 접근해야 합니다.

이유 없이 피로하고 몸이 아플 수가 있습니다. 종합검진을 받아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몸의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외로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걸 놓치고 몸의 통증에만 집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며 잘 관리하고 있는데도 우울증이 낫지 않고 재발을 반복한다면 몸의 상태를 돌아봐야 합니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며 운동이나 식이 등에서 몸의 건강을 챙기지 않는 생활 습관이 마음의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 필요한 셈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꼬리를 물며 연결된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 드러나 있는 단편적인 증상에만 집중하다 보면 문제는 나아지지 않고 곪아가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신체적 고통과 마음의 고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의 면만 보고 당장의 어려움을 고치는 것을 치료(治療)라고 한다면 몸과 마음을 같이 고려하며 일상생활에서 건강을 되찾는 것은 치유(治癒)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 중 어느 쪽이 더 아플까에 대한 대답은 당시 자신이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 두 고통을 모두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 Kross, Ethan, et al. "Social rejection shares somatosensory representations with physical pai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15 (2011): 6270-6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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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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