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우연히 글을 올려봅니다.

사실 타인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가끔은 자기 안의 비겁함, 치졸함, 옹졸함, 이런 걸 털어놓고 싶은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악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는 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는 경계가 타인보다 더 엄격해서 공감을 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자존감이 부족하니 타인으로부터 안정감과 보편적인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런 순간은 충분히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게 맞다는 것, 그걸 잘 참아내고 성숙하게 대처했다는 것에 대한 칭찬 같은 걸 받고 싶기도 하고요.

특별히 정신과적인 상담이 필요한 부분은 아니고 수다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런 이유로도 상담이 가능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상담에 대한 문턱이 다른 서구권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심리 상담은 뭔가 마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 무거운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만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누군가에게 속 편히 뭔가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 뭔지 모를 문제로 마음이 불편한데 영 풀리지 않는 기분이 들어도 "에이 무슨 이 정도 가지고 상담까지 받아?" 하는 마음에 정신과를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한편 미국의 경우 Barna Trends에서 2018년 발표한 통계에서는, 생애 동안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약 42%에 달했습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번 이상은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고, 약 13%의 사람들은 조사 당시 현재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016년 조사한 미국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약 15%인 점을 고려할 때에, 정신질환이 없음에도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상담 방법들이 연구되어 오고 있습니다. 특정 정신과적 질환에 맞추어 치료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상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이나 지지적 심리상담과 같이 특별히 드러나는 문제점이 없더라도 진행할 수 있는 상담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히려 정신분석 같은 경우에는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 상담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맹목적인 수다를 떨는 것' '감정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상담은 마음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을 인정받고 공감받는다는 경험은 쉽게 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대화'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친구, 선후배, 가족과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대화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라는 아주 특수한 관계 속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상담 공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담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대화하는 것' '인정받는 것'이라는 표면적인 상담의 목적, 그 밑의 진정한 상담의 과정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상담의 궁극적인 목적 말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이야기하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쉽게 말해 그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스스로 결정하고 생각하는 바를 우리가 모두 알아차리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감각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결정하는 뇌의 작용 기전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이 '나도 모르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이 더욱 많습니다. 상담은 바로 이러한 과정,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그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과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효과 있고 올바른 상담 결과를 위해서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내담자의 심적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무의식의 압력을 이겨내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에는 깊은 수준의 상담이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깊은 내면, 나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물 밑에서 나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내면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음의 성숙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상담은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한, 성숙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은 무척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렇지만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함입니다.

저는 질문자님께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조금 더 성숙하고자 하는 마음속 씨앗의 움트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저 말고 편하게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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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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