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헤어지면 왜 연락 차단을 할까요?

남자 친구랑 헤어진 지 2주째입니다. 싸우다가 잠수 이별당했어요. 1년 연애하고 헤어졌습니다.

연락 문제로 자주 다투곤 했습니다. 저는 매일 일과를 카톡으로 공유했지만, 남자 친구는 잠들기 전에 전화 한 번 오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매번 카톡에 1이 사라져도 답을 못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이후로 전화, 문자, 카톡, 페북 모두 차단해서 연락할 방법도 없어서 집 앞에 편지를 두고 왔지만 연락이 없었어요.

가장 힘든 점은 그 사람은 관계에서 끝냈는데 저만 그 관계에 남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관계가 끝난다면 이렇게 연락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차단해버려야 끝나는 건가요? 왜 연애는 단계적인 이별이 안되고 한 번에 차단으로 끝나야 하는 건가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신재현 전문의입니다. 한 때 소중했던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정말 힘들죠. 더군다나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상대방과 이별에 대한 대화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차단당했다는 것을 아셨으니 화가 나실 만도 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에 따라 만나는 인연이 있다는 말이 저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았거든요. 꼭 인생에 만나는 사람마다 때가 정해져 있는가, 항상 같이 하고 더 나아가 평생을 같이 하는 인연은 없다는 말인가, 저에게는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고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것이 마치 ‘인연에는 끝나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보면 만남과 이별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통합될 수 있다는 말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별의 과정을 조금만 더 멀리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 또한 삶의 일부일 테지요. 

사연 주신 분은 지금 이별을 경험하신 지 2주밖에 않으셨잖아요. 그럼 분명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별 직후에는 감정의 순환이 일어납니다. 하루는 원망스럽다가도 또 하루는 가서 붙잡고 싶고, 또 슬프다가도 어느 순간 ‘잘 된 일인가’라고 감정과 생각이 수도 없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차 감정이 옅어지고, 결국 이별의 감정을 흘려보내게 되는 것이지요. 

 

사연 주신 분을 더 힘들게 하는 건 헤어진 상대의 마음이 어떠한지 계속 생각하는 행동이에요. 이별 자체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상대의 의중을 너무 헤아리려고 하는 것이 본인을 힘들게 할 수 있어요. 나는 이렇게 힘든데 상대는 잘 지내는 건 아닐까, 또는 내가 대체 무슨 이유로 버림받았나,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면 이별은 내 마음에서 잘 흘러나가지 않게 됩니다.

지금 당장 상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일단 내가 이별이 힘든 일임을, 감정이 순환하며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조금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별이 왔음을, 지금은 힘들 수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별의 순간에 너무 매몰되지 마시고 이제껏 겪으신 연애의 과정을 되돌아보시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기보다는 충격에 휘둘리기 쉽거든요. 당장 너무 아프고 괴롭다 보니까 이 연애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가 보지 못했던 관계의 크고 작은 변화가 나에겐 무슨 영향을 주었는지 균형적으로 파악하시기 어려울 거예요.

내가 해왔던 연애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추측컨대 두 분은 아마도 연애의 기준이 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연 주신 분은 ‘나의 일상을 모두 공유하고 매일 연락해서 항상 연결된 상태’를 연애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은 ‘일정 거리를 두고 서로의 안부를 하루에 한 번 정도 묻는 사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너무 외롭게 느껴지고 반대로 누군가는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 있겠죠. 나의 탓, 상대의 탓이 아닌 서로가 ‘맞지 않았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당분간 사연 주신 분이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시는 것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음식도 잘 먹고, 운동도 해서 기운을 북돋고,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셨으면 하네요.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칠 수 있어요, 감정은 얼마간 순환할 겁니다. 하지만 내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며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노력을 통해, 나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인연을 ‘건강하게’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남게 되는 의미들은 나를 더 성장시키게 될 테고요.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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