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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심리학] 어디든 날 좀 데려가 다오, 양로원에 갇힌 노인들

기사승인 2020.07.13  10: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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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혜민 씨는 요즘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머니 음성이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최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건다. 

“혜민이냐? 왜 안 와? 언제 올 거야?”
“엄마, 갈 수가 없어. 코로나 때문에. 가도 못 만난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안 오느냐고? 언제 올 거냐?”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니까. 엄마, 자꾸 왜 그래?”

혜민 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식이 보고 싶어 오라고 채근하는 어머니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치매로 말을 못 알아듣고 자꾸만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어린아이 떼쓰듯 하는 어머니를 보니 짜증도 나고 울컥 화도 치솟았다. 

딸의 지청구에 주눅이 들었는지 오늘 어머니 전화는 여느 때와 달랐다.

“어디든 날 좀 데려가 다오. 너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어…….”

 

혜민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만 출근시키고 하루 휴가를 냈다. 부장님의 레이저 눈빛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차를 몰아 요양병원까지 내달렸다.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얼굴 한 번만 보고 가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화 통화만 하고 가십시오.”

혜민 씨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멀리서 오셨으니 특별히 잠깐만 어머니를 뵙고 가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반색 끝에 들어선 방에는 유리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교도소 면회실이 생각났다. 저쪽에서 휠체어를 탄 어머니가 나타났다.

“엄마! 엄마…….”
“혜민아, 왔구나. 혜민이가 왔어…….”

핼쑥해진 어머니를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딸을 위로했지만, 어머니 양쪽 볼에도 긴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진_픽셀


가족의 지지와 자아존중감

자식이 그립고 보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이야 세계 어디든 똑같을 것이다. 과거 대가족 시대의 노인들은 자녀에게 물질은 물론 정서적인 지지까지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예전 같은 물질과 정서적인 지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의 노인들은 육체적 쇠퇴와 더불어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과 고독감 등 정신적 혼돈과 정서적 갈등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가족은 개인의 사회문화적 환경 중에서 질병 발생에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다. 가족의 지지는 스트레스나 부적응으로 인한 불안, 우울, 좌절감 등 부정적인 정서를 경감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역할상실, 능력감퇴, 사회적 고립 등으로 우울과 고독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가족의 따뜻한 지지는 증세를 완화하고 안정을 가져다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족의 지지를 높여주면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족의 지지와 자아존중감은 우울증과 연관이 있다. 가족의 지지가 높을수록 노인의 자아존중감 상실 및 우울은 상당 부분 예방된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의 지지가 높을수록 노인이 지각한 우울 정도는 낮았고, 자아존중감 만족도는 높았다. 반면 가족의 지지나 가족 사이의 친밀성이 낮으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났다고 한다.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도 대상자가 지각한 가족의 지지가 높을수록 우울 정도는 낮아진다고 했다.

 

요양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시설생활증후군 

201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노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첫 번째가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두 번째가 건강문제였다. 노인들의 건강문제는 대부분 만성질환이다. 장기간 치료와 간호가 필요한 만성질환은 노인들을 요양원 등 시설에 입소하게 만든다. 요양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의 심리증상은 일반 노인의 심리증상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반 노인들은 가족과의 갈등, 사업 실패, 조기퇴직 등 특정 인물과의 갈등이나 사건 발생에서 우울을 느낀다. 특정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이 있고, 원인이 되는 사건에 대한 집착과 증오심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여러 가지 도움을 받는다. 

이와 반대로 요양 시설에 입소한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은 핵심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이 없이 오랜 시간 동안의 고립과 허무감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정되는 특성이 있다. 요양 시설에 입소한 노인의 우울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분노와 편집이 없는 반면, 가족이나 친척 등 일차보호자가 옆에 없기에 깊은 대화 같은 외향적인 해결 노력이 없고, 자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특유한 형태의 우울 증상을 ‘시설생활증후군(Syndrome of Facility Residence)’이라고 부른다. 시설생활증후군이란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립된 상태에서 수동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되는 우울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는 점진적이면서도 지속해서 발전함으로써 지능, 언어, 신진대사, 식욕, 수면 등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위 이야기의 혜민 씨 어머니 역시 시설생활증후군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노인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특정 시설에 거주하며 눈에 밟히는 자식과 손주들을 보지 못한 채 살다 보면 고독감이 깊어져 우울 증세를 보일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늙고 몸은 예전 같지 않을망정 사람을 그리워하는 감정만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니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벌써 몇 달째 가족들을 만나볼 수 없기에 그 허전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분주하게 지내는 젊은 세대와 달리 노인들은 온종일 눈앞에 가족들 얼굴이 아른거릴 테니 그 정도는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노인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비록 전화 통화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애틋한 자식들의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립고 보고 싶은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한 말 또 하고 또 하더라도, 방금 했던 말을 까맣게 잊고 되묻더라도, 엉뚱한 이야기를 자꾸 끄집어내더라도, 웃으면서 상냥한 말투로 정성을 다해 대답하려고 해야 한다. 하루 한 번만이라도 자식이나 손주들과 수화기 너머로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요양 시설에 있는 노인들이 고립감, 허무감, 고독감에 빠져 자학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효도란 결코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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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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