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서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와의 문제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알게 된다면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알려 드리는데요. 저는 성인 ADHD와 범불안장애 진단 후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민을 여기 털어놓는 이유는 아직 병원에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너무 힘들어서요.

친구는 불안장애라고 했는데 유형은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둘 다 대학생이에요. 그리고 평소에는 같이 있으면 엄청 유쾌하고 얘기도 잘 통하고 잘 맞아요.

 

먼저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하자면 작년에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다투고 무리에서 나와서 많이 힘들어했고 정신과도 다녔어요. 친구 문제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 자체에 불안을 느끼는 친구예요. 저한테도 많이 털어놓았었고 그때는 친구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묵묵히 들어주고 위로해줬어요. 혼자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다고 하길래 ‘그럼 우리 집에 편하게 와라. 나랑 같이 있자’라고 했죠. 이 말이 화근이었어요.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처음에는 저도 즐거웠어요. 맨날 붙어있고 놀고 같이 자고 근데 갈수록 지치더라고요. 비번을 알아서 자기 집처럼 말도 없이 왔어요. 저녁에 집 와서부터 잠들 때까지 아니 자려고 누웠는데도 쉴 새 없이 힘든 얘기하고 싶은 얘기 오만 얘기하고 저랑 개그코드 안 맞는 영상 자꾸 보여주면서 떠들고 안 받아주기도 무안할 거 같고 그냥 받아줬더니 계속 그러더라고요. 적당히 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나중에는 집에 들어가는 게 초조하고 불안해질 지경이었어요

그거 외에도 정말 사소한 것에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많았어요. 오늘은 아프다고 일찍 가달라고 말했는데도 자는데 말 걸면서 방해하고 자기 휴대폰 이것만 보자고 눈부시게 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러 온 거면서 아침에 알바 가야 해서 알람 맞춰놨는데 그거 시끄럽다고 뭐라 하지를 않나 혼자 음식 먹고는 제때 안 치우고 그대로 놔두고 갈수록 날이 서고 예민해졌어요. 그냥 얘가 뭐만 해도 짜증이 났어요. 다른 친구라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을 텐데요.

 

근데 전 그런 불만이나 불쾌함을 숨기려고 애썼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얘는 의외로 저랑 다른 애들 챙겨주고 베풀거나 감싸주는 건 되게 잘하는 애라 저도 걔한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안 그러면 걔가 실망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걔가 혼자 있는 게 힘들다는 말을 했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면 상처 받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에 얘기 잘 들어줬고 우리 집 자주 오라 했고 의지하게 만든 제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와서 뭐라고 하면 걔가 상처 받을까 봐... 그리고 걔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한테도 숨겼어요. 집 가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걔 때문에 못 해서 짜증이 나면 ‘아니야 친구랑 언제 이렇게 시간 보내 보겠어. 이렇게 스트레스 풀고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면 좋지.’ 이런 식으로 정신 승리를 했어요.

그리고 저번에 한 번 돈 갚는 거 미루는 걸로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엄청 화냈거든요. 근데 애가 막 절 피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말 안 하고 지낸 적이 있어요. 그게 후회돼서 이번에도 그럴까 봐 그냥 걔가 고향으로 갈 때까지 참고 지냈어요. 여기까지가 작년 방학 일이에요. 그러고 나서 걔가 고향을 가고 연락만 하고 지내게 되었어요. 자주 안 보다 보니 저도 마음이 풀렸고 그냥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 했던 게 미안했고 이제 잘해주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는 전화로 힘든 일을 털어놓더라고요.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잘 들어줬죠.

 

그때만 힘든 줄 알았어요. 근데 걔는 왜 그렇게 속상한 일이 자주 생기는 건지... 나중엔 저도 모르게 아 또 뭔 일인데... 이런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런 생각한 거 미안해서 혼자 찔려서 먼저 물어보고 먼저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 하구 지금 생각하니깐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힘든 일이 없을 때도 특정 대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수다거리 삼아서 저한테 카톡으로 말해요. 사회 이슈나 정치, 본인 안 풀리는 일 물론 좋은 대화 주제이긴 해요. 근데 처음 말 꺼낼 때부터 난 이거 진짜 별로야! 하고 벌컥 분노하면서 말하면 제가 반대 의견이 있어도 무슨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을까요. 제 얘기하고 싶어도 어느새 전 맞장구치고 반응만 하고 있어요. 그냥 말이 많은데 거기다가 화도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신나게 얘기하겠지만 저랑은 안 맞아요.

그래서 이젠 연락조차도 빈도를 확 줄였어요. 걔도 이제 저랑 연락하는 걸 조심스러워해요. 힘든 얘기도 안 하고 전화도 안 해요. 바쁜데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하고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거죠.

 

근데 이제는 저의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큰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벗어났는데도 지나치게 고민하고 스트레스받고 있어요. 지금은 끝난 건데도 자꾸 작년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나요. 자취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면 걔가 앉아있고 내가 오자마자 말을 막 쏟아내고... 걔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고 걔 특유의 말버릇이 자꾸 생각나서 너무 짜증 나고 설거지하다가도 걔가 음식 먹고 안 치운 거 생각나서 짜증 나고 저 지금 콘서타 먹고 있는데 이게 소용없을 때도 있어요. 그러면 또 이것 때문에 시험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또 이어지고요.

걔가 나중에 만나자 할까 봐 불안하고 몸이 갑자기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 와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자꾸 걔한테 그때 있었던 일 따지는 상상하고 그래요. 한번 심하게 오고 괜찮아졌다 싶으면 반복적으로요... 그리고 얼마 전에 걔가 밥 약속을 제안했는데 상상만 해도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핑계 대고 거절했어요. 처음엔 아예 인연을 끊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가끔 연락하고 가끔 만나는 사이로 지내기로 했는데 위에 것들이 생각나니깐 이젠 걔랑 인연을 끊어야만 제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마음에 걸리는 게 뭐냐면요.

첫 번째로는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전부 걔가 절 배려 안 한 탓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중에는 제가 걔를 그렇게 만든 거 같고 전부 제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자꾸 왔다 갔다 해서 헷갈려요.

두 번째로는 괴로운 건 맞지만 제가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난 네가 이랬던 게 자꾸 생각나고 이젠 널 상대하는 것조차도 괴로워서 너랑 친구 그만하고 싶다’ 이게 친구가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한참 오래전 일을 가지고 이러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이제 걔도 안 그러는데 왜 전 혼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혼자 화내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돼요. 궁금한 점이 있는데 사고나 전쟁 같은 끔찍한 일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일인데도 왜 이렇게 생각나는 걸까요?

세 번째로는 아무리 잘 말해도 걔가 충격받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절 믿어왔고 편하게 지내왔는데 제가 이런 마음으로 걜 대해 왔단 걸 알면 많이 힘들어할 거 같고 앞으로 다른 사람 만나는데 불신을 가질까 봐... 안 그래도 그런 쪽으로 힘들다고 했었는데...

제가 마음을 좀 진정시켜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확실하게 말하고 인연을 정리하는 게 좋을까요? 그리고 이 정도는 누구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이건 정신과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인지 조언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에 마음에 걸리는 세 가지에 대해서도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이런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기분이 좋고 편안하고 할 일도 잘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써주셔서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해 주신 질문들을 바탕으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인간관계, 교우 관계라는 것은 서로 가깝게 지내다가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거나 성격 차이가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말씀해주신 친구분과의 상황은, 제 생각에는 아주 특별한 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글쓴이 분과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실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가깝게 지내다가 여러 가지 일들로 실망해서 멀어지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흔히 생길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멀어질지에 대해서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친구와 되도록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 않는 평균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글쓴이분처럼 생각을 많이 하고 이로 인해 괴로워하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이번 일로 인해 지금처럼 괴로워하시는 것이 상황으로 인한 것보다는 글쓴이분이 스스로 가지고 계신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강박증이라는 병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거에 발생한 충격적인 일로 인해 (주로 목숨과 직결되는 큰일들을 말합니다.) 악몽, 우울감, 괴로움이 지속되는 병이고, 강박증은 계속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불안이 발생하고 이를 떨쳐내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병입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문제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강박증을 진단 내릴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증상의 양상이나 발생기전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강박증에 대한 약물치료는 지금 치료받고 계신 범불안장애 대한 약물치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재 투약 중인 약물을 증량하거나 적절하게 조절하면 현재 느끼는 괴로움도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분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내 문제인지 아니면 친구의 잘못인지 구별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둘 사이에 맞지 않는 일들이 많고, 그로 인해 글쓴이분이 큰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실입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잘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괴로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친구와 멀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끊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관계를 끊을 정도로 강한 이야기를 하면 오해가 생기기 쉽고 두 분 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계시는 상황이니 증상 악화도 우려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어차피 친구가 글쓴이분의 의중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나,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등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남에 대한 배려는 살면서 꼭 필요하지만, 그 배려가 지나치면 나에게는 괴로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치료받으시는 많은 분들은 생각이 적은 것보다는 지나치게 많아서 괴로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이 이 경우도 정답은 없는 것 같고, 지금 하신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충분한 고민 끝에 최선을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컨대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마시고, 지나간 일에 대해서도 생각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해보세요. 이런 노력이 혼자만의 힘으로 잘되지 않는 경우에는 약물의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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