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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섬망 - 코로나19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섬망 증세

기사승인 2020.07.24  07: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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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의 비밀 노트

[정신의학신문 : 건대 하늘 정신과, 최명제 전문의] 

 

“마비된 채 침대 위에 누워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불에 활활 타는 경험을 했어요.”
“제가 일본의 어느 연구소 실험실에서 쥐가 되어 있었어요.”
“악마가 저를 계속해서 쫓아와요.”

여름철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일까? 아니다. 지금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최근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섬망 증세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위 사례는 그들의 증언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이 경험한 초현실적인 악몽은 너무나 생생하면서도 다양하다.

이같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경험하는 환각 증세를 ‘섬망’이라고 한다. 
 

사진_픽셀


섬망(譫妄)은 신체 질환 또는 약물 등으로 인해 뇌에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주의력이 저하되고, 의식 수준과 인지기능이 낮아지며, 심한 과다행동과 생생한 환각 그리고 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섬망은 치매로 고통받는 고령층 환자들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질환이었는데, 코로나 확진자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섬망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코로나 섬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중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고, 한편으로는 환각과 악몽을 대상으로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육체적 고통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정신적 고통까지 겪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몸부림치다가 인공호흡기 튜브를 떼 버리기도 했고, 병상에서 굴러 떨어져 죽을 뻔하기도 했으며, 가까스로 퇴원한 뒤에는 끊임없이 환청과 악몽이 이어져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진자들에게 이토록 무서운 섬망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섬망은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2/3 이상이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중증 환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면 신체적으로 대단히 위중하고 허약한 상태인데다 대부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며, 혹시나 인공호흡기를 스스로 뺄지 몰라 손발이 묶이는 등 구속돼 있고, 가족 등의 병문안이 극히 제한돼 있다. 이럴 때 일시적으로 뇌 기능이 떨어져서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 아래서 섬망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면 코로나19 확진자들이야말로 섬망 증세가 나타나기 딱 좋은 여건이 갖춰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섬망을 앓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섬망의 원인으로 발열, 사이토카인 폭풍(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현상), 심폐기능 저하와 같은 신체기능의 저하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직접적인 뇌 손상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혈액으로 뇌혈관장벽에 침투하거나 코점막에 위치한 후각신경을 통해 뇌 조직으로 침입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가 부착되는 ACE2 수용체가 풍부한 뇌간(Brainstem)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주로 손상되는 부위다. 뇌간은 호흡을 조절하는 기능을 맡고 있기에 심폐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증식으로 인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뇌와 폐를 포함한 주요 장기에 심한 손상이 유발되어 섬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현재까지 확진자가 1천3백만 명이 넘게 발생했고, 사망자는 57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자는 1만 4천여 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289명에 이른다. 사망률이 15퍼센트를 넘는 나라도 여럿이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지 아니면 보다 큰 위기가 찾아올지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고 수준의 방역과 사회적 격리를 시행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백신이 개발되도록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 백신이 개발되어 온 인류가 예방접종을 받음으로써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이 온다 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겪었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완치된 이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 불면증, 섬망 등에 계속해서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병이 다 그렇듯 코로나19 역시 몸에 발생하는 육체적 질환과 마음에 발생하는 정신적 질환을 한꺼번에 앓는 병이다. 육체적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의료 능력과 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다. 완치 이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정신적 고통을 개인 차원에 맡겨둘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정신과적 치료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는 동시에 사태 종료 이후까지 확진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정서적 돌봄이 가능하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코로나19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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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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