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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의 보호, 안전한 사회를 위해

기사승인 2020.07.23  05: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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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경우 동의 없는 신체접촉이 대부분이고, 검찰까지 가더라도 처벌이 어려워 기소유예나, 증거불충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 체계에서는 경미한 사건임에도, 피해자의 고통은 심각합니다. 가해자를 보면 불안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느낍니다. 우울하고 잠을 못 이룹니다.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납니다. 가해자의 반성을 기다려보지만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또 화가 납니다. 나를 힘들게 한 가해자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상이 무너집니다. 

힘든 시간이 이어지면 신고를 고민하게 됩니다.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면 마음이 더 힘듭니다. 어렵게 성취한 일, 기회, 인간관계 등이 어그러지는 것도 두렵습니다. 나로 인해 여러 사람이 힘들어지면 어쩌나 고민하게 됩니다. 심지어 가해자의 미래나 가족도 걱정이 됩니다. 

신고 후에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싫은 기억을 떠올리며 조사를 받았는데 금방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증거를 제대로 남겨 놓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주변에서 나를 대하는 것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은 표정이면 피하고, 힘을 짜내 평온한 척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심하면 ‘덫을 놓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보복하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사건 이후에 웃는 모습,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그 판단의 증거가 됩니다.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는 가해자라면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괴로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신과 상대가 잘 지냈다는 증거를 사건 전후로 찾기 시작합니다. 사건 전에도 신체 접촉이 있었고 거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약간의 수위가 높아졌을 뿐이다. 그 후에도 우리는 친밀하게 지냈다.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그 날이 문제였다면 그 후에 내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반박합니다. 

가해자와 가까운 사람들은 가해자의 좋은 면을 아까워합니다. 성실하고 업적이 뛰어난 사람인데 안타깝다. 이 사건으로 그 사람을 영원히 잃는 것은 아닐까 걱정합니다. 해당 사건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좋은 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가해자의 미덕을 탄원서에 적기도 하고, 심할 때는 피해자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완벽한 피해자’의 모습을 그려 놓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음모론을 만들어냅니다. 사건 이전에 친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일을 하는 동료로, 존경하는 선배로, 친한 친구로 잘 지내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둘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니면 둘이 포함된 그룹의 안정을 위해 약간의 불편을 참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친밀하게 보였던 모습들이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기억이 과장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일반적인 시선에서 피해로 보기 힘든 주장을 하는 신고인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동의’입니다. 동의 없이 이루어진 신체접촉은 문제가 됩니다. 많은 경우 그 직전의 신체접촉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부하지 않았기에 ‘동의’로 여겼다고 합니다. 혹시 내가 직위가 높아서, 힘이 더 세서,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 확인해야 합니다. 상하관계가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하관계라면 피해자의 적극적인 표현이 없는 경우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더 안전한 조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법 이외의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법은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 큰 원칙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자신을 변론할 수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겠죠.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을 막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합니다. 

저희 대학에는 인권센터가 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법 체계에서 처벌이 불가능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공간 분리 등의 보호조치를 먼저 진행하기도 합니다. 법정보다 먼저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더라도 증거를 기반으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가해자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을 판단합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학교 사회의 문화를 위해,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환경을 고민합니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퇴하는 경우 안타깝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과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이 피해자이고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흔하지만, 반대의 경우나 동성 간에도 성폭력이 발생합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책임을 따져야 합니다. 사건이 ‘0’인 사회가 실제로 안전한 곳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신고하기 쉬워야 합니다. 잘못을 반성하면 다시 수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모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본 칼럼은 2020년 7월 16일 경상일보 ‘[정두영의 마음건강(7)]성폭력 피해자의 보호, 안전한 사회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에 일부 문장을 추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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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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