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를 살았던 많은 철학자 중에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새로이 재조명을 받는 사람으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1632~1677, 네덜란드)가 있다. 그 시대는 주장만 할 뿐,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철학의 테두리 안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간 시대의 보석들이 과학문명이 찾아낸 결과들과 연결되고 있다.

스피노자는 뇌과학이란 말은 꿈도 꾸지 못할 그 시대에, 이미 심신병행론(심신일원론)을 주창하며 17세기를 주름잡던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 프랑스)의 심신이원론에 대응하는 이론을 폈다.

 

현미경,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에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맞선 심신일원론을 내어놓으며, 몸과 마음이라는 각각의 힘과 그것의 연결을 ‘존재存在’의 의미로 강조했다. 지금은 당연할 수 있으나 시절마다 각기 중심된 주장과 논리들이 있었으니, 그 모두를 이기고 힘든 세월을 견딘 스피노자의 혜안이 결코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각각이지만 그 힘이 서로 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로 보아도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다. 17세기의 스피노자는 오히려 동양적 사고에 가까울 수 있는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로 보았다. 그리고 사람의 충동과 동기 유발 그리고 감정과 느낌 등이야말로 인간성의 중심이라고 밝혔다. 

‘마음은 몸의 관념, 단지 뇌의 표상이 아니라 몸의 표상’이라고 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몸과 뇌를 따로 구분했던 그 시대의 주된 흐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신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규명하기 위한 시각이, 오히려 지금, 현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뇌 과학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스피노자의 뇌Looking for Spinoza>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평행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절차로서 한 물체의 양면처럼 모든 측면에서 서로를 모방한다.’고 한 스피노자의 통찰에 대해, 시대를 앞서간 혁명이라고 보았다.

다마지오는 임상을 통한 지속적인 뇌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몸과 뇌와 마음은 하나의 생명체가 각기 다른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비록 과학적 목적으로 현미경 아래에서 이 각각을 해부할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환경에서 몸과 뇌와 마음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사진_픽사베이


일찍이부터 동양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사람의 기본 4가지 요소로 삼아왔다. 지地는 뼈와 살을 의미하고, 수水는 피와 수분을, 화火는 몸의 체온과 기운을, 풍風은 숨 쉬는 호흡을 의미한다. 삼라만상 전체가 돌아가는 이치인 동시에 사람의 몸을 설명하는 원리이다. 불교의 오랜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는 이를 토대로 한 세계관이 발전되어 왔다. 또한 기氣(비물질)와 형形(물질)은, 모든 사물과 자연의 이치를 풀이하고 있는 동양적 사고의 양 축으로, 동양적 사고의 근간이 되어 왔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기의 세계를 아예 접하지 못하고 지낸 터라 형形만으로 세상을 재단하여 왔다. 동양 사상은 보이지 않는 기의 세계, ‘파동의 세계’로 인지하는 세계관을 갖는데 비해, 서양 사상은 형의 세계 즉, 보이는 물질만으로 모든 것을 사유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왔다.

이 둘의 격차는 결국 서양의 입자론적 세계관이 가진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에야 서양에서 먼저 과학 발전을 이룬 덕분에 세상의 한 축인 서양 사상이 앞서간 듯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과학기술로 파동의 세계를 다 밝힐 수 없어 안타깝지만 차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서양에서도 동양의 파동의 세계를 점점 더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는 동양의 깊은 사유와 함께 서양의 과학적 합리성, 이 둘의 양 축이 모아져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뇌가 몸에 영향을 끼치고, 몸 역시 뇌와 마음에 영향을 준다. 마음과 몸,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으로 본디 하나의 실체인, 또 다른 두 측면일 뿐이다.

 

- 도서 ‘감정조절자’ 저자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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