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3)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 사례 #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칭송이 자자한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능력이 뛰어나 승승장구하는 것도 아니며, 부모님께 다른 형제자매보다 더 잘하는 것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남편이나 아이들도 제게 큰 불만이 없고요.

그런데 제가 왜 암에 걸려야 하나요? 왜 이런 몹쓸 병이 저를 찾아온 거죠? 제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아서 이런 고통에 빠지게 된 거냐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이죠.

“예상했던 대로…… 유방암입니다. 3기 후반까지 진행이 되었네요.”

언제부턴가 자꾸 왼쪽 가슴에 작은 망울 같은 게 만져져서 이상하다 싶기는 했는데, 그저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안 남편이 하도 성화를 부려 최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요.

그런데 이런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온 겁니다. 의사로부터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습니다. 이윽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불행을 주시는 겁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이제 제 나이 겨우 마흔둘입니다. 남편하고 아이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사진_픽셀


암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자연스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 순간부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 안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그 생각들은 꼬리를 물며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괴롭게 만듭니다. 이는 암이라는 진단이 죽음이라는 극단의 공포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암 진단으로 인해 떠오르는 여러 불안과 분노는 죽음 앞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부정과 분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정신과 의사로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연구하고 진료했습니다. 『인생 수업』, 『죽음과 죽어감』 등의 저자로도 유명합니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여러 환자를 오랜 기간 대하면서 임박한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다섯 단계를 언급했습니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이 다섯 단계를 하나씩 경험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 다섯 단계는 복합적으로 드는 연관된 감정입니다. 그리고 암 진단 초기에 우리는 부정과 분노의 감정 단계를 주로 경험하게 됩니다.

 

부정

암 진단 후 ‘부정’의 단계는, 암 진단 자체를 의심하는 거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설마, 암이라고? 내가 평소에 건강관리를 얼마나 잘했는데! 작은 병원에서 검사한 거라 분명 오진한 거야. 그러고 보니 그 의사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어. 서울에 있는 큰 병원 교수님에게 검사를 받으면 다른 결과가 나올 거야.”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의사에 대해 불신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 중요한 초기에 다른 병원에 다니면서 불필요한 추가검사로 비용을 쓰고 치료시간을 놓치기도 합니다. 

 

분노

분노 단계에는 암에 걸렸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상황에 대해 답답함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신이나 절대자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원망과 저주를 하기도 합니다. 의사가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주변 가족의 지지적인 말에도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감정 기복이 나타나며 짜증과 화를 내다가도 극도로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 치료를 거부하거나 술과 담배 등 건강을 해치는 행동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암과 지금의 암

암 진단 이후 겪게 되는 부인과 분노 단계는 죽음 앞에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 상태이지만 암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암은 죽음의 공포를 자극하고 죽음 앞에 이러한 과정은 어쩔 수 없이 경험한다지만, 이제는 암이 죽음 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조기진단도 어려웠고 치료방법도 적었기에 암 진단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치료가 가능한 단계에 암을 진단하게 되었고, 진행된 암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암을 관리하며 일상생활을 하도록 치료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미 2016년 발표된 암 통계에서 암으로 인한 5년 생존율은 70퍼센트를 넘었고 앞으로는 더 높아질 겁니다. 암 치료 기술도 더욱 나아지겠지요.

 

암과 죽음을 구분하는 것

결국, 암 진단 이후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오더라도 우리는 암과 죽음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 치료과정에서 동반될 수 있는 통증이나 휴직 등으로 불안한 감정은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암 진단이 곧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오는 여러 감정은 구분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암 진단이 궁극적으로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건 적어도 직면한 미래가 아니며, 치료과정을 통해 먼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암 진단 앞에서 ‘부인’과 ‘분노’로 인해 치료과정을 방해하기보다는 죽음의 공포를 비켜서서 치료의 단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암이 곧 죽음이라는 직접적인 연결성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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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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