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수년 정도 직장생활 경력에 현재는 한 기업에서 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시작은 직장생활이지만 우울증 증세가 심해지면서 전반적인 인간관계와 가족관계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주로 증세는 편안할 때는 이상 없다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혹은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져 블랙아웃이 오거나 다시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며 혼나고 우울하고 화나고 남 탓하고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그런 감정들이 심해지면서 그런 상황에 닥치면 대처하기보다는 눈물부터 나고 외롭고 감정이 닫히는 증세가 심해집니다.

신입이라면 위 사수들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아래/위를 응대하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힘듭니다. 이런 상황을 부모님 친구들에게 얘기하다 보니 처음에는 그들도 공감해주고 들어주다가도 반복되는 상황을 보고 제 잘못이 크다는 식의 생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공부도 잘하면서 칭찬만 받고 자라오다가 학교 입학 때부터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학교에 갔고, 회사도 그렇게 옮겨 다니다 보니 계속 혼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구박덩이? 같다는 쓸모없는 인간인가 그런 생각까지 최근에 듭니다.

누군가와 말을 할 때도 질문에 대해 이해하고 답변하기보다는 다른 얘기를 하거나 가끔 공황이 오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 업종별로 얘기할 때 공통으로 겪는 증상입니다. 요새는 제가 말을 하면 지루하다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많다는 얘기를 집에서나 밖에서 종종 듣습니다.

두서없이 얘기를 또 쓰게 되었는데요. 요지는 늘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점점 열심히는 하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점점 우울감과 기억력 감퇴 분노 억울함 등이 발생하면서 일이나 사람 관계에 성과가 없습니다. 몸이 최근에 너무 안 좋아져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직은 우울증 증세와 약간의 공황증세가 있지만, 나중에 제가 통제가 어려운 상황까지 갈까 봐 고민입니다. 치료해야 할지 문의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 내 스트레스와 우울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고통의 대부분은 업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기인합니다. 당연히 매우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꼭 직장생활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질문자분의 글 역시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우울 증상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적인 어려움도 상당한 듯하네요.

 

이미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우울 증상이 가벼울 때는 약간의 불면이나 피로감 정도이지만 점점 심해지면서 상황일 파악하는 인지기능과 기억력이 떨어져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죠. 내 상태와 상관없이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은 계속 몰아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 심한 경우 쓰러지게 되는 경우도 있죠. 

이렇게 우울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악화되다 보면, 이 현실을 대처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사람에 대한 분노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 나고 남 탓을 하게 되는 거죠.

내가 신입이면 돌봄과 이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잘 넘어갈 수 있고, 최고 관리자라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어 스트레스가 덜합니다. 하지만 중간 정도 위치에 있게 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의 요구를 균형 맞춰야 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한 분노가 기본적으로 있게 되는데, 내 우울에서 기인한 분노가 더해져 인간관계가 더 망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분의 우울은 어디에서 오게 됐을까요? 우울은 갑상선 기능 저하 같은 호르몬 문제에서 오기도 하고, 장기간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장과정의 영향으로 우울의 씨앗이 생기기도 하죠. 질문자분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죽 적어주시다가,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짧게 적어주신 부분이 있네요. 이런 것을 보면 질문자분의 우울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부모님과의 관계가 우울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부모님의 기대는 모든 아동 청소년에게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기대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자녀가 달성할 수 없는 기대를 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 테니까요.

이렇게 부모님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 자녀는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 예측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의 가치를 낮게 생각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틀은 보통 사람은 우울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게 되죠. 

 

질문자분의 우울과 공황 증상은 약을 먹으면 호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 해당하는 스스로의 가치와 타인의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증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현재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약물치료와 증상 예방을 위한 정신치료나 인지행동치료를 동시에 받으시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렇게 답변글을 적다 보면 결국 기, 승, 전, 치료가 됩니다. 하지만 정신 증상이 있는 상황에서는 의학적인 치료는 가장 먼저, 한 번은 시도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네요. 질문자분이 결정을 내리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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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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