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는 사소한 이유로 운다. 아빠의 출근길에 울고 퇴근해서 안아주기 전에 손을 먼저 씻어서 운다. 이유식 떠먹이는 속도가 느려서 울고 쌀과자를 먹는 횟수에 제한이 있다고 운다. 엄마가 없으면 없어서, 있으면 온전히 나만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운다.​

이제 8개월 된 아이의 언어는 웃음과 울음이 전부다. 복잡 미묘한 속마음을 온전히 표현하기엔 한참 모자랄 법도 하지만, 아이는 그다지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그 한정된 언어를 마음껏 구사한다. 웃을만하면 함빡 웃고, 울만 하면 자지러지듯 운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러나 부모에게 아이의 울음이란 참으로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에는 스펙트럼이 없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지루할 때의 울음과, 꽤 높은 높이의 수면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 울 때의 울음은 똑같이 자지러진다. 그래서일까, 부모의 마음은 아이의 울음에서 사소함과 위중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모든 울음에 똑같이 황망해지도록 진화되어 있다. ​

때문에 일단 아이의 울음이 들려올 때 부모는 자동적으로 초조해지고 마음이 철렁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장소가 가족만 있는 집이 아니라, 그 울음으로 불쾌해질 수 있는 타인들이 존재하는 공공장소라면 그러한 부모의 불편감은 더욱 커진다. ‘울면 안 돼.’는 이러한 부모, 어른, 나아가 사회의 불편함을 대변해주는 노래다.

 

아이에게 울음이란 대화의 한 방법일 뿐이고 그것이 불편한 것은 어른들의 감정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속뜻은, 울음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므로 그만하라는 의미와 같다. 부모는, 어른들은, 사회는, 종종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에 부정적인 인식을 덧씌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울음은 그쳐야만 하는 것으로 마음 깊이 자리 잡는다. ​

울음뿐만이 아니다. 슬픔, 불안, 나약함, 모자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불편하고 또 비생산적인 감정들에 대하여 부끄러운 것,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것, 심지어 이에 대해 분노하거나 이와 투쟁해야 하는 것이란 새 이름표를 덮어 씌운다. 그렇게 감정의 이름표를 고쳐 다는 것이 자식의 삶에 낫다고 여기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며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세상이 가르치는 대로 가공하여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의 내 마음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내 마음을 내 모는 데 익숙해진다. 위로가 필요할 때에 스스로가 못났다며 책망하게 되고, 한걸음 쉬어가야 할 때 한 번 더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만큼 더 세상에 알맞게 되지만, 그만큼 내 마음과 멀어지게 된다. 
 

사진_픽셀


슬픔은 살아가며 마음속에 깃들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 위에 치명적인 단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으면 그러한 마음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딘지 모르게 내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그러한 ‘문제’들이 제거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

불편한 생각과 감정이 ‘내 마음속에 없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면 슬픔은 어떻게든 외면하고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말 그대로 ‘울면 안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레 깃드는 슬픔과 만나고, 이를 충분히 소화하고, 그리하여 이와 자연스레 헤어질 수 있는 과정을 상실하게 된다. ​

내가 원하는 마음의 부분만을 타인의 시선 앞에 진열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뒤로 숨김으로서 마음에는 소외된 부분이 생긴다. 그 소외를 먹고 깊은 우울이 자란다.

 

겉으로 그래 보이거나,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마음속에 명랑하고 유쾌한 것들만이 가득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때로는 마음 한 구석에 슬픔이 스미고, 이는 제거해야 하는 문제라거나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약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면 안 돼’ 노래를 부르며 이러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빼앗긴다. 마음의 아픔을 ‘문제’로 간주하고, 이를 숨기고, 분석하고, 해결하려 할 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안아주지 못한다.​

감정은 있는 그대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고이지 않고 자연스레 흐른다. 그러므로 오히려 슬픔이 차오르면 충분히 울어야 한다.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실 때도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

이는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부모와 사회로부터 강요된 주문, 울면 안 된다는 노래를 수십 년 반복하며 자연스러운 슬픔을 외면해 왔던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울면 안 되지 않는다. 안 되는 마음이란 없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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