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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 무기력 씨 이야기

기사승인 2020.08.14  02: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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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7>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문제는 무기력인 것 같아요. 매사 의욕이 없고 기운이 나질 않아요.”

상담 치료를 받으러 온 일명 무기력 씨의 토로다. 그는 한창 혈기왕성할 2년 차 직장인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대학생 때부터 입사를 꿈꾸던 곳이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했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부모님은 틈만 나면 아들 자랑을 늘어놓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고 일 욕심도 많았다. 직장 생활의 미래는 푸른 희망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어떤 것이든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상사들은 그를 믿음직스러운 후배로 여기며 인정해주었다. 

그러다가 1년 뒤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고객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전에 하던 업무와 달리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고객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주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을 때도 있었다. 정이 많은 그는 고객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 고객의 사정이 몹시 안타까운데, 회사에서 도움을 좀 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봐, 자네 너무 감정 이입하는 거 아냐? 그건 프로답지 못한 자세야.”

상사들은 뭐든 고객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그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무기력 씨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입사 초기의 늠름하고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소극적인 자세로 상사들 눈치나 살피는 의기소침한 사람이 된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전화받는 것조차 짜증스러워졌다. 

부서를 옮겨 볼까 생각도 했지만, 다른 데로 가더라도 예전처럼 의욕적으로 일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염려가 엄습했다. 맡은 일을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결국은 이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출근하는 게 점점 힘겨워졌다. 무기력이 일상이 되었다. 친구들 만나기도 귀찮고, 멀리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도 귀찮고, 삼시세끼 밥 먹는 일도 귀찮았다.
 

사진_픽셀


항우울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 중에 ‘포솔트 강제 수영 실험(Porsolt forced swim test)’이 있다. 실험용 쥐 한 마리를 물을 채운 수조 안에 넣고 관찰한다. 쥐는 수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헤엄을 친다. 그렇게 수없이 시도해도 도저히 수조 밖으로 탈출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쥐는 헤엄을 포기한다. 무기력감이 학습돼 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그런 쥐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또다시 의욕이 되살아나 열심히 헤엄을 친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건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무기력을 학습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우울증에 빠진다. 

서커스 공연 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코끼리가 나와서 펼치는 공연이다. 커다란 코끼리가 공연 중에 조련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난동을 부리거나 공연장을 벗어난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덩치의 성년 코끼리가 작은 말뚝에 매인 줄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줄을 매달아 묶어 놓고 절대로 그걸 벗어날 수 없도록 훈련한 결과다. 어른이 되어 얼마든지 힘으로 말뚝을 뽑아 버릴 수 있게 되었음에도 코끼리는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감히 그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조련사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금연이나 금주를 몇 번 시도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사람의 경우, 또 한 번 도전하려 하기보다는 자기는 아무리 해도 도저히 안 된다면서 지레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학습된 무기력이 모든 의욕과 의지를 꺾어 놓은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면 한 분야에 대해서만 무력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학습된 무기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긍정심리학을 창시한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다. 그는 무기력이 학습되는 것처럼 긍정 역시 학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관적인 생각과 무기력을 긍정적인 생각과 낙관적 태도로 변화시킴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맨 먼저 자신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나열한다. 하기 쉬운 것부터 순서대로 정리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산책하기, 청소하기, 요리하기, 장보기, 책 읽기, 음악 듣기 이런 것들이다. 그런 다음 하나씩 실천에 옮긴다. 학습된 무기력을 오랜 기간 경험했다면 전에는 쉽게 생각했던 일조차 버거울 수 있으므로 최대한 단순한 것부터 해야 한다. 

성취에 따른 보상도 필요하다. 한 가지씩 계획한 대로 성취했을 때 평소 갖고 싶었던 걸 산다거나 가볍게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조심해야 할 건 학습된 무기력으로 우울증이 찾아왔을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 마음이 비슷해서 자꾸 조급해지는 까닭에 최후의 수단을 쓰고 싶어 한다. 회사에 사표를 낸다거나 이직을 한다거나 자기 사업을 시도한다거나 하는 행위다. 이런 행동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뭔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단지 현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한 도피적 행동이라서 문제 해결은 물론 치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위 포솔트 강제 수영 실험에서처럼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 잃어버렸던 의욕과 패기를 되찾을 수 있다. 물에 빠진 쥐를 수조에서 꺼내주듯 가능하다면 잠시 일을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휴가를 내는 것이다. 잠깐 휴가를 가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것만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래의 상황과 환경을 내 결정과 의지로 바꿨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는 게 바로 치료의 시작이다. 이렇게 자꾸 긍정을 학습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이 내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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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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