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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가족을 떠나보낸 후 너무 힘들어요

기사승인 2020.08.28  0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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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잘 안 나고, 홀로 된 어머니께선 우리 남매를 위해서라도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집에 저희를 맡기고 다른 지방에 가셔서 일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시골이라 그런지 아버지 없다고 놀림 같은 거 없이 잘 지냈는데, 초등학생 때는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폭언을 듣기도 하고, 중학생 때는 하교하던 중 뒤에서 낯선 사람이 끌어안아서 성추행당한 적도 있고, 고등학생 때는 사람이 많은 게 너무 못 견디겠어서 자퇴 생각도 했었는데 그때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있어서 자살시도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는 무사히 졸업했지만요.

중학교 때쯤부터였나? 음악을 듣다가 아주 가끔 환청을 듣거나, 어떤 물체를 스치듯이 보기도 했는데 사람으로 보이다가 다시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사고 나서 죽는 건 아닐까, 도둑이 들지 않을까 일상생활에서 별거 아닌 일임에도 걱정, 불안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요... 후에 가끔씩 밤마다 우울해진다고 해야 하나 좀 슬픈 기분이 들면 남몰래 울고...

어머니는 워낙 떨어져 지낸 지 오래돼서 개인적인 일을 말한 적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오빠에게도 개인적인 일은 말한 적이 없어요. 친구들에게도 부담될까 봐 말 못 해봤고요.

 

그러다가 2년 전에 키워주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년 전에는 할머니까지 돌아가셔서 그 순간에는 멍하다가도 슬프고 죄책감도 들고, 계속 생각하면 슬프니까 그냥 없던 것처럼 회피하려고 잊고 있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자꾸 나요.

성인이 되고 일을 하면서 할머니 집을 나오게 됐는데 그 뒤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해드린 게 너무 생각나서 미치겠어요.

할머니께서는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괜찮아지셨는데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다른 지방 요양원에 입원하셨었어요. 오빠와 함께 갔는데 처음 보는 할머니신 거예요. 온몸이 붓고 맘대로 움직이시도 못하고 우릴 못 알아보셔서 우리가 찾아뵙지 않는 동안 이렇게나 아프셨다니 너무 마음 아프고 힘들었어요. 퉁퉁 부은 손을 잡으면 진짜 다시는 못 뵐 것 같아서 차마 잡지 못하고 집으로 내려왔어요. 그리고 3일 뒤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손을 잡지 못한 것과 하지 못했던 말이 너무 후회됩니다.

이젠 죽음이 내 곁에 언제나 붙어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이렇게 일만 하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면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을 잊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하고 생각나면 너무 슬퍼져서 힘들어요.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요새 예전 일이 기억이 잘 안나기도 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느낌이고 회사 일도 스트레스라서 더 힘드네요.

주절주절 글이 너무 정신없었네요. 죄송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사연을 주신 분의 어려움은 크게 조부모님과 사별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우울, 불안, 스트레스와 관련된 부분과 조부모님 사별 이후 경험하는 감정적인 부분으로 구분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손이 아닌 조부모님 곁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조부모님은 나에게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분과의 사별 과정에서 정서적인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애도반응이라고 부릅니다.

 

사별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Bowlby는 4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 급성적으로 절망이 오는 시기. 죽음이라는 사실에 저항하고 감각이 멍해집니다. 사실을 부인하고 분노가 치미는 경우가 많으며 수일간 지속되며 애도반응의 각 단계마다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죽은 사람을 보고 싶어서 찾게 되는 강렬한 추구의 단계. 안절부절못하고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에 지치도록 몰두됩니다. 보통 수개월 걸리나 수년간 약한 형태로 지속되기도 합니다.

3단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현실로 느껴지며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과 절망이 찾아오는 시기.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고 무감각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추억을 반복해서 떠올리지만 결국 추억일 뿐이라는 자각으로 실망하게 되며 체중이 줄거나 불면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4단계: 자신을 추스르고 재구성하는 단계. 애도의 급성적인 고통들은 지나가며 삶의 궤도로 다시 돌아옵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할 때 슬픔과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죽은 사람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이러한 4단계를 거치면서, 충격에서 벗어나고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사별한 대상과의 관계, 사별을 맞이하는 상황, 자신의 정서적인 상태, 고통을 감내하는 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애도과정을 경험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이전에 우울증을 가진 경우 애도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애도과정에 필요한지 일치된 결과는 없지만 성인의 경우 12개월을 넘기면서 기능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를 정신과 진단에서 지속성 복합애도장애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전부터 사연을 주신 분이 가지고 있는 우울이나 감정적인 문제가 사별로 악화된 상황인지, 애도과정이 이전에 우울로 인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과정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상황 모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적절한 치료나 평가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부디 적절한 과정을 통해서 어려움을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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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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