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4)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 사례 #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수술 날짜 잡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빨리 일정이 잡혔습니다.

남들은 다행이라며 안심하라고 위로하지만, 저는 아직도 제가 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폐암 3기라니 뭐가 뭔지 어안이 벙벙합니다. 저는 담배라는 걸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지금껏 단 한 개비도 피워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폐암이라니요?

“요즘은 비흡연자들에게 폐암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나 간접흡연 그리고 황사나 미세먼지 등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주말마다 보육원을 찾아 식당 봉사하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들 수백 명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는 일이었죠. 밥과 국, 반찬과 찌개를 준비하려면 몇 시간을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암이라니요.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남편이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손을 꼭 잡아주었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천장의 조명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나을 수 있을까? 건강하게 병원을 나설 수 있을까? 수술실에서 죽으면 어떡하지?’

산소마스크가 입에 씌워졌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눈을 뜬 건 수술이 모두 끝난 뒤였습니다. 온몸이 나른했습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수술이 잘됐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두 딸이 오른팔 왼팔을 하나씩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적인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3기면 재발 확률이 높다는데,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수술 후 길고 긴 투병 생활 동안 들어갈 돈은 어디서 마련하지?’
‘이러다 끝내 일어나지 못하면 저 착하디 착한 남편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두 딸내미 대학 갈 때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저것들 불쌍해서 어쩌나.’
‘나이 오십도 못 된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매일 이런 걱정과 근심이 끊이지 않았고, 밤마다 온갖 종류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환청까지 들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수술 전보다 수술 후가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 조언 #

암 진단 이후 수술 과정

수술적 치료는 암 치료에서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치료 방법입니다.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가 발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몸 안에 생긴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수술로 종괴를 떼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조직이나 림프절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암세포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다른 치료를 병행하게 됩니다.

암 병기가 높다는 건 암 덩어리가 크든가 주변 조직이나 림프절에 퍼져 있어서 수술만으로는 암을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표적 치료 등으로 항암화학요법의 효과가 크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암을 수술을 통해 제거하면 이후 항암 치료의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불안

보통 암 진단은 내과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면 외과로 연계되어 수술 일정을 잡게 됩니다.

이때 진단 때만큼 다시 어려운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운이 좋아 수술 일정이 바로 잡히면 좋겠지만 외과에 연결되어 수술 예약을 잡게 되면 수술하기까지 몇 주를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대학병원의 어느 교수님이냐에 따라 한두 달이 넘게 소요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암 수술인데, 큰 병원에 가서 유능한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 싶지만, 마냥 기다리자니 그동안 암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 치료도 없이 기다리는 사이 몸 안에 암 덩어리가 점점 자라나며 퍼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고 아득해집니다. 

 

수술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당연히 암 진단 이후 가까운 시일 안에 수술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암 덩어리도 더 커지고, 주변 림프절 등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수술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의학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기다려도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련해서 서울대학교병원 한원식 교수님 연구진이 2016년에 발표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유방암 환자 중 암 진단 후 수술 대기 기간으로 각각 15일, 30일, 45일, 60일이 걸린 환자군에서 수술 후 5년 생존율과 치료 후 5년 동안 재발 없이 지낸 비율은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수술 대기 기간으로는 암 치료에 영향이 없었던 셈입니다.

 

우리 몸에 암이 있었던 기간

생각해 보면, 암 진단 당시 우리 몸 안에 있던 암은 그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암이 진단되기까지 우리 몸 안에서 꽤 이전부터 암세포가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건 수개월일 수도 있고, 수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술을 기다리는 기간이 그 암의 진행을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술까지 기다리는 기간을 불필요하게 지연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혹여 진단이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스러워 다른 병원을 오가며 재검사를 반복하거나 주변에 현혹되어 검증되지 않은 요법을 받느라 수술을 미루는 건 암 치료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울과 불안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수술을 미루는 것 역시 불필요하게 수술 대기 시간을 길게 해 암 치료를 방해하는 과정입니다.

 

수술 이후의 여러 불편감과 정서적인 영향

수술받기 전까지 여러 불안과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면 수술받으면서 암 치료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불확실한 불안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치료를 시작하면 그만큼 마음도 일정 부분 안정을 찾으면서 치료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수술 직후에는 여러 가지 신체적, 정서적 어려움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수술로 인한 가장 큰 불편감은 통증입니다. 마취하는 동안은 고통을 못 느끼지만,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면 살을 파는 듯한 통증이 몸을 괴롭힙니다. 그 통증을 줄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한 여러 진통제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런 진통제는 속을 메스껍게 하거나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진통제 때문에도 그렇지만 수술 후 동반되는 여러 생물학적 상황은 우리 뇌의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일시적인 인지기능의 저하나 착란 증상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가족을 못 알아보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거나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심한 초조감에 환각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정신의학적으로 ‘섬망’이라고 하는데, 연세가 많거나 큰 수술을 했거나 내과적인 합병증이 동반되어 있다면 더 흔하게 발생합니다. 다만 이런 섬망 증상은 몸 상태가 안정을 찾으면서 대부분 좋아지게 됩니다.

 

수술 이후의 현실적인 디스트레스

수술 이후에도 여러 정서적인 디스트레스는 내용을 달리할 뿐 계속될 수 있습니다. 수술을 잘 끝냈지만, 암의 병기에 따라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 등 추가적인 어려운 치료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수술만으로 암이 완치된 건 아니기에 이후 암이 잘 치료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걱정이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암 치료에서 과거에 대한 불필요한 반추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부정적 상상은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은 우선 암 치료에 내 몸을 맞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의미에 집중해야 할 시기입니다.

물론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여러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그런 생각은 자신을 더욱 지배합니다. 그건 암을 경험하는 모든 이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스스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생각을 긍정적으로 돌리려 노력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가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제 암 치료는 시작되었고, 수술이라는 큰 문턱 하나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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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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