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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에서 ‘때문에’로, 정부와 의료계는 어쩌다 적이 되었나?

기사승인 2020.09.01  17: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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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계 파업 일람

  지난 7월 23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의과대학 정원을 2022년부터 10년간 연 400명씩 증원해 총 4000명을 확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400명 중 300명은 지역병원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중증·필수의료에 종사해야 하는 특별전형만으로 선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표 소식을 먼저 알게 된 최대집 회장 등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임원들은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아침 일찍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모여 ‘무분별한 의대 정원 증원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의협은 여당과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4대 악 정책’ 등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굳은 의지를 강력히 표출하는 차원에서 1차 총파업을 8월 14일 또는 18일에 하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매일 치열한 전투가 치러지고 있다. 전쟁을 지휘하고 책임지는 사령탑은 정부다. 일선에서 감염병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병사는 의료진이다. 정부와 의료진은 적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공동 운명체, 다른 말로 하면 생사고락을 함께할 원 팀이다. 설령 양쪽이 다른 생각이나 판단을 하고 있더라도 전쟁 이후로 미루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와 의료계는 이 국가적 위기 속에 왜 이런 소모적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일까?

 

  원인을 찾자면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웠다. 세부적으로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고, 공공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건강한 적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며, 지역별로 공공의료기관 및 요양 시설을 확충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전 국민이 저렴하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만들겠다는 데 반대하거나 싫어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에 필요한 재원과 전체 의료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예측이었다.

  정부는 공공의대는 의대가 없는 지역에 신설될 예정으로 필수분야 인력을 양성해 주로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할 계획이라 기존 의대나 병원의 의료진 수요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국내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이제 우리도 의사 숫자를 늘릴 때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의료진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어 지역별 의사 수 격차 또한 심각한 까닭에 의료인력을 확대해 의료 취약 지역과 응급의료, 감염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소위 ‘비인기 과목’ 종사 인력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반면 의료계는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율과 의사 증가율을 고려하면 의사 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의협은 ‘OECD 평균치나 지역별 의사 수’라는 단순 통계로 의료 접근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2019년 보건복지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8년 국민 한 사람이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6.9회, 환자 1인당 평균 입원 일수는 19.1일로 집계되었다. 이는 2017년 기준 OECD 1인당 평균 외래진료 7.1회, 입원 일수 8.2일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보다 제대로 된 수련 병원, 전문 의료진 등 개선이 필요한 의료 인프라에 우선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사 수를 늘린다 해도 공공의료 강화와 지역별 의료인력 공급 불균형 해소 등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다.

  이에 더해 공공의대 학생 선발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후보 학생에 대한 추천권을 시도지사가 갖는다고 했다가 말썽이 일자 전문가·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정부 제시 심사기준 등을 토대로 선발해 추천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한편 10년간 특정 지역에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것은 오랫동안 위헌 논란의 불씨였다며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의 원칙을 어기는 정책이라고 반발한다.

 

  이후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되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가 8월 7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동안 응급실과 분만실, 투석실 등 필수유지업무를 포함한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는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어 8월 16일에는 전국 의과대학생들이 의사국가시험 응시 거부와 동맹 휴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8월 19일에 이르러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이루어져 하루 확진자가 300명에 육박하자 다급해진 보건복지부는 의협과 긴급 회담을 했지만,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이윽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은 21일부터, 전임의(임상강사)들은 24일부터 진료 거부에 들어갔다.

  8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선 모두 발언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불법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국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휴진, 휴업 등의 집단적 실력행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서 의협과 대전협 대표들을 만나 의료계 현안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단체행동 철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의협은 만남에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으며, 정부 또한 지역 의료체계 미흡과 의료수가 문제 등에 공감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양측이 비교적 우호적인 대화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서로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태라서 의협은 정책을 철회하라는 요청을 지속했고, 대전협 역시 정부의 전면 정책 재수정 및 철회가 없는 한 업무 복귀는 없다고 못 박음으로써 극적인 타결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8월 26일이 되며 모든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부가 오전 8시를 기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 전공의, 전임의들에 대해 업무복귀명령을 발령하고, 거부할 시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의대생들의 의사국가시험 거부에 대해서도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응시를 취소시키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천명했다. 파업 자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할 방침이며, 대전협과 의협은 직능단체이고, 직능단체는 파업권이 없으므로 이들이 별도의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의협과 대전협 주도의 단체행동 자체가 모두 불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같은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오전 9시 의협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이미 예고한 대로 3일간 총파업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는 고려대 의대에서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을 최소한 2주 이상 미룰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표면상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지만,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하면서 의료공백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예정대로 의사국가시험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 의과대학 중 가장 먼저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학생들과 전공의들을 지지하며 제자들이 피해를 본다면 교수들이 나서겠다고 경고했고,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제자와 후배 의사들이 정부의 졸속 정책에 의해 피해를 본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경고했다.

  이튿날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59조 2항에 의한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 및 전임의 10명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며, 업무개시명령 효력 범위를 28일 오전 10시부로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양대 의대, 경희대 의대, 고려대 의대, 충남대 의대, 가천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경북대 의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와 교수협의회 등은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8월 28일 의협 최대집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9월 7일부터 제3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무기한 일정으로 돌입할 것”이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의과대학생들은 시험 거부를 강행하고 있다. 28일 기준 전체 응시자 3172명 가운데 2823명, 약 89%가 원서 접수를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국가시험을 하루 앞둔 날까지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했으나 결국 시험은 1주일 연기되었다

  뜨거웠던 8월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이 시작되었다. 향후 의료계의 파업과 정부의 강경 대응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며, 결국 이 사태는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인가?

 코로나19의 재확산이라는 엄중한 국가적 위기를 생각해도 그렇고, 이 일로 시급히 치료받고 수술을 해야 할 환자와 그 가족들이 느낄 고통과 불안을 생각해도 그렇고, 이 사태는 결코 오래 끌어서는 안 될 문제다. 정부의 적은 의료진이 아니다. 의료진의 적 또한 정부가 아니다. 정부와 의료진의 적은 따로 있다. 코로나19 나아가 모든 재난과 질병이다. 이를 위해 지금은 손을 맞잡아야 할 시기다. 서로 총질한다면 공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대타협과 양보만이 살길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모든 것을 전쟁 이후로 미루고 전면 철회해야 한다. ‘때문에’라는 삿대질을 멈추고, ‘덕분에’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손은 강자가 약자에게 먼저 내미는 것이고, 싸움은 건 쪽에서 먼저 사과해야 끝나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너무 힘들고 지쳐있다. 추석 달이 두둥실 떠오르기 전,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수 있도록 희소식을 기대해 본다.

 

유승준 기자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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