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6)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어느 날 버스를 탔다가 뒷좌석에 앉은 두 여중생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 씨○! 진짜 빡치지 않냐? 존나 웃겨, 개○○!”
“맞아, 걔 정말 개쩐다니까? ○○○○ 미친 ○○라니까.”

워낙 목소리가 커서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고등학생 또래의 남학생 여러 명이었다.

“그 꼰대 ○○ 재수 없지 않냐? 완전 개○○○야.”
“존나 밥맛이야. 그런 ○○는 ○○을 ○○ 버려야 해.”

욕설과 비속어가 거칠게 뒤섞인 말의 날 선 파편에 내 가슴이 찔린 듯 움찔했다.
 

10대 청소년들의 대화 속에서 욕설과 비속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욕설과 비속어를 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예전에는 ‘개’라는 단어가 상대방을 욕하는 데 사용됐는데, 요즘은 워낙 많이 쓰다 보니 일상적인 접두사로 사용되는 듯하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말에도 버젓이 ‘개’라는 접두사가 들어간다. ‘개좋아’, ‘개멋있어’ 같은 형태다.
 

사진_픽사베이


욕을 하는 심리적인 배경에는 관심을 끌거나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목적 혹은 흥분된 감정을 표현하거나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기능도 포함되어 있지만, 격한 감정 특히 분노나 공격성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됨으로써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남의 인격을 무시하고 저주하는 언어가 일상을 지배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도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점잖찮은 언어는 비대면과 익명성이라는 가면 또는 안전장치를 획득한 뒤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폭력화된다. 인터넷에는 온갖 욕설과 악성 댓글, 일명 악플이 판을 친다. 

지난 2019년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던 설리는 자신을 겨냥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같은 해 역시 배우 겸 가수로 활약하던 구하라도 근거 없는 악성 댓글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당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둘은 친구 사이였다.

“왜 이렇게 욕을 하는 걸까?”

얼마 전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성 댓글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배구선수 고유민이 생전에 촬영한 마지막 인터뷰에서 눈물로 하소연했던 말이다. 그녀를 끝까지 괴롭혔던 건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광기 어린 욕설과 비난이었다. 연예인들과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이런 무차별적인 악성 댓글은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처럼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욕설은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욕설이 뇌 기능과 관련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사람이 욕설을 들었을 때의 뇌 반응을 관찰한 결과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나 분노와 같은 감정과 관련된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도체 근처의 뇌(변연계)가 즉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원숭이 뇌의 같은 부분을 자극했을 때, 그 역시 극도로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욕은 감성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가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피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폭력 행동은 대뇌변연계와 측두엽 편도체의 방전 현상으로 일어난다. 욕을 만드는 것과 같은 지점이다. 아울러 폭력 행동 시 분비되는 호르몬 역시 욕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욕은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다. 화가 많이 났을 때 상대방을 향해 혹은 혼자서라도 큰소리로 욕을 내뱉으면 속이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욕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물리적 폭력 이상의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이 욕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욕을 자주 하는 아이들을 비교해 본 결과, 욕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인내심과 계획성이 부족하고 자기 제어능력이 떨어지는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 욕을 많이 하다 보니 어휘력도 떨어지고, 사고력도 저하되며, 자아존중감, 자기 통제력, 공감 능력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마틴 타이커 교수팀은 학창 시절 또래 집단에서 언어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뇌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연구해 그 결과를 2010년 12월 ‘미국정신건강의학지’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언어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뇌는 보통 사람들의 뇌와 달리 뇌량과 해마, 전두엽이 상당히 쪼그라들어 있었다.

전두엽은 이성의 중추로 청소년기에 성장하기에 이때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이성이 본능을 통제하지 못해 충동적인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의 연결통로로서 이 부분이 손상되면 어휘력과 사회성에 문제가 생긴다. 해마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다. 해마에 문제가 있으면 쉽게 불안해지고 우울증이 찾아올 확률이 높다. 심할 경우 자살 충동까지 느낄 수 있다.

뇌가 이렇게 위축된 이유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뇌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직접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많은 사람이 불안, 우울증, 소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가 있는데 혀는 하나뿐이다. 보고 들은 것의 절반만 말하라는 뜻이 아닐까. 아무리 화가 났을 때라도 말을 함부로 쏟아버리지 말라. 말은 업이 되고 씨가 되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코, 막말하지 말라. 둘 사이에 금이 간다.” 

법정 스님이 남긴 말이다. 욕은 내뱉는 당사자나 듣는 상대방 모두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몸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남긴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0대의 경우에는 부모나 교사 등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 아름다운 말, 칭찬하는 말이 습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폭력적인 내용의 매체에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특히 조폭 영화는 시종일관 욕설과 비속어가 차고 넘친다. 폭력은 전염성을 갖는다. 욕도 자꾸 들으면 익숙해진다. 

둘째,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경우, 욕 대신 다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분노나 좌절을 충동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욕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른 말로 표현하도록 허용한다면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셋째, 아름다운 우리말이 가득한 시집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명작 소설 등을 자주 읽는다.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외우면 더 좋다. 언어생활은 습관이다. 

넷째, <언어 일기>를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저녁때 하루를 돌아보며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해 좋았던 말, 좋지 못했던 말을 적어 보는 것이다. 좋았던 말은 자꾸 입에 붙도록 되새기고, 좋지 못했던 말은 다시는 쓰지 않도록 억지로라도 애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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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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