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여자 친구 문제 때문에 고민입니다. 

저에게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여자 친구가 상처가 많습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짧은 결혼 생활을 하다 이혼한 이력이 있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지만, 남편의 강요로 낙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아기를 지우면 떠나지 않겠다 하여, 수술을 했지만 3개월 뒤 전 남편은 여자 친구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만나는 남자들마다 유부남이거나, 바람을 피거나 계속 그렇게 상처만을 받아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를 만나게 되었고요.

마음을 여는 것이 참 어려웠지만, 결국 사귀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과거에 만났던 여자 친구에 대해 과도하게 의식하고, 저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계속합니다. 여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후로는, 여자 친구의 감정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사소한 일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 보고 있기 힘들 정도입니다. 제가 옆에서 꼭 붙어 돌보고는 있으나 정신적 치료가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 친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SNS로 지난 것을 들추고 내 페이지에 있던 전 여친과의 시간에 대해 화를 내며 얘기를 한 후, 손목이나 팔에 자해를 합니다. 너무 슬프고 무서워요. 행복할 땐, 한없이 행복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럼 저는 다시 옆으로 가서 아무 일 없을 거다, 항상 네 옆에만 있을 거라고 하며 위로를 합니다. 이런 일들이 2개월 간 지속되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정신과를 방문하기로는 했는데, 내가 옆에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요. 

여자 친구의 상처를 대체 어떻게 돌봐줄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짧은 글에서도 그간 겪은 경험들로 여자 친구분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글에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의 이혼, 원치 않는 수술, 믿었던 사람의 외도는 여자 친구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는 원인이 되었을 것 같아요.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상처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 자체에 취약해지는 것이지요. 관계에 취약해진 상태에서는 세상 모든 타인들에 대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웁니다. 타인에 대해 공격적이 되고, 때로는 실제로 비난하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또, 믿음을 잃은 삶은 항상 불안해집니다.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고, 가까스로 마음을 열고 나면 그 상대가 언제 마음이 변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또 나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지요. 그래서 자꾸만 상대에게 자꾸 확인하려 합니다.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위안은 일시적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안정감을 주는 것이 참 쉽지가 않아요. 

때로는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그리고 자신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위협을 합니다. 여자 친구분처럼 자해를 하고, 폭발적으로 화를 내기도 하지요. 그때의 모습은 마치 울며불며 떼를 쓰는 취약한 아이와 같아요. 아마 그때의 마음은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나를 떠날 거야?’ 하는 마음일 테지요. 그래서 질문자님께서도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고, 위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니까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받았던 상처가 한두 가지 방법으로 사라지기란 참 어렵습니다. 저는 노력의 ‘방향’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치료를 받기로 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약물이나 상담 치료보다도, 여자 친구분께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헤아려 보는 평가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치료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 여자 친구분께 안정감을 줄 겁니다.

중요한 건 치료의 지속성입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면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 질문자님께서 때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긴 시간 동안 습관과 패턴이 되어버린 불안정함은 변화하는 데 있어 꽤 오랜 시간이 들기 때문이지요. 

 

이런 경우 남자 친구분께서 구체적인 도움을 주거나, 어떠한 방법을 선택해 도와주기보다 여자 친구분의 감정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 굳건하게 그 파도를 받아줄 수 있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자 친구가 따라서 감정이 동요하기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적당한 거리감도 중요합니다. 적당한 거리에 있으며 아이의 감정을 살피며, 또 한편으로는 아이 혼자서 사랑하는 이가 제공하는 안정감 안에서 껍질을 깨고 조금씩, 자신을 가두었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시간이 필요할 테고요. 

 

출렁이는 파도를 마주하는 일이 쉽지는 않으나, 과격하게 흔들리는 물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화되기 마련이니까요. 부디 두 분이 힘을 합쳐 이 파도를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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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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