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림의 <사랑 때문에 아픈가요?> (1)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윤미림 전문의] 

 

거리에 나가 보면 나만 빼고 다 즐거운 것 같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연인끼리, 부부끼리 앉아 두런두런 다정히 동행한다. 공원 산책로에서도, 헬스클럽에서도 이들은 늘 함께인 것처럼 보인다. 식당에서 홀로 밥 먹을 때, 서로 입에 밥 떠 넣어주는 젊은 남녀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혼자 극장에 가서 처량하게 영화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들 애인이 있는데, 왜 나만 없는 걸까? 혼밥, 혼술…… 왜 나만 늘 혼자서 뭘 해야 하나? 내가 매력이 없을까? 게을러서 그런 걸까?

사랑하는 내 반쪽을 만나고 싶다. 이왕 만날 거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좀 모자란 사람, 덜떨어진 사람,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외롭지 않게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 마시며 종일 수다도 떨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집 검색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식도락도 즐기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드라이브를 즐기며 바닷가에도 다녀오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극장에 가서 손 꼭 잡고 팝콘 먹으며 영화도 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실내포차에 들어가 낄낄대며 소주 한 잔 기울이고도 싶다.

과연 내 생애 그런 날이 오려나? 이왕 올 거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진_픽셀


외로움.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생들은 어떨까? 짝이 없는 대학생은 공강 시간에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어 혼자 카페나 도서관을 가기도 하고, 공부에 몰두해보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혼자 수업 듣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놀러 다니는 게 지겹다. 

직장인은 더하다. 퇴근 시간 훌쩍 지나 야근이 일상이지만, 간혹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진한 외로움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회사 내에서도 개인주의는 만연해 있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동료란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는 끈끈한 관계라기보다는 같은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퇴근하면 완전 남남인, 그저 사회적 공존 관계일 뿐이다. 

주 40시간 근무로 ‘저녁이 있는 삶’이 생긴 후에도 여전히 나는 외롭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소셜 살롱을 기웃거려 보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모임 뒤에는 더욱더 외로움이 밀려든다. 혼자 여행을 떠나 경이로운 건축물과 위대한 자연을 감상하다가도 문득, 이런 광경을 나 혼자 봐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나를 격하게 반겨주는 존재, 마음 놓고 떠들며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유일하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기 어렵게 되면서 종일 넷플릭스를 헤매며 살지만, 외로움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남들은 다 애인이 있는데, 왜 나만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 나만 싱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한없는 외로움이 엄습한다. 어느새 한기가 옆구리에 가득 찬다. 

하지만 나만 홀로 외로운 게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외로운 사람들, 참 많다. 외로운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속내를 들여다보면 외로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만 격리되었다고 인식될 때, 실제로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뇌에서 고통을 관장하는 부위를 자극함으로써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외로움을 1년 이상 만성적으로 느끼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외로움과 고독은 어떻게 다를까?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였던 폴 틸리히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언어는 현명하게도 혼자 있음의 두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단어를 남겼다. 혼자 있음의 고통에 대해선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혼자 있음의 영광에 대해선 고독이라는 단어를.”

혼자 있는 게 힘들고 자신을 점점 파괴한다고 느껴진다면 이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지만, 혼자 있음으로써 새로운 상상력이 솟아나고 창조의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오래 머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전자를 외로움이라고, 후자를 고독이라고 부른다.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을 달래고,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홀로 설 수 있어야 같이 있을 수 있다고. 혼자서도 잘살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해보니 혼자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해서 같이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혼자가 너무 외로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성급하게 부적절한 상대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후회하거나 자신의 의존심으로 인해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홀로 선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인생의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존재는 이성 이전에 나 자신이 먼저다. 자신을 사랑해야 외로움이 걷히고, 고독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를 외로움에서 구원해 줄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 이전에 나 스스로이다. 연인에게만 사랑을 갈구하며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것을 기대했다가는 반드시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널리 알려진 방법들이 많다. 명상하기, 감정 일기 쓰기, 나에게 선물 주기 등……. 골자는 내가 내 감정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내 엄마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알아가고 보살피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어색하고 잘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 힘들다. 자기 이해, 자기 사랑이 시작되면, 굳이 누군가를 갈구하지 않아도 외로움은 이미 저 멀리 남의 이야기가 돼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오히려, 반짝이는 나를 향해 사랑하는 누군가가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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