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부모의 심리학> (5)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전쟁 등 큰 격변기를 지나고 나면 갑자기 인구가 증가한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미뤄두었던 결혼과 출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라고 부른다. 베이비부머는 나라 사정에 따라 연령대가 다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년부터 1965년까지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베트남 전쟁 참전 전까지인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베이비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한다는 건 경제적 생산 활동을 멈추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경제력이 상실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뿐 아니라 장성한 자녀의 취업, 결혼, 출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계속 책임지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막중한 책임감이 자녀들에 대한 유무형의 증여로 이어져 부모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는 723만 명이고, 이들의 고용률은 66.9퍼센트다. 이 고용률 중 상당수는 재취업 혹은 아르바이트 수준의 돈벌이다. 이미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는 정년을 채웠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에는 아직 건강한데다 지출할 곳은 여전하니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기에 취업 전선에 나선 것이다.

이들 중 맏형인 1955년생은 올해 만65세가 되어 노인 인구로 편입되었다. 이제 10년 안에 베이비부머들이 전부 노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7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되어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자식들에 의지해 산다면 이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 발생과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는 취업이 어려워 미취업 상태인 젊은이들이 많고, 미혼인 상태로 1인 가구를 이루며 사는 사례도 많아 과거처럼 가정 안에서 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다.

은퇴 후 노인이 된 부모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건강과 경제력이다. 

그런데 같은 세대라고 해서 경제력이 엇비슷한 건 아니다. 재벌을 비롯한 큰 부자가 있는가 하면 생계도 어려운 극빈층이 있다. 경제력과 심리학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돈 많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효도받으며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가난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홀대당하며 불행한 노년을 보내야 하나?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중산층 부모들이 가장 무난한 행복을 누릴까?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노년의 정신 건강이 큰 영향을 받을까?
 

사진_픽사베이


부자 아버지와 부자 어머니는 노인이 되어도 행복할까?

대다수 연구에서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와 연관 있는 요인은 소득수준이었다. 즉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득수준 외에도 노인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았다. 예를 들면 결혼 상태나 배우자의 생존 여부도 삶의 질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이한 점은 남성 노인들은 배우자와 동거하고 있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여성 노인들은 동거 여부가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성격적으로는 외향적이거나 낙관적인 노인일수록 그렇지 못한 노인들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리고 물질적인 부도 중요하지만, 생산적 활동을 하는 노인들도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서점에 나가 보면 부자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돈 많이 버는 비결을 가르쳐주는 책이 넘쳐난다. 경제가 어렵고 사는 게 힘들수록 이런 책들은 더 쏟아져 나오고 잘 팔린다. 부자가 되는 것, 많은 사람의 소망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린다. 부자만 되면 저절로 행복해지고 걱정근심 없이 잘살 것 같다.

하지만 부자가 된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부자가 되고 나서 재산을 어디에 소비하고 분배해야 좋은지를 알려주는 책은 별로 없다. 오로지 부자가 되는 목표만 있을 뿐 부자로서 존경받고 행복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자는 많지만 존경받는 부자는 드물고, 돈은 많이 벌었으나 행복한 가정은 흔치 않으며, 천신만고 끝에 부를 쌓았음에도 그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벌 가운데 상당수는 재산 때문에 부모와 자식 사이가 멀어지고 다툼이 생긴다. 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은 막장으로 치닫기 일쑤다. 부모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도 그 앞에서 형제자매 간에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 같은 싸움을 벌인다. 심지어 부부 혹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사이에도 재산을 놓고 소송까지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내 모 재벌 그룹에서 벌어진 아버지와 두 아들 간의 분쟁은 오랫동안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두 아들을 믿지 못해 끝까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은 채 재산을 틀어쥐고 있던 아버지의 노욕과 그런 아버지로부터 어떡하든 경영권 승계와 재산 상속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하던 두 아들의 과욕은 이들이 과연 부자지간이 맞는지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사태가 깔끔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의 승강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가족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란 어떤 의미일까?

재벌은 아니라도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부모에게는 늘 재산분할과 유산상속이라는 과제가 따라다닌다. 부모에게 자식은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고 살면서도 호시탐탐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애물로 보일 수 있고, 자식에게 부모는 언제나 화수분처럼 물질적 풍요를 공급해주다가 말년에 큰 선물을 남기고 떠나는 물주로 보일 수 있다.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재벌이나 부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부모 자식 사이에 이런 대화가 흔하게 오간다. 

“아들딸 손주들 다 소용없어. 저것들이 나한테 잘하는 건 다 내가 가진 돈 때문이라고.”
“여보,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합시다. 노인네들 돌아가시면 저 재산 다 우리 것 되는 거야.”

 

돈 많은 부모와 돈 때문에 효도하는 자식 사이의 갈등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는 대한민국 최초로 대학에서 부자학을 강의한 인물이다. 그는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 개론』에서 어느 나라든 부자는 고독한 존재라고 정의한다. 

“부자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고독의 그림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다. 부자라는 이유로 ‘부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부자이기 때문에 ‘남을 믿지도 못하고, 타인들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 부자이기 때문에 ‘늘 혼자 지내야 한다.’ 이러한 부자의 고독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을 고독비용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부자를 직접 인터뷰한 그는 부자들의 가정불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부자들의 가정은 대부분 일반인들의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목함이 덜하다. 쌓아 놓은 풍부한 재산은 언제나 분배와 상속문제를 야기하게 되어 있다. 자녀가 한 사람이어도 문제고 여럿이어도 문제다. 집안의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부부간의 사이가 좋지 못한 부잣집은 언제나 재산분배를 둘러싼 총성이 멈추지 않는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과 그 부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인 셈이다. 지혜롭게 집안을 다스리고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풍부한 돈은 오히려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본능이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부자가 되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건 아니지만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 돈 때문에 나와 내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줄 알았던 돈이 가정불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면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인가. 안타깝게도 돈이 많다 보면 이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끝없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된 객관적 사실에 가깝다.

 

욕구와 요구와 욕망은 어떻게 다를까?

배가 고프면 허기를 느끼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생리적인 충동을 욕구라고 한다면, “밥 좀 주세요.”라고 외치며 이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 요구다. 그렇지만 유한한 언어로는 인간의 욕구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으므로 욕구와 요구 사이에는 간격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기서 욕망이 생겨난다. 이를테면 더 기름지고, 더 맛있고, 더 짜릿하고, 더 달콤하고, 더 색다른 것을 원 없이 먹고 싶다는 식의 강렬한 바람이다. 뭔가를 하고 싶고, 이루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바로 욕망이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절대로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적정한 선에서 욕망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자족하는 삶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먹게 될 산해진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 배우자나 자녀들과 함께 마주하게 될 된장국에 김치뿐이지만 따뜻한 밥상이 소중한 것이다. 내가 자족하는 삶을 살고, 내 자녀들에게 자족하는 삶을 가르쳤을 때 훗날 부자가 된다 해도 불화한 가족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돈 벌어 부자가 되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며, 가족 모두 화목하고 행복하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고, 이에 더 바랄 게 없는 인생이겠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많은 돈과 화목한 가정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한동철 교수는 진정한 부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정신적 덕목으로 ‘정직’, ‘헌신’, ‘도덕성’ 세 가지를 꼽았다. 물질적 풍요는 넉넉한 소유로 인해 편리함을 줄 수는 있으나 가정의 평화와 가족의 행복까지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풍요까지 갖춘 진정한 부자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면 자녀들 또한 참다운 부를 물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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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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