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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처방전 - 재택근무에서 과연 워라밸이 보장될까?

기사승인 2020.09.07  09: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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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10>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우리 회사는 다음 주부터 긴급요원을 제외하고 전부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어.”
“와~ 정말이야? 부럽다 부러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왜 아무런 말이 없는 거야?”

얼마 전 친구로부터 자기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부러웠다. 콩나물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오랜 시간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고, 돌이 얼마 남지 않은 딸내미를 종일 볼 수 있으며, 육아에 시달리는 아내의 집안일도 틈틈이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최근 코로나 집단감염이 더욱 늘어나면서 마침내 최방콕 씨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보다 뛸 듯이 기뻐한 건 최방콕 씨였다. 오랜 꿈을 이룬 듯 흥분됐다.

하지만 며칠 집에서 일을 해보니 재택근무라는 게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그런 환상적인 그림이 아니었다.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고,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을 분간하기 모호하며, 혼자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만 업무를 처리하니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밤이나 낮이나 혼자 있으니 재미도 없고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할 때보다 몸은 더 피곤했다. 낮에 일을 끝내지 못해 저녁까지 일하기 일쑤고, 평일에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아 주말까지 일에 매달려야 하며, 방에서 일하다 집중이 안 되면 거실로 나가 일하다가 깜빡 잠이 들거나 무심코 텔레비전 리모컨에 손이 가기도 했다. 딸내미 울음소리와 아내의 잔소리가 점점 지겨워졌다. 아들이 재택근무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얼굴이나 보겠다며 불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일도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워라밸은 개뿔. 아, 빨리 회사 가서 일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지난 8월 하순 한 구인 구직 매칭 플랫폼이 342개 기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 실시 현황’을 조사한 일이 있다. 그 결과 전체 기업의 36.3%가 유연근무제를 실시한다고 밝혔으며, 그중 27.4%가 재택근무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를 시작한 2017년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이 조사에서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선택한 이유는 ‘직원들의 워라밸 보장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45.2%로 1위였다. 직원들의 워라밸을 보장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위험도 줄일 수 있으니 기업이나 직원 모두 유연근무제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는 추세라서 재택근무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과연 재택근무가 직장인들의 워라밸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거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이 회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보다 대략 1주일에 5~7시간을 더 많이 일하고, 몸이 아프거나 휴가 중일 때도 종종 업무에 매달리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한편 다른 연구에서도 직장인들에게 시범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한 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절반가량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재택근무가 모든 직장인에게 긍정적인 근무형태는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진_픽셀


지금처럼 감염병 위험이 높아진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회사마다 재택근무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워라밸을 잘 유지하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일하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근무 시작 전 루틴(routine,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만드는 게 좋다. 늦게 일어나 씻지도 않고 아침밥도 거른 채 책상에 앉는 건 삼가야 한다. 그래서는 업무 능률이 오르기 어렵다. 반드시 깨끗이 씻고 아침밥을 먹은 후 제대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책상에 앉아야 한다. 출근하는 것처럼 복장을 갖출 필요는 없어도 잠옷은 입지 않는 게 좋다. 그날 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리스트에 있는 일을 무조건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스트에 있는 일을 다 마치면 그날은 일을 더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가정환경은 사무실 환경보다 유혹이 많은 까닭에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업무 일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 

둘째, 근무 장소와 시간을 명확히 하는 게 좋다. 책상을 업무용 공간으로 만들거나, 거실이나 주방 식탁을 업무용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대신 쉬는 시간에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야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할지도 명확히 구분해놓아야 한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회사에서 퇴근하는 것처럼 업무를 중단하고 업무용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때부터 집은 편안한 휴식 공간이다. 일할 때 업무용 공간에서 듣는 음악과 쉴 때 휴식 공간에서 듣는 음악을 달리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일할 때 입는 옷과 쉴 때 입는 옷을 구분하는 것 또한 괜찮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셋째, 브레이크 타임을 확실히 지킨다. 평소 회사에서 일할 때 50분 일하고 10분 쉬었다면 집에서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쉬는 시간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점심시간도 정확히 챙겨야 한다. 밥 먹고 나서 곧바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밥을 먹은 후에도 짧게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심으로써 확실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 

넷째, 나의 재택근무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게 좋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가 재택근무 중에도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만 함부로 내 근무 시간을 방해하거나 침범하지 않는다. 최방콕 씨처럼 아기가 있다면, 내 의사와 관계없이 수시로 방해받기가 쉽지만, 아내와 의논해 근무 시간에는 최대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한 가지만 더 조언하자면, 집에는 생활을 위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라서 편안하게 업무를 보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근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구나 전자기기 등을 별도로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 회사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다 놓는 게 제일 좋지만, 이게 어렵다면 새 가구나 물건을 구매해야 할 수도 있다. 

 

미군 장교인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동료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있었다. 포로 생활 중 처참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잘 대비한 그는 결국 살아남았지만, 아무런 대비 없이 그저 곧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리면서 상황을 낙관한 동료들은 계속되는 상심을 이기지 못한 채 전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곧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맥없이 보낸 사람들보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현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생각한 스톡데일이 냉혹한 포로 생활을 무사히 견뎌낸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나타난 합리적인 낙관주의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는 수용을 바탕으로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동반한다. 스트레스 상황을 회피하기만 하는 비관주의자에 비해 합리적인 낙관주의자는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현실을 수용하는 융통성 있는 대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위기 속에서 지혜로운 재택근무를 하려면 우리 모두에게 스톡데일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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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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