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동래병원 이상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조금은 이상한 두 회사를 거쳐 드디어 올해 초, 평범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고졸 신분으로는 받아주는 회사도 많지 않고 졸업하고 1년 정도 아르바이트만 하며 생활했습니다. 네 나이에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가뜩이나 없는 자신감이 더 없어졌고,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입사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이 사업장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의 막말과 상사들의 갈굼 그리고 무책임한 태도에도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 나를 받아주는 데가 없다'라는 마음으로 무너지는 자신을 붙잡고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러나 신생 사업장이기도 하고, 회사 수입은 안정적인데 초보 사장님의 미숙함 때문에 사업장을 정리할 위기에 처해 언젠가는 결국 퇴사를 해야 하는 제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몇 주, 기왕 새로운 직종에 뛰어들게 될 일, 조금이라도 일찍 나와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사장님께 '네가 경력을 1년도 못 쌓고 우리 회사를 나가서 잘 될 것 같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 네가 가봤자 어딜 가겠냐'라는 말을 들으니 단단히 먹은 마음이 무너지고 불안합니다. 제가 무너지는 제 마음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그때처럼 1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막막하고 힘이 듭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끊이지를 않아요.

고졸인 제가 4년제 학위를 얼마 만에 딸 수 있을지, 그 비는 시간의 간극을 어떻게 채울지, 4년제 학위를 따더라도 대학원생이 더 유리한 제가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이 직종에서 과연 제가 취업은 할 수 있을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부터가 너무 막막하고 눈앞이 깜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옳은 선택을 한 걸까요? 제가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정상인 걸까요, 아니면 제가 너무 나약한 사람인 걸까요? 답을 꼭 듣고 싶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상준입니다.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은 아니지요. 학교 안에서 모두가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생활할 때와 달리, 학교 밖의 사회는 때로는 냉혹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더구나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여러 지지 체계들이 없다면 이는 더욱 힘든 시기가 될 수 있지요.

새로운 환경이 나에게 너무 버겁고 스트레스가 될 때 우리는 적응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물론 언젠가는 적응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 다른 누구보다도 더 적응을 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적응을 잘하는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답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미쳐 준비하지 못한 환경에서 무언가를 해 나가야 할 때 그 스트레스 정도가 임상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정도라면 흔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적응장애라고 부르는 질병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질병의 이름을 두고 내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적응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적응의 어려움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거든요. 그중에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는 20-30대뿐만 아니라 40-5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울, 불안, 행동 증상 등 다양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증상들이 적응장애에 동반될 수 있답니다.

 

질문자 님의 글에서의 ‘무너지는 마음’, ‘너무너무 막막하고 힘이 듭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끊이지를 않아요.’ ‘눈앞이 깜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상인 걸까요’ ‘나약한 사람인 걸까요’ 등의 문구들은 현재 마주한 상황에서 주관적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선택의 기로 혹은 결정의 기로에도 놓여있으시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사회에서의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합니다. 어떠한 사회적 지위로서 삶을 그려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시기인 것이지요.

다양한 상황들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그것은 성장을 위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장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내가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일상이나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잘 해왔는지, 내가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지 않았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등을 함께 탐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태가 나에게 어떤 역기능적인 모습을 유발하고 있는지도 탐색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의 내가 온전한 나로서 지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아져야 하는 지도 함께 논의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환경적인 요인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 것인지도 논의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 처해있는 스트레스에서 ‘나’를 어느 정도 구해내는 것이 우선 필요해요. 그렇게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면 그다음이 결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질문자님의 경우라면 진로에 대한 선택이겠지요. 이 부분에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선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줄 수는 있답니다.

심리적 어려움에 빠져 있는 질문자님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드립니다.

 

덧붙여 현재의 직장은 진료 과정에서 그 의미와 장단점 등에 대해 상세히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기에 위에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질문자님께 긍정적이거나 도움이 되는 조직이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진로에 대한 도움을 구할 진실한 멘토나 환경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가 원한다고만 해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요.

다만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비슷한 고민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 등은 어디서나 접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경험과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나의 어려움을 ‘일반화’ 시키는 것도 하나의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 먼저 그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을 하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나에게는 좋은 참조가 될 수 있겠지요.

지금 내가 가진 나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은 이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생각들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세요. 모쪼록 질문자님의 어려움이 해결되어 밝고 편안한 날들이 오길 기원합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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