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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만 박혀 있으니 우울한 거 아닙니까

기사승인 2020.09.14  0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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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

누구나 안다. 앉아만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걸. 

가만히 방구석에만 앉아 있으면 몸도 마음도 계속 방구석으로 깊이깊이 침전할 따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밖에 나가 햇볕도 좀 쐬고, 비타민 D도 좀 합성하고, 시원한 공기도 좀 마시고, 사람들도 만나고, 땀나도록 몸도 좀 움직여야, 그래야 마음도 한결 들떠오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은 누구나 방구석에 앉아만 있어야 하는 사회다. 그래야만 착한 아이, 바른생활 인간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역병은 전 세계인들을 점점 더 좁은 울타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경과 국경 사이의 울타리, 사회와 사회 사이, 바깥과 방구석 사이의 울타리를 점점 더 높이 쌓아 올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집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역병을 퍼트리는 잠재적 보균자가 되어버릴 따름이다.
 

모두가 집 안에만 갇혀있다. 햇볕 쬐기도,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도,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몸과 함께 마음도 점점 가라앉아 가는 것만 같다. 우울해져만 간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운 말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하다는 말부터가 이젠 식상하다. 집안에만 박혀 있으니 우울해져 가는 이 현상이, 그 자체로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뉴노멀(New-Normal) 중의 하나로 블루(Blue)가 들어선 셈이다. 우울이 일상화된 세상이다.
 

사진_픽셀


2.

밖에 나가서 하는 활동적인 생활이 우울감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상식은 틀린 말이 아니다. 주로 앉아서만 지내는 생활양식, 이른바 좌식 생활(Sedentary behavior)이 우울증의 위험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적절한 운동은 당뇨나 비만, 심혈관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의 개선에도 직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앉아서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정말 우울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 블루는 정말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앉아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 것일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똑같은 좌식 생활이라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활동 여부에 따라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약 2만 4천여 명의 우울증 환자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연구에서는 좌식생활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하여 생활양식 변화에 따른 우울 증상 변화 여부를 관찰하였다. 앉아서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등 수동적인 활동을 하던 시간을, 똑같이 앉아있다 하더라도 뜨개질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신활동의 시간으로 변화시켜 보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하루에 약 30분 정도의 정신활동 변화에 대략 5% 정도의 우울증 증상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즉, 신체적으로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어떤 상태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우울감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연구가 시사해주듯, 제한된 신체적 생활 반경이 무조건 우울감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은 방구석 라이프라 하더라도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기분과 정신건강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꼭 밖을 나돌아 다니지 않아도 우울을 벗어낼 수 있다. 즉,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린 이 우울감, 코로나블루의 원인 역시 단지 우리가 집안에 갇혀있기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3.

사실 꼭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대인의 생활양식은 그동안 점점 더 좌식 생활의 비중을 높여오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실내로 들어오고 있다. 기계들이 노동 현장을 점점 더 많이 차지하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책상 앞에서 하는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다. 여가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모바일 문화와 OTT, 게임 산업의 발달은 우리들을 노는 시간에조차 실내에 붙잡아두고 있다. 일상생활 모두가 점점 의자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수렴하고 있다. 언택트(Un-tact)와 방구석 라이프. 이는 어쩌면 비단 코로나19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불가피한 흐름이었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정말로 바꿔 놓은 것은 사실 증가된 좌식 생활양식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행한 가장 끔찍한 일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신과 의심을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메워지기 힘든 골이 깊이 파였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무언가에는 불결한 위협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인식.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오염될 수 있다는 인식. 그 인식은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빠르게 확산되어 버렸다.

 

4.

투사(Projection)는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방어기제 중 비교적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남 탓’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투사라고 할 수 있다. 

투사는 분열(Splitting)을 기반으로 하는 방어기제이다. 자기 내면의 대상 중 일부를 분열시켜버려서 외부의 무언가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무언가를 나에게서 떨어트리는 방식, 나에게서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그것을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투사(投射)해버린다.
 

어쩌면 우리들을 서로 가둬놓고 있는 그 높다란 울타리의 정체 또한 투사된 우리들 자신의 분노와 우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를 정녕 좌절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드는 그 흑막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사뭇 섬뜩해온다.

분명 지금은 모두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빚어낸 우울과 공포가 마치 연가시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두려움과 분노를 타인에게 비난으로 투사하도록 몰아세우고 있다. 사실은 모두가 밖에 나가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지만, 그 열망의 크기만큼이나 날 선 눈초리로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다. 우울이 일상화된 만큼이나 비난과 혐오가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5.

코로나 블루라는 슬픈 유행어가 익숙해지는 것처럼, 정말 두려운 것은 코로나가 우리의 우울을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보다 더 우울하고 전보다 더 예민해져도, 전보다 분명 우리의 마음이 지쳐가고 있음에도 코로나 때문이라며 합리화시키고 있다. 

“다들 코로나 블루라잖아.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모두가 우울 정도는 당연한 일상이라며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 우울감은 일상이 된다고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억눌린 우울감은 잘못된 방향으로 터져 나오거나 스스로를 짓누르게 마련이다. 분노로, 힐난으로 투사되기 십상이다.

 

6.

좌절감과 우울감을 방치하고 일상 속에 허용하는 이유는 개인의 노력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결국 밖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 우울해지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그렇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결국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 없다는 현실만큼은 분명하다. 역병이 창궐하는 혼란의 현실에 갇혀있다. 그렇지만 위의 최신 연구결과에서도 이야기하듯 나의 몸이 집 안에 박혀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구제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정신치료를 펼쳤다. 이른바 로고테라피가 바로 그것이다. 빅터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통해 끔찍한 홀로코스트 현장에서도 올곧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방법을 전하며 역설한다.

그는 ‘왜’가 아닌 ‘어떻게’에서 삶을 되찾으라고 이야기한다.
 

사진_픽사베이


7.

좌절과 투사의 시작은 ‘왜’에서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정부는 왜 저런 정책을 내는 거지? 내가 왜 밖을 못 나가는 거지?, 올해는 왜 휴가도 못 가게 된 거지?, 왜 저 인간들은 격리하라는 말을 안 듣는 거지?, 왜 저 사람은 마스크도 안 쓰는 거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현실에 던지는 ‘왜’ 질문들은 분노 어린 화살로 변해 밖으로 투사된다. 그리고 투사된 분노는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며 우울로 켜켜이 쌓여간다. ‘왜’에서 시작되는 질문들은 결국 바꿀 수 없는 비극을 재확인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우리가 정말로 손댈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에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번 휴가는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늘 밖에서 하던 일상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 친구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바꿔볼까. 어떻게 지금의 뉴 노멀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 질문에서 우리는 코로나 블루 탈출할 사다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8.

빅터 프랭클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스스로이다.”

코로나19는 분명 우리를 방구석 안에 꽁꽁 가두었다. 국경 밖으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세워버렸다. 답답하고 울분이 터지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울타리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을 끝없는 절벽 아래로 밀어붙이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혼란 속에서 오롯한 행복감을 잃지 않고, 언젠가 서로를 다시 마주할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Cross-sectional and prospective relationships of passive and mentally active sedentary behaviours and physical activity with depression The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2019) Page 1 of 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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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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