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에겐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있어요. 딸아이는 전 남편이 시부모와 같이 키우고 있어요. 저는 아이를 격주로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오고 합니다. 

오늘 딸아이 손목에서 두 줄 상처를 보고 추궁하니 아빠한테 혼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어요. 저에게 아빠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전 남편에게 말도 못 했어요. 전 남편은 욱하고 목소리톤이 높은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저 역시 충돌이 많았어요.

제가 궁금한 것은 떨어져 지내는 엄마인 제가 어떻게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지입니다.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하는지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이혼 뒤, 별거하는 딸아이의 정신건강 문제로 고민이 많으시군요. 딸아이의 손목 상처를 보고 많이 놀라셨을 듯합니다. 엄마로서, 따로 사는 이혼모로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우선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해 정확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조언 내용이나 행동을 말씀드리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짧은 질문글만으로는 따님의 마음속에, 그리고 질문자님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뒤엉켜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따로 사는 딸아이의 자해에 대처하는 매뉴얼' 같은 명확한 답안이 있다면 해결이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 매우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쉬운 방법은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자명한 현실입니다.

다만 이혼 가정 속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자주 보게 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한 가지 정도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부디 질문자님께서 따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은 자녀의 자해, 자살시도, 비행 등을 처음 발견하면 무척 당황하며 도대체 어떻게 이걸 해결해야 하는지에 급급해지시곤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과도한 관심을 쏟으며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문제의 원인이 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며 갈등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그런 죄책감과 갈등이 자녀에게는 또 다른 압박이 되며 악순환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해, 비행 같은 어떤 행위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단지 아이의 오래된 심리적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것뿐입니다. 그 문제는 아이 혼자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감추고 갈무리하려 애써오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자해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혼자 갈무리하던 마음속의 짐이 이제는 너무나 버거워졌다는, 그래서 이제는 지쳐버렸다는 일종의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오래된 마음속 깊은 곳의 문제가 어떤 갑작스러운 말이나 행동으로 쉽게 사라질리는 만무합니다. 갑작스러운 도움의 말이나 조언이 그 깊은 문제에 곧바로 닿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의 대부분은 관계에서 비롯하곤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 또래들과의 관계... 그 관계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질 때에 아이들은 좌절하곤 합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들 안에서 안식하지 못할 때에 아이들은 고통받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에 다가가는 방법도 관계에서 출발해야만 합니다. 질문자님과 같은 경우라면 따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따님에게 지금 질문자님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따님과 함께 확인하며, 질문자님 스스로 따님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격주로 식사만 하는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훌륭한 조언의 말을 해줘서 아이 마음의 문제를 덜어내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의 관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우선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더욱 악화되기만 할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심리상담사가 아닙니다. '엄마'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하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아닌, 엄마로서의 관계에 집중해보신다면 따님의 마음에도 분명 온기가 더해질 수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어쩌면 따님께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그 관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따님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여 자타해의 위험성이 크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해주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도 따님께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시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더해 질문자님께서 하실 수 있는, 아니 오직 질문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할은 분명 따로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따님과 질문자님 두 분만이 정확히 알겠지만 말입니다.

질문자님께서 이렇게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신 이유는 그만큼 따님을 사랑하고 걱정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쪼록 질문자님의 진심 어린 그 마음이 따님에게도 온전히 전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따님의 지친 마음에도 단비가 내릴 수 있기를 응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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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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