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7)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친구가 사이트 하나를 알려줘서 도박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지금까지 애써 모은 돈 50만 원 정도를 잃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오늘 낮에 친구가 도박사이트 한 곳을 알려줬습니다. 순식간에 친구 돈까지 4만 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고 싶더라고요. 이번에는 5만 원을 땄습니다. 계속하고 싶네요.”

도박과 관련해 인터넷에 올라온 10대 청소년들의 상담 요청 글이다.

“돈을 벌 수 있다고 어떤 유튜버가 사이트를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습적으로 매수매도를 했고, 결국 45만 원을 잃었습니다.” 

“스무 살 남자입니다. 현재 무직이고 아버지 도와드리면서 조금씩 용돈을 벌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도박을 했는데…… 끊어야지 하다가도 돈이 생기면 바로 도박을 하게 됩니다.”

인터넷에는 도박을 끊지 못해 고민 중인 20대 청년들의 사연도 많이 올라와 있다.

학업에 매진해야 할 10대와 인생 항로를 결정해야 할 20대 청춘들이 도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에 가지 않고 인터넷에 빠져 살면서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얼마 전만 해도 도박하면 돈 많은 부자나 연예인이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간혹 철없는 어른이 카지노나 성인 오락실 등을 전전하며 암암리에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요즘은 중고등학생과 청년 대학생 사이에서 도박이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진_픽셀


최근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박애란 예방부장은 우리나라 도박 중독 실태에 대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는 2015년과 2018년에 청소년 도박에 관한 실태 조사를 했습니다. 선별 척도를 갖고 적용했는데요. 조사 결과는 비문제군, 문제군, 위험군으로 구분해서 그린, 옐로, 레드로 나눕니다. 레드하고 옐로를 합쳐서 우리가 ‘위험집단’이라고 하죠. 상당히 조절이 안 되고 심각한 상태인 위험집단의 경우,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청소년의 1.5%가량 됩니다. 숫자로는 3만 4천 명 정도죠. 이들은 게임 안에 있는 사행성 요소, 즉 도박에 노출되면서 자기 조절에 실패하는 아이들입니다. 온종일 도박에 빠져 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당히 많은 폐해 요소가 나타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방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으면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안심하는데, 실은 이 중 일부 아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도박사이트에 접근해 사행의 늪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님들이 잘 모르세요. 불법 도박사이트도 있지만, 인터넷 TV에서 어떻게 하면 도박을 잘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곳도 있어요. 확률적인 거니까 부모님들이 보실 때는 우리 아들딸이 수학 공부하고 있구나, 이렇게 알고 계시는 거죠. 선생님들도 ‘아니, 그게 도박이었어요?’라고 물으세요. 그래서 이게 법에 저촉된다든지, 폭력과 연결된다든지 했을 때라야 ‘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그런 거였구나’하고 알게 되는 거죠. 지금 현실이 그래요.”

 

도박(賭博, gambling)은 금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일을 말한다. 내기 또는 노름이라고도 한다. 도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우연과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습관화되면 여간해서 빠져나오기 힘든 쾌락 추구로 발전한다. 돈을 잃든 따든 따지지 않고 도박이 주는 짜릿한 쾌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도박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도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세계 어디를 가든 도박의 유혹은 널려 있다. 민속 오락으로 여겨지는 윷놀이에서부터 정신 스포츠로 분류되는 바둑, 격렬한 경기인 경마, 전 세계인이 즐기는 축구, 신사 스포츠로 일컬어지는 골프에 이르기까지 도박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무궁무진하다. 돈이나 가치 있는 소유물을 걸고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에 내기를 거는 행위 전체를 도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특정 공간이나 지역을 지정해 아예 공식적으로 도박을 허용하기도 한다. 미국에는 라스베이거스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정선이 있다.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우승 국가를 알아맞히기 위해 커다란 도박판이 벌어진다. 특정 국가의 대통령 선거 때도 당선자를 알아맞히기 위한 도박이 판을 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서부터가 불법인지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법적 기준도 나라마다 다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각종 복권이나 자본주의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여겨지는 증권도 알고 보면 인간 내면에 사행 심리가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박은 돈을 매개로 하기에 잘못 빠져들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모아둔 돈을 다 날리면 여기저기 돈을 빌려야 하고, 월급을 압류당해 신용 불량자가 되기도 하며, 회사 공금을 유용하거나 범죄에 가담해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이혼을 당해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도 많다.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반드시 끊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번번이 실패하고, 나도 모르게 발길은 또다시 도박장으로 향한다. 

 

이런 도박의 위험성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다루어졌기에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쉽게 도박에 빠져드는 걸까? 

중독으로서의 도박과 여가로서의 오락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박을 오락이라 생각하고 단순하게 접근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구와 맞닥뜨리게 된다. 욕구는 충동을 부르고, 충동은 중독을 부른다. 쉽게 큰돈을 벌고 싶은 욕구, 잃은 돈을 만회하고 싶은 욕구,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은 욕구,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싶은 욕구,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려는 욕구 등이 도박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도박 중독(gambling addiction)이란 도박으로 인해 본인과 가족 및 대인관계에 갈등이 발생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적·사회적·법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도박행위를 조절하지 못해 계속해서 도박에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정서적 특징이 나타난다. 

1. 도박을 중단하면 안절부절못하거나 불안해한다.
2. 도박을 중단하면 상실감이나 공허감을 느낀다.
3. 도박의 결과로 매우 극단적인 감정변화(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느낌)를 경험한다.
4. 분노, 불안, 우울 등 부정적 감정이나 개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을 한다.
5. 도박 행동이나 도박으로 인한 결과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도박 중독이 정신의학 또는 심리학 관련 학술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부터다. 미국의 경우 유병률은 1.2~1.5%로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250~300만 명이 도박 중독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도박 중독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중독 없는 세상을 위한 다학제적 연구 네트워크 중독포럼’에 따르면 한국의 도박 중독 환자는 약 2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78조 2천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도박 중독으로 인한 위험요인 중에는 특히 자살 위험성이 높았다. 강원도 정선에 강원랜드가 들어선 이후 강원도의 자살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강원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45.2명이었지만, 카지노 시설이 들어선 정선군은 인구 10만 명 당 55.4명으로 조사되었다.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인지행동치료다. 도박 중독 행동을 지속시키는 왜곡된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도록 돕는 치료 기법이다. 도박에 대한 인지 왜곡을 식별하고, 도박 중단으로 인한 긍정적인 결과와 도박 지속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이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도박으로 얻는 만족감이 그 반대인 부정적인 결과와 절대 비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고, 재발 방지를 위해 도박을 유발하는 감정과 생각과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째는 동기강화치료다.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양가감정의 대립을 스스로 발견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미 환자가 가지고 있는 변화 동기를 강화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셋째는 재정과 법률 상담이다. 도박문제는 심각한 경제적 피해와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까닭에 치료 과정에서 전문적인 재정과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경제적 피해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넷째는 가족치료다. 가족이 도박문제에 대해 올바른 정보와 적절한 대처방법을 습득함으로써 환자의 회복을 돕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기 성장과 치유를 배워야 한다. 

다섯째는 대안 치료다. 도박을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 활동을 탐색해 건전한 정서함양과 치유를 도모하는 방법이다. 

여섯째는 약물치료다. 도박에 대한 충동이 강하거나 금단증상이 심할 경우 일시적으로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현재까지 도박 중독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로는 항우울제의 일종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갈망억제제 등이 있다.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걸 얻기 위해 확실한 걸 걸고 내기하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땀 흘려 번 소득이다. 일확천금이나 불로소득을 꿈꾸는 것처럼 어리석고 허망한 건 없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은 지금도 유효하다. 성인들의 도박 중독도 문제지만, 막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도박에 빠져드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 자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심한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 이는 통제나 간섭과는 다르다. 아이가 갑자기 돈을 펑펑 쓴다거나, 과도하게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자꾸 용돈을 올려달라거나, 평소와 달리 폭력적인 행동이나 반응을 보인다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그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잘 살펴 불안과 염려를 누그러뜨려 줘야 한다. 도박 중독 역시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전화 국번 없이 1336, 24시간 365일 무료 상담)로 연락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상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년 9월 17일은 도박 중독 추방의 날이다. 특히 올해 9월에는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청소년 도박 추방의 공동 100인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연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접고 정직한 마음으로 내 인생 밭을 성실히 가꾸기로 다짐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나와 가족과 우리 국민 모두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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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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