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1)

[정신의학신문 :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최강록 전문의]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떨어지는 낙엽에
그간 잊지 못한 사람들을 보낸다. 

가슴의 꽃과 나무 시들어지고
깊게 묻혀 꺼내지 못할 기억
그곳에 잠들어 버린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이. 

슬프다 슬프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노란 은행나무에
숨은 나의 옛날 추억을 불러 본다. 


악동 뮤지션이 부른 ‘시간과 낙엽’이라는 노래 가사다. 발표된 지 7년 가까이 지났지만, 요즘도 가을만 되면 라디오를 통해 심심찮게 들려온다. 가을에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인 까닭이다. 가을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에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매끄럽게 녹여낸 한 편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여, 가을이 되면 특히 자주 듣게 된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노래나 영화, 패션이나 음식이 있듯 가을과 잘 맞아떨어지는 정서 혹은 마음의 색깔이 있다. 우울이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마음이 울적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가로수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며, 자꾸만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문학소녀나 청년이 된 것도 아닌데, 가을만 되면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힌다. 

 

더군다나 올가을은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우울을 뜻하는 영어단어 ‘블루(blue)’를 합쳐 만든 신조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사람들과의 접촉이 줄어들고,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서 성인남녀 8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9.2%가 코로나19로 인해 불안감과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약 6278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이는 작년과 비슷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수도권 20~30대 여성의 자살 관련 데이터가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여성의 경제력이 약한 데다, 고용 안정성도 현저히 떨어지고, 식구들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육아와 가사 등에 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많아짐에 따라 정서적으로 더는 버티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도달한 사람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자살 예방 상담 기관들의 상담 접수 건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 누계 상담 건수는 8월 말 기준 42만 9707건에 달한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청년 고민 상담 프로그램도 포화상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실시한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국민 전체의 우울감이 14% 이상 올라간 것으로 드러났고, 이 중에서도 특히 30대 여성의 우울감 증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사진_픽셀


계절이나 날씨 혹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우울감을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우울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란 일시적으로 기분이 저하된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마음과 신체활동 전반에 걸쳐 정신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같은 증상이 거의 매일 나타나는 경우를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증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depression’으로 ‘침체’라는 뜻이다. 이 말처럼 우울증에 걸리면 감정, 인지, 생리, 행동, 대인관계, 사회생활 등 모든 측면에서 침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울증 환자들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보를 검색해 실천하는 등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우울증이 점차 심각해지고, 오랫동안 계속돼 만성화되면 환자들은 점차 치료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그들은 타인이 절대 자신을 도울 수 없고, 도우려 하지도 않을 거라고만 생각한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다고 느끼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어떤 심리 상태가 될까?

첫 번째로 흥미를 상실한다. 가벼운 우울증일 경우,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열의는 별로 없다. 우울증이 심각해짐에 따라, 이전에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줬던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재미있는 동영상들을 보며 약간은 웃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두 번째는 불안해진다. 우울과 불안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불안과 우울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불안은 위험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며, 자신의 안녕을 해칠 수 있는 위협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 나타난다. 우울증에서는 불안과 밀접히 관련된 초조함이 만성화되고, 극도의 예민함이 관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한 우울증 환자에게서는 불안마저 사라지고, 희망도 없으며,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회생활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우울증 환자에게서는 분노도 관찰된다. 본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사랑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분노를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애정을 상실한 대상을 향한 분노일 것이다. 환자는 의사가 단순히 치유를 촉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실을 직접 보충해주기를 바란다. 만약 의사가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환자는 실망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대다수 환자는 타인을 향한 자신의 적개심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또한 자신의 분노를 직접 표현하기를 두려워한다. 이들은 삶에 대한 열의를 상실한 채 다른 사람의 애정과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환자는 외부로 향할 수 없는 적개심을 자기 비난과 책망이라는 형태로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의 핵심 양상이 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진료 현장에서 우울증 환자의 치료는 두 가지 기본 원칙에 의해 진행된다. 

첫 번째는 환자의 고통과 죄책감을 경감시켜주고, 희망을 북돋아 주며,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다. 지지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정신 치료,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각각 또는 병합해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즉각적인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우울증의 의미와 원인에 대해 정신 역동적으로 탐색해 들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울증의 근원에 대해 함께 탐험을 시작하는 셈이다. 

우울증은 환자의 타고난 특성과 성장 배경, 그리고 환경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질환이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의 긴밀한 유대와 협력이 중요하며, 환자 자신이 진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약물과 함께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게 필수다. 탄수화물 섭취를 조절하지 않고, 운동을 게을리하면 혈당 조절에 실패하는 것처럼, 항우울제만 믿고 신체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식사를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우울증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그래선지 대부분 우울증을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감기도 간단히 앓고 지나가는 게 있는가 하면, 호되게 고생해야 간신히 치료할 수 있는 독감도 있다. 우울증을 그냥 마음이 좀 허전한 거겠지 혹은 너무 예민해서 다소 울적해진 것뿐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치료해야 할 뇌 질환으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가을을 맞아 유독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남달리 감성이 풍부해 계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도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맛봤다거나 어떤 다른 심리적인 이유로 인해 멜라토닌이 과다 분비되어 기분이 저하됐을 수도 있다.

멜라토닌은 생체 리듬을 조절해 우리 몸이 밤에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준다. 합성량이 너무 많거나 오랜 시간 생체 내에 작용하면 우울증이 발생하고, 반대로 합성량이 적으면 불면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을 제대로 쐬지 못한 경우에도 우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따분함과 무력함을 느끼고, 그것이 폭식과 과식으로 이어지며 체중이 늘거나 평소와 달리 잠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자는 것도 계절성 우울증의 대표적 현상이다.

이런 증상이 보이면 생활습관을 바꿔 활기찬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 공원 등으로 외출을 자주 하고, 햇빛을 많이 쐬는 게 좋다.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건 당연히 권장할 만한 일이다. 하루 30분 정도라도 밖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우울감도 떨치며 정신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아예 대인관계를 끊고 살기보다는 전화나 SNS를 통해 친구나 지인들과 수다도 떨면서 교분을 유지하는 게 정신건강에 더없이 좋다. 몸의 감기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낫지만, 마음의 감기는 관심과 배려와 사랑의 에너지를 먹어야만 낫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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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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