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8)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한때 헬스클럽 또는 피트니스센터 붐이 일었다. 건강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퇴근 후 직장인들이 이곳으로 몰렸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서 나눠주는 팸플릿 중 상당수가 새로 생긴 헬스클럽과 피트니스센터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가격은 점점 낮아져 한 달에 3~4만 원만 내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올봄부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사무실에서도 거리에서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살게 되었다.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도 감염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야 한다. 교회나 절에도 갈 수 없게 되었고, 사적 모임은 엄두를 낼 수 없게 되었다. 헬스클럽과 피트니스센터는 당연히 기피 대상이다. 운동하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비말이 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스크를 쓴 채 운동하기도 어렵다. 

이들이 몰린 곳이 동네 공원이다. 어지간한 동네 공원마다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되고,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유료 운동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시설이다. 수도권 신도시에는 유료 운동 시설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고급 운동기구까지 갖춰져 있다. 탁 트인 공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한 젊은이들이 몰려들자 동네 공원이 북적거리는 헬스클럽과 피트니스센터로 변모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작은 공원 안에 다양한 운동기구가 놓여 있다. 가끔 지나가다 보면 예전에는 노인들과 중년 여성들이 주로 이용했었는데, 요즘은 젊은이들과 청소년들까지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색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어떤 때 보면 지나치게 오랫동안 운동에만 전념하는 사람을 볼 수가 있다. 볼일 보러 나갈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봤는데, 돌아올 때까지 그러고 있는 거다. 몇 시간 동안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어 올리며 근력 운동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예전에도 종일 헬스클럽과 피트니스센터에서 살다시피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헬창(헬스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사진_픽셀


운동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에게는 운동 부족이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렇지만 아무 운동이나 무턱대고 많이 한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자기 몸 상태와 체력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올바른 방법으로 적당히 해야 효과가 있다. 지나치게 무리해서 운동하면 그게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본인의 운동능력보다 과한 운동을 지속하려는 행동을 운동 중독(Exercise Addiction)이라고 한다. 인간의 몸은 분당 120회 정도의 심박 수로 30분 이상 운동하게 되면 뇌에서 엔도르핀을 방출하는데, 이때 방출된 엔도르핀은 행복감을 준다. 운동 중독증은 이 행복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체력이 이미 고갈되었음에도 이를 느끼지 못한 채 운동을 계속하는 증상이다. 운동이 삶에 활력을 주고 건강을 증진하는 수단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가 살아가는 목적이 된 사람들이다. 운동이 건전한 습관의 수준을 넘어 반드시 몰입해야만 하는 의무가 된다. 자연히 부상의 위험이 따른다. 근골격계의 부상 위험이 커지고, 심장의 과도한 부담으로 인해 잘못하면 심장마비까지 올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자기 자신의 한계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30분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이런 기분이 들 때는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4분에서 30분 이상 이 같은 느낌이 유지되기도 한다. 이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또는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때로는 오르가슴에 비교되기도 한다.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 장시간 계속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이든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 중에 왜 ‘러너스 하이’가 오는 걸까?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이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발표하면서부터 과학자들이 이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운동 시간, 강도, 방법 등에 관한 연구는 이후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운동하다가 몸에 땀이 나면 젖산과 피로물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통증을 느낀다. 힘이 드니까 괴로운 것이다. 그러면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엔도르핀과 아난다마이드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엔도르핀과 아난다마이드는 마약처럼 통증과 피로를 감소시켜 주는 물질이 있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운동할 때 뇌 속에서 진행되는 보상회로다.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 위해 운동을 멈출 수 없게 되면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운동 중독증에 빠지면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금단증상을 느낀다. 스스로 운동에 대한 욕구를 통제하지 못한다. 운동하다가 중단한 후 24~36시간이 흐르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무기력해지고, 집중력이 감소하며, 피로를 느낀다. 업무수행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져 사회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다. 운동이 주는 쾌감과 심리적 안정에 몸과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린 탓에 운동을 그만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이다.

운동 중독에 빠지는 또 하나의 요인은 ‘멋지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환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우람한 근육질 배우나 연예인을 보며 많은 남성이 자신도 저런 몸매를 갖고 싶다는 환상을 품는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뭇 여성들로부터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철 바닷가에 가서도 마음껏 몸매를 뽐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끊을 수가 없다. 여성들은 쉽사리 다이어트의 유혹에 빠진다. 살을 빼서 텔레비전 속 팔등신 몸매를 가진 여성처럼 될 수만 있다면 다이어트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사람들에게 중독으로 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내가 단순히 운동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중독에 빠진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질병을 분류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는 운동 중독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렇지만 운동 중독과 관련된 부분은 비교적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진단기준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 데이비드 빌레 교수가 제시한 기준이다. 

1. 정형화되고 일상화된 운동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 운동을 중단했을 때 유의한 금단증상(예: 기분의 변화, 자극성 및 불면증)을 경험한다.
3. 다른 중독처럼 운동에 대한 몰두가 임상적으로 신체적, 사회적, 직업적 또는 기타 기능 영역에 심각한 고통이나 장애를 유발한다.
4. 운동에 대한 집착은 다른 정신질환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운동 중독 단계별로 나타나는 증상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운동 중독 초기 증상 : 3개월 이상 운동을 꾸준히 해본 결과 다른 어떤 레저나 취미보다 오직 운동만이 즐겁고 흥미롭다. 그 외 다른 일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

• 운동 중독 중기 증상 :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강도가 센 운동을 원하면서 이로 인한 통증을 즐긴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운동해야만 제대로 운동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 운동 중독 말기 증상 : 운동하다가 다쳤거나 병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운동을 지속한다. 자신의 이성과 의지만으로는 도무지 운동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경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전문의와 상담해 본 사람은 대개 이런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술 담배를 끊거나 줄이시고, 규칙적으로 알맞은 운동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운동 종류, 방법, 강도, 시간, 형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아무 운동이나 계속한다면 오히려 몸에 해가 된다. 운동 중독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나친 운동은 운동이 가져다주는 심혈관계 질환 예방과 성인병 위험을 낮추는 이점보다 피로 골절과 근골격계 질환 그리고 만성 피로와 과사용 문제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운동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중독 과정과 마찬가지로 생각, 감정, 행동에서 부적응적인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생산적인 것으로 바꾸는 인지행동 기법이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취미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다른 부분에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말이다. 운동에도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려면 내가 어떤 운동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좋은지 해당 분야 전문 트레이너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대기업 회장을 지내다 은퇴 후 운동을 시작해 77세에 운동생리학 박사가 된 이순국 씨는 자신의 운동 비법을 소개한 책 『몸짱 할아버지의 청춘 운동법』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운동이라는 게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체력과 여건 등을 충분히 고려해서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거창하게 프로그램을 짰다가 작심삼일이 되는 것보다는 소박할지언정 초지일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 자기 몸에 맞는 옷과 입에 맞는 음식이 있듯 체질에 어울리는 운동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는 것이 좋은 운동 습관을 들이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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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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