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연의 <오늘, 내 마음 가는 대로> (6)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조남주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김도영 감독이 만들어 2019년에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젊은 여성들의 힘겨운 삶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딸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서른네 살 워킹맘 김지영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순간순간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질환이었다. 남편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 속에서 지영 씨가 처음 빙의를 경험하는 장면은 명절 때 시댁에 가서 일하는 과정에서 펼쳐진다. 일을 대략 끝냈다 싶은 지영 씨는 친정에 가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시누이 가족이 들이닥친다. 마무리 단계에 있던 일이 다시 시작되려는 찰나, 지영 씨가 외친다.

“사부인, 나도 내 딸 보고 싶어요. 내 딸도 집에 좀 보내주세요.”

자신의 친정엄마로 빙의한 것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시댁 식구들에게 맞춰주고 있던 그녀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딸과 며느리,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관계란 뭐라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참으로 묘한 갈등과 애증이 섞여 있는 사이다. 딸 같은 며느리나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라는 표현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가상세계에서나 가능한 말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말이다. 가족들 간의 사랑이 훈훈하게 피어나야 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긴장과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기도 하는 게 바로 명절이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명절 증후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자신들 처지에서 염려되는 게 있겠지만, 특히 심하게 명절 증후군을 겪어야 하는 사람은 결혼한 젊은 여자들이다. 며느리로서 혹은 주부로서 명절 연휴 동안 일과 사람에 치일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팔다리가 욱신거리는 게 당연하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향 방문을 자제하고 어른들을 찾아뵙지 않는 게 오히려 효도라며 매스컴에서 연일 홍보를 하고는 있지만, 시댁이나 친정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찾아뵙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사전에서는 명절 증후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절을 보내는 동안 심신의 피로와 스트레스 따위를 느끼는 증상. 과도한 집안일과 가족 간의 갈등이 주원인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만 되면 시댁이나 친정이 먼 시골일 경우, 장시간 운전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심신이 녹초가 되기 일쑤고, 차례 준비나 식구들 밥상을 차리느라 온갖 음식을 지지고 볶고 만들어야 하며, 손님을 치르려면 하루에도 수차례씩 상을 차리고 치워야 하고, 어른은 물론 손아랫사람들에게까지 선물이나 용돈을 챙겨야 하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간에 안부를 묻는다는 핑계로 거침없이 내뱉는 말로 인해 속앓이 해야 하고, 며느리나 사위들 사이에서 서로 비교당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가장 힘든 건 뭐니 뭐니 해도 음식 장만이다. 이건 대부분 여자만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고, 좋은 세상이 왔다고 해도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차려내는 일은 거의 다 여자들 몫이다. 상 몇 번 차리다 보면 허리가 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남자들 술상까지 대령해야 하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명절 증후군의 구체적인 증상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근육통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우울, 불안, 초조, 두근거림, 호흡곤란, 무기력, 불면 등의 정신적 증상이 있다. 명절 증후군을 겪는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최근에는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미취업자, 번듯한 회사에 다니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 자식들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허전함과 외로움이 더욱 가중되는 노년층 등으로 그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사진_픽셀

 

명절 증후군을 잘 극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첫째는 충분한 휴식과 운동이다. 쪼그려 앉아 전을 부치다 보면 무릎과 어깨가 결릴 수밖에 없다. 간단한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면서 일하는 게 현명하다. 여성의 경우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릴 우려도 있다. 손목을 지배하는 신경이 지나가는 수근관(손목 터널)이 좁아지거나 압력이 높아지면서 신경이 손상되어 발생하는 질환이다. 손바닥, 손가락, 손목에 통증이 나타날 뿐 아니라 저리거나 감각이 이상한 증상도 보인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팔을 뻗은 상태에서 주먹을 쥐고 손목을 안쪽으로 구부려 3초 정도 유지하는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해주는 게 좋다.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남자의 경우 척추피로증후군에 노출될 수도 있다. 고정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함으로써 척추에 피로 물질이 쌓이는 증상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운전할 때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 척추 주변의 근육을 풀어주고, 등과 엉덩이를 등받이에 기댄 상태로 약 15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쿠션을 받쳐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게 좋다. 명절 후에는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운동 등으로 육체의 피로도 풀어줘야 하지만, 명상 등으로 마음에 쌓인 감정의 앙금을 해소해야 한다. 
 

둘째는 가족들의 배려가 중요하다. 힘들다고 명절에 시댁이나 친정을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절은 가족 모두가 나서서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술 마시며 고스톱이나 친다면 명절 증후군을 피할 길이 없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게 더 괴롭다. 명절 때 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해 가족 별로 담당자를 정해 놓고 일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남편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들은 시댁에서의 고단함보다는 친정에 대한 남편의 소홀함 또는 차별대우에 감정이 상하기 마련이다. 처가에 가서 남편이 사위 노릇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장인 장모 다리도 주물러드리고, 음식도 같이 장만하고, 용돈도 두둑하게 드리는 등 시댁에서 아내가 기울인 노력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처가에 노력을 쏟는다면 아내의 고달픔과 피로감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명절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말이다. 말만 따뜻하게 잘해도 명절 증후군의 절반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 지친 몸을 쓰러지게 만드는 결정타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정치 이야기다. 좋은 분위기 다 깨 놓는 게 뜬금없는 정치 이야기다.
두 번째는 결혼 이야기다. 언제 결혼할 거냐, 왜 아직 미혼이냐, 이런 말은 금해야 한다.
세 번째는 취직 이야기다. 너 취직은 했냐, 어느 직장 다니냐, 연봉은 얼마냐, 묻지 말자.
네 번째는 체중 이야기다. ​너 왜 그렇게 살쪘냐, 살찌니까 그만 먹어라, 참견하지 말자.
다섯 번째는 성적 이야기다. ​너 몇 등이나 하냐, 대학은 갈 수 있겠니, 궁금해하지 말자.

그러면 가족들끼리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담아 꼭 건네야 할 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외모 이야기다. 더 예뻐졌네, 건강해 보여, 표정이 밝구나, 칭찬하는 말이다.
두 번째는 음식 이야기다. 정말 맛있다, 솜씨가 최고야, 애 많이 썼다, 격려하는 말이다.
세 번째는 인격 이야기다. 아주 의젓하구나, 인사성이 참 밝다, 내면을 존중하는 말이다.
네 번째는 추억 이야기다. 그때 참 고마웠어, 다 네 덕분이었어, 추억을 나눠야 가족이다.
다섯 번째는 긍정의 언어다. 다 잘될 거야, 네 소신대로 해라, 가족이란 믿어주는 것이다.

 

명절은 여러 가지 사연으로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 집이나 부모님 댁에 모여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어느 한 사람이나 계층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일부의 즐거움을 위해 다수가 괴로움을 감내해야만 한다면 명절의 본래 의미는 이미 퇴색된 것이다. 가족 모두를 위한 명절이므로, 모두 함께 수고하고, 모두 함께 즐거워야 한다는 원칙만 잘 명심한다면 명절 증후군을 겪지 않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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