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심리학과 만나다> (4)

이오시프 이바노비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있어도 언뜻 그의 작품이 뭔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루마니아 군악대장 출신이라고 하면 더 아리송하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대표적 왈츠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들으면 누구나 “아, 저 음악을 만든 사람이구나.” 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멜로디인 까닭이다.

 

사진_픽사베이

 

전주곡 부분은 간결하고 경쾌하다. 영어로 다뉴브, 체코어로 두나이, 루마니아어로 두너레아로 불리는 도나우강은 약 2,85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강이다. 알프스 북부 슈바르츠발트 산지에서 발원해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등 여러 나라를 지난다. 빈, 부다페스트 등 각국 수도가 이 강의 본류 연안에 위치한다. 이토록 길고 긴 강이 서서히 발원하는 웅장한 느낌이 든다. 조금 듣다 보면 익숙한 단락이 등장한다. 애수에 가득 찬 서글픈 감정이 밀려온다. 

곧이어 왈츠가 시작된다. 네 개의 왈츠다. 왈츠는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서양 고전음악의 춤곡이다. 4분의 3박자로 속도는 약간 빠른 편이다. 강, 약, 약의 박자를 정확히 짚어 주는 저음 위에 우아한 선율이 얹힌 구조다. 19세기 유럽 사교계를 완전히 지배하다시피 한 장르로 이 춤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의 파리와 빈은 온 시내의 무도회장이 왈츠로 점령당했다고 한다. 밀고 당기는 전형적인 왈츠곡은 밝고 화려하고 힘차다.

피날레 부분은 장엄하게 출발한다. 포르테와 악센트에 이어 왈츠가 연결된다. 귀에 익은 갈래다. 도나우강이 유럽 각국을 돌아 마침내 흑해로 흘러드는 것 같은 인상이다. 산지와 협곡을 지나 평야를 거쳐 바다에 이르는 도나우강의 긴 여정이 왈츠의 아름다운 리듬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흥겨운 왈츠곡을 들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눈물 흘리는 사람은 아마도 한국인밖에 없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아름답지만, 피아노 연주도 기막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은 ‘사의 찬미’라는 번안 가요를 발표한다. 윤심덕은 1920년 동경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음악 활동과 교편생활을 하다가 극단 토월회 회원으로 신극 운동에 참여했다. 이때 알게 된 이기세의 주선으로 당시 유행하던 번안 가요를 녹음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여동생 윤성덕이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그녀와 동행했다. 레코드 녹음을 마친 다음 날 윤심덕은 음반사 사장에게 특별히 한 곡을 더 녹음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 곡이 바로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자신이 쓴 가사를 얹힌 ‘사의 찬미’다. 여동생의 반주에 맞춰 부른 노래의 1절 가사는 이렇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쓸쓸함과 애절함이 뚝뚝 떨어진다. 원곡의 흥겨움과 경쾌함은 간데없다. 후렴은 더하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1926년 8월 3일, 음반 녹음을 마친 윤심덕은 동갑내기 애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던 도중 함께 껴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시대를 앞서가던 신식 여성과 부잣집 유부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녀의 유서가 돼 버린 이 염세적인 노래는 이들의 죽음과 더불어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에 1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하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_픽셀

 

자살(自殺)이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다. 자살을 뜻하는 영어 단어 ‘suiside’는 라틴어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가 합쳐져 생겨난 말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당사자가 자유의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시대나 풍습에 따라 혹은 종교관이나 윤리관에 따라 자살을 정의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예술이나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를 다루는 데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었다.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번민과 갈등이 동반된다. 그 과정에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살을 포기하는 수도 있지만, 그대로 결행할 때는 그런 극단적 선택만이 출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그것은 신경쇠약, 실연, 병고(病苦), 생활고, 가정불화, 장래에 대한 고민, 사업실패, 염세 등이다. 남자에게는 신경쇠약과 병고가 많고, 여자에게는 가정불화와 실연이 많다. 청소년에서는 실연과 염세가 많고, 노인에서는 병고가 많으며, 젊은 층에서는 가정불화가 많았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거나, 가정불화로 이혼 등의 아픔을 겪거나, 사업체가 부도나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궁지에 내몰리거나, 생의 의지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느꼈을 때 오직 죽음만이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라 여기게끔 된다. 

 

어느 나라나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자꾸만 올라가고 있다. 어른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성적이 떨어지거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 같은데, 알 수 없는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려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도 있다. 영화배우, 탤런트, 가수 같은 인기 연예인의 자살은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정관계와 재계 등의 고위직 인사가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런 경우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자살에는 휘발성과 전염성이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존경받던 고위직 인사의 돌연한 자살은 많은 사람에게 자살에 대한 그릇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이를 모방한 연쇄적인 자살을 부른다.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을 했는데, 그 후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 권총 자살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한 미국 사회학자 필립스가 1974년에 처음 사용한 명칭이다. 

자살의 가장 흔한 원인은 우울증이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이 네다섯 배나 증가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가운데 우울증을 발견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다시 자살을 시도하려는 충동을 80퍼센트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우울증을 잘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에서 ‘사(死)’는 죽음을, ‘찬미(讚美)’는 ‘아름다움을 기리는 것’이다. 즉 ‘사의 찬미’란 ‘죽음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는 의미다. 그녀는 탐미주의에 빠져 죽음마저 아름답게 보였고, 이를 칭송하다 못해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다. 고통스러운 이 세상에 비해 차라리 죽음이 아름답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동반 자살은 인간의 삶은 고통뿐이며 따라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는 염세주의자의 말로일 뿐이었다.

 

같은 시대에 이와 정반대의 삶을 살다 간 사람도 있다. 기독교계는 물론 국민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항일운동가였던 주기철 목사다. 그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시행한 신사참배 강요에 결연히 맞서 저항하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일제는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으며, 악랄한 고문과 간교한 회유를 거듭했지만, 그는 끝내 조국과 신앙을 배반하지 않았다. 해방 후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196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묘를 설치했다. 

주기철 목사가 네 번째로 평양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고문에 신음하면서도 감방 안에서 ‘영문 밖의 길’이라는 가사를 만들어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 곡조에 맞춰 부르곤 했다. 영문(營門, outpost)이란 병영(兵營)의 문이란 뜻이지만, ‘영문 밖’이라고 할 때는 예루살렘 성문 밖 곧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올라가던 골고다 언덕을 가리킨다. 주 목사의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노래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윤심덕, 김우진, 주기철, 희한하게도 세 사람은 1897년생 동갑내기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한 사람은 성악가로, 한 사람은 극작가로, 한 사람은 목사로 살다 갔다.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으나 셋 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는 점에서도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윤심덕과 김우진은 자신의 처지와 세상을 비관만 하다가 결국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본인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고 동반 자살했다. 이후 그들의 이름은 염세주의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들의 노래는 허무주의의 대표곡이 되었다.

반면 주기철은 민족의 기개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서슬 퍼런 일제의 총칼에 맞서 스스로 고난의 길로 걸어갔다.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후 그의 이름은 독립과 항일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의 노래는 희망과 부활을 외치는 찬송가가 되었다.

 

‘도나우강의 잔물결’. 이바노비치는 왈츠의 대유행을 주도한 오스트리아에서 다소 떨어진 발칸 국가 사람이지만, 이 한 곡으로 위대한 작곡가 반열에 들었다. 도나우강,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떠올린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이 곡은 특별하다. 누군가는 이 곡을 들으며 죽음을 생각했고, 누군가는 이 곡을 들으며 생명을 떠올렸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윤심덕이 녹음한 음반 뒷면에는 ‘부활의 기쁨’이라는 찬송가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부활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그녀와 그녀의 애인이 아니라 주기철 목사였는데 말이다. 이렇듯 같은 음악을 듣고도 생과 사가 갈릴 정도로 감상이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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