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아주편한병원, 장기중 전문의] 

 

영츠하이머(Youngzheimer)는 신조어다. '젊은(Young)'과 '알츠하이머(Alzheimer)'가 결합된 단어로, 젊은 나이에 심하게 겪는 건망증, 기억력 감퇴를 뜻한다. 사실 의학용어는 아니고, 영어로 적혀 있지만 외래어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단어다.

치매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요새 젊은 세대도 건망증에 대한 걱정이 많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이런 관심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카드 뉴스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영츠하이머의 주원인으로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디지털 치매), 스트레스와 우울증(가성치매), 과도한 음주(알코올 블랙아웃)를 언급했는데 나 또한 20~30대와 진료 중에 자주 상담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영츠하이머를 보건복지부가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더 홍보하고 있다는 건 의아하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어쩌다 노인 세대에서 걱정해야 할 치매에 대한 걱정이 젊은 세대에까지 넘어왔는지 모르겠다. 뉴스 카드에 나온 그림 중 영츠하이머의 원인 1, 2, 3은 어디서 많이 봤던 익숙한 모습이 아닌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주위 사람들은 단순히 게임이나 채팅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시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진행되는지 모른다. 퇴근 후에 울리는 직장에서 온 메시지 도착 알림음은 진료받으러 온 젊은 세대들에게 심장 두근거림 유발 요인 일 순위다.

대화방에서 팀장이 올린 메시지에 읽었다는 표시 1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뇌는 과부하 상태가 된다. 일이 끝나면 몇몇을 위한 회식에 자리를 채워줘야 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건배사 몇 개 외워 분위기를 띄우는데 돌아오는 건 술잔이다. 통장의 월급보다 빨리 오르는 건 집 값이요, 복리로 쌓이는 건 대출 이자와 스트레스다. 이럴 때 늦은 밤 또 한잔 들어간다. 

여기서도 눈치요 저기서도 눈치다. 우리 뇌는 24시간 눈코 뜰 새 없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를 봤다면 무릎을 탁 치며 자신이 남긴 명언을 읊조렸을 것이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이다.'

 

그럼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영츠하이머들에게 개인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지쳐 있는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여라, 충분한 휴식을 취해라,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차마 건네기가 어렵다. 이는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치매가 '장기 기억' 문제인 것과 달리 영츠하이머는 '뇌의 과부하'가 문제다. 과부하가 된다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수준 이상으로 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가 순간 다룰 수 있는 멀티태스킹의 작업 한계는 얼마나 될까. 

1950년 조지 밀러는 뇌의 이런 기능을 '작업 기억 (working memory)'라 명명했고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관련되었음을 밝혀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컴퓨터가 커져 있는 동안 작업장 역할을 하는 램(RAM, random access memory)의 역할이다. 램 성능이 클수록 컴퓨터의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다중작업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 뇌도 작업 기억이 뛰어날수록 뇌가 부하를 덜 받게 된다.

1956년 조지 밀러는 그의 연구에서 다중작업 시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매직 넘버 세븐'이라 부르며 7개 수준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2001년 미주리 대학의 넬슨 코완 박사는 이 보다 더 좁은 범위의 결과를 도출했고 리허설이나 연습 없이 다룰 수 있는 수준은 평균 4개로 언급했다.

 

사진_픽사베이

 

젊은 세대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직장에서 지내는 일련의 순서를 따라가며 거기서 부딪칠 스트레스를 생각해보자.

(1) 전날 들은 배우자(이성 친구)의 잔소리+(2) 출근 중 갑자기 내 앞에 끼어든 차+ (3) 보고서를 빨리 내라고 다그치는 직장상사의 표정+ (4) 점심으로 뭘 먹을까에 대한 고민.... 순서대로 쌓여 머릿속에 있다면 벌써 당신 뇌는 점심이 되기도 전에 과부하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들이 사이사이 끼어들고 우울한 마음에 배우자의 잔소리와 직장상사의 표정이 계속 떠오르면 당신 뇌는 번아웃의 첫발을 띤다.

당신이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이 감당할 일을 네 손가락 안으로 생기게 할 순 없다. 그래도 한 가지 조언하자면 당신의 뇌가 동시에 4가지 상황에 압도되기 전에 알람을 울려라.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기억의 홍수에 압도되는 것보다 적어도 내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적절히 조절하는 건 의미가 있다.

 

여기에 더해 한정된 뇌를 소중히 다루기 위해서는 '완벽한 기억'보다 '적절한 망각'이 중요하다. 망각과 건망증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 같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다. 뇌 신경망이 형성될 때 프루닝(pruning)이란 작업이 있다. 우리나라 말로 가지치기다. 자주 활성화되는 신경세포가 강화되기 위해서는 자주 쓰이지 않는 신경세포는 퇴화, 즉 가지치기가 되어야 한다. 즉 적절한 망각이 이뤄져야 강한 기억이 생성될 수 있다. 임상적으로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포증, 트라우마는 망각의 장애로 생기는 정신 질환이다.

사실 우리의 외부 세계에는 너무 많은 자극이 있다.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공기청정기 소리와 같은 사소한 자극에서부터 자신에게 심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트라우마의 기억까지, 우리 뇌는 우리 의식이 알게 모르게 이 모든 자극을 탐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우리 뇌의 반사 신경이다. 

이를 거슬러야 하기에 망각은 수동적이지 않다. 적극적인 선택이다. 신경생물학자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 이에르도 박사의 저서 '망각의 기술'에서는 습관화, 소거, 억압, 차별화의 네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책 서평에 간단히 요약한 것처럼 '어떤 일은 습관화로 가볍게 무시해 넘기고 어떤 기억은 소거하며 중요한 일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차별화해서 잊고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은 억압'하는 망각의 방법이다.

 

영츠하이머는 사회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츠하이머를 개인의 차원에서만 다루면 안 된다. 이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영츠하이머로 만들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츠하이머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 안에 무엇이든 집어넣을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언제 쓰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전공과 스펙들로 그 사람이 능력이 좌지우지되고, 남들 보기 좋은 취미 생활 몇 개 정도는 기본으로 갖춰야 건강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인문학적 지식을 갖춰야 지혜로운 사람이라며 유명한 철학자 몇 마디는 외워야 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유명한 운동법, 식단 등을 꿰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삼키고 삼켜야 한다.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을 사회는 주입하고 있다. 사회는 개인에게 배가 터지기 전까지 삼킬 것을 강요한다.

 

아기는 오로지 외부에서 제공되는 엄마 젖을 빨 때만 쾌감을 느끼다(구강기) 어느 순간 자신의 항문을 통해 배설하며 새로운 쾌감을 경험한다(항문기).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제 아기는 어머니 젖만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배설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쾌감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바로 성장한 것이다.

영츠하이머는 어쩌면 이 사회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버린 구강기 상태와 같다. 사회는 그들 스스로 성장하길 바라지 않을지 모른다. 사회는 무비판적으로 소비해 줄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진정 나를 위한 게 아니라면 배설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삶의 축소판인 스마트폰을 한번 열어봐라. 처음엔 모두 중요하다고 받아뒀을 텐데, 하루에 최소 한번 이상 쓰는 앱은 몇 개나 되는가. 하루에 같은 내용의 인터넷 기사를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몇 번이나 읽지 않았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적어도 내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 채 누군가 원하니까, 또는 남들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소중한 하루를 나도 모르는 무언가로 채워 넣고 있지 않은가.

망각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이는 여백을 만드는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내 삶의 여백은 내가 하는 사소한 선택에서 시작된다. 사회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배설'하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영츠하이머를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할 이유다.

 

그들에게 영츠하이머가 된다는 것은 무한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츠하이머는 나약함의 결과물이고, 개인의 무능함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를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귀결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다'라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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