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10)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얼마 전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연예인이 있었다. 호주 출신 인기 방송인 샘 해밍턴이다. 키 180cm에 체중이 120kg에 달해 씨름 선수 못지않았던 그가 다이어트를 통해 30kg을 감량한 뒤 90kg의 날씬한 몸매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의 몸무게인 80kg까지 감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엽기만 했던 이미지를 벗어나 늘씬하고 멋진 남자로 변신한 그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인기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들의 이 같은 다이어트 성공 사례는 수많은 사람에게 다이어트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매 순간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유명인들은 마른 몸에 관한 지나친 환상을 심어준다.

‘나도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저 사람처럼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말 테야!’

이런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소개된 각종 다이어트 비결, 음식, 책자, 약품, 운동 방법 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심지어 살을 빼기 위해 주사를 맞고 수술을 받기까지 한다. 이것저것 다 해봐도 제대로 살이 빠지지 않는다며 무작정 금식을 단행하는 사람도 있다. 원하는 체중을 얻기 위해서 그 어떤 위험이나 부작용도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전문 기업도 생겼다.

 

가히 다이어트 열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다이어트란 무엇일까?

다이어트(diet)는 본래 ‘식단’이라는 뜻이었으나 지금은 미용이나 건강을 위해 살이 찌지 않도록 먹는 것을 제한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을 빼는 행위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 인간은 먹고사는 존재다. 먹어야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불변의 진리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살은 먹어서 생기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점점 마를 수밖에 없고, 그래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 따라서 살을 빼려면 생존과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먹으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다이어트에 성공하기가 힘든 것이다.

 

사진_픽셀

 

다이어트 중독은 대중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일 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정식 병명은 아니다. 키나 체형과 비교했을 때 체중이 지나치게 많이 나가거나 건강상 의사로부터 살을 빼도록 권고받았을 때 혹은 자신이 느끼기에 체중 과다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전문의 등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 바람직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중이 과다하다고 오해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함으로써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 습관적으로 다이어트에 몰두해 오히려 건강을 망치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걸 다이어트 중독이라고 부른다. 이는 일종의 강박증이다.

강박증(obsession)이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질환이다. 강박증 환자는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를 그만두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금 목욕하고 손을 깨끗이 씻었는데도, 자꾸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어 또 화장실에 가서 목욕하고 손 씻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날씬하거나 마른 몸매임에도 살을 더 빼야 한다며 또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다이어트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중독 현상이 생겨 강박증으로까지 이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이어트 중독은 거식증(anorexia nervosa)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거식증이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식욕부진이 생김으로써 음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소화를 시키지도 못하게 되는 증상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고도 한다. 체중증가나 비만에 대해 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체중 미달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체중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거식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날씬해지기 위해 극단적으로 음식 섭취를 거절하거나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 후 곧바로 인위적으로 구토를 한다든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심한 운동, 설사약 복용 등의 행동을 하는 경우다. 거식증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영양 결핍 상태가 되며,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등이 나타나고, 저혈압과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몇 년 전 언론을 통해 충격적인 사진이 공개된 적 있다. 다이어트 중독으로 거식증에 걸린 러시아에 사는 스무 살 여성의 모습이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청춘을 즐겨야 할 나이의 그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허벅지, 종아리, 팔뚝 등 몸 전체에 붙어 있는 살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걸어 다니는 해골’로 불리는 그녀의 키는 160cm 전후인데 몸무게는 약 26kg이라고 했다. 살 빼기 전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그녀는 다이어트 중독에 빠진 이후 원래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강과 희망까지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대표적인 다이어트 중독 사례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이어트 때문에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가 흔들린다면 자신이 다이어트 중독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

 

다이어트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몇 가지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씬한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난다.
둘째, 뚱뚱한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
셋째, 사람을 대할 때 몸무게를 제일 먼저 파악한다.
넷째, 자기보다 뚱뚱한 사람은 무시하고, 날씬한 사람은 경계하거나 피한다.
다섯째, 체중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여섯째, 식사가 즐겁지 않고, 폭식과 금식을 반복한다.
일곱째, 모든 일상과 관계를 다이어트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다이어트 중독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을 다스리고 치료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리고 치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첫째, 다이어트를 잊어버려야 한다.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강박의 세계로 들어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을 불러일으켜 폭식으로 이어지고, 폭식 뒤에는 자책에 빠져 또다시 다이어트의 유혹을 받는다. 이런 경우 손쉽게 폭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인위적인 구토나 무리한 단식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많이 먹고 나서도 쉽사리 음식을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져 다시금 폭식을 유발하게 된다.

둘째, 체형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점검해봐야 한다. 삶을 평가하는 데 있어 체중이나 체형이 많은 의미를 차지한다면 보다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이에 관한 관심이 과다하다면 약간의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보통사람의 3kg과 체형이 곧 자산인 패션모델의 3kg이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살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뚱뚱하다고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날씬하다고 화려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각자 자기 삶을 구성하는 데는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얼마든지 많다.

셋째, 식탐을 줄이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짜서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 야식, 간식, 폭식, 금식을 삼가야 한다. 배부른데 자꾸 먹는 건 금물이다. 좋은 생활습관을 들이면 일부러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

넷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고, 아무도 내 인생에 나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올라가야 한다. 나보다 소중한 건 없다.

다섯째, 극단적인 방법의 다이어트, 예를 들면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 복용, 위를 묶거나 음식이 지나는 통로를 우회시키는 수술법, 신체의 지방을 제거하는 지방 흡입술 등은 의학적 치료를 위한 목적 이외에는 사용하면 안 된다. 이는 자신을 해치는 일이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여섯째, 앞서 언급한 강박증이나 거식증에 해당하는 증상들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날씬하고 마른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벗어던져야 할 고정관념이다. 예전에는 뚱뚱한 스타일, 살이 좀 푸짐하게 붙은 몸매를 미인의 전형으로 여겼다. 대가들이 그린 동서양의 옛 그림들을 보면 등장하는 여성들 몸매가 대부분 그랬다. 깡마른 몸매에 대한 그릇된 기준과 환상이 생겨난 것은 20세기 이후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체중이 좀 더 나가도, 약간 통통해 보여도, 배가 다소 나왔어도, 얼마든지 귀엽고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도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고 사랑하게 된다.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갈망하지 말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갈망하라.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하면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라. 체중과 관계없이 아름답게 빛나는 자신을 기대하고 발견하면 스스로 그렇게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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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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