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이나 식당에 가면 손님들이 보기 좋은 위치마다 이런 문구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은 셀프입니다.” 
“추가 반찬은 셀프입니다.”

여기서 ‘셀프’란 스스로 알아서 갖다 먹으라는 의미다. 그런데 본래 뜻이 그럴까? ‘셀프(self)’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혀 다른 ‘자아’ 혹은 ‘자신’이 된다.

예전부터 우리는 자아실현, 자아정체성, 자기계발, 자기 주도 학습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자아실현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기계발을 잘해야만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럼 자아실현이란 무엇일까? 자기계발은 무엇이고, 사람 구실이란 무엇일까? 자아, 자기, 사람은 무슨 뜻일까? ‘나’라는 실체와 ‘자아’, ‘자기’, ‘사람’은 각기 다른 독립적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의 실존적 대상을 다른 차원에서 부르는 이름일 뿐인가? 각기 다른 독립적 존재라면 또 다른 ‘나’인 ‘자아’와 ‘자기’와 ‘사람’은 내 안에 있는 건가? 혹은 밖에 있는 건가?

이런 질문은 감수성 예민한 고등학생 시절이나 「철학 개론」을 듣던 대학생 때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철학, 심리학, 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모여 진지한 고민을 거듭했다. 지난 9월 1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다. 이날 마음공감정신건강의학과 조철래 원장은 ‘건강한 자의식 – 생각, 감정, 기억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라는 제목으로 앞서 제기한 문제를 상세히 다뤘다.
 

사진_픽사베이


‘자아’는 ‘스스로 자(自)’ 자와 ‘나 아(我)’ 자가 합쳐진 단어다. ‘스스로 있는 나’ 혹은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나’라는 뜻이다. 철학적으로는 대상의 세계와 구별되는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서의 나를 의미하고,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가리킨다.

 

철학의 시작은 나에 주목하고, 나를 발견하며, 나를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건 이런 뜻이다. 고대 철학에서 만개한 이 같은 흐름은 중세 시대에 이르러 ‘신’이 ‘나’를 대신하면서 좌초한다. 그러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내가 전면에 등장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선언한 이후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자아를 ‘에고(ego)’라고 칭한다. 에고란 사고, 감정, 의지 등 여러 작용의 주관자를 의미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고, 감정, 의지와 달리 에고는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정의하는 자아에는 세 부분이 있다.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인식, 원시적인 무의식충동, 도덕적 기준을 측정하는 초자아가 그것이다.

학문 분야와 학설에 따라 자아를 규정하고 설명하는 내용이 다르다. 그만큼 자아를 명확히 밝혀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분명한 것은 자아란 어떤 특정한 형태로 나의 내부나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며, 뇌 기능의 일부로만 봐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 행동의 기본적 기능들을 주관하고 조정하며 통일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다. 이와 같은 자아의 모든 기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 정도가 자아를 일정 부분 실현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아실현이란 멀고 먼 길일 수밖에 없다.

‘자기(自己)’란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영향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인격의 핵심이다. 자아가 정신적 면을 강조하는 개념이라면 자기는 신체와 정신을 포함한 인격 전체를 가리킨다. 외부의 대상들과 구별해서 주관적으로 파악한 ‘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든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기계발에 충실하다고 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목적을 추구하며 종교 생활에 심취하거나 예술적 취미에 몰입하면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것 같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대학이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알리고자 작성하는 글을 자기소개서라고 한다. 자아소개서라고 하지 않는다. 누구나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겉으로 드러난 자신을 특징짓는 요소들의 총합이 자기라는 말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내 전체 인격이 바로 자기다.

 

“최근 뇌과학 연구 등을 통해 관찰했을 때 독립적인 심리 내적 구조물로써의 자아는 없다는 것이 대세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반추하면서 내 속에 확고부동한 자아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뿐입니다. 자아가 사회적 기원이라는 관점을 가질 때 역설적으로 자아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조철래 원장의 설명이다. 언어를 통해 자의식이 형성되면서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는 사회적 인식 또는 학습의 소산이며, 내 안에 실재하는 자아는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의식(self-consciousness, 自意識)이란 모든 외적인 관계를 벗어나 직접적인 성찰을 통해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아는 일이다.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의식하는 자의식은 자각(自覺)이고, 비활동적으로 지나치게 격앙되면 고독(孤獨)과 결부된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건 긍정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자신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존감 넘치게 행동한다는 것과 맥락이 닿는다. 부정적인 차원에서 남의 시선이나 심리를 과다하게 느낌으로써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이나 패턴을 보이는 경우는 자의식 과잉에 속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판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히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나아가 인위적으로 꾸며진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부정적으로 통제하고 관찰하게 되어 심해지면 대인기피증, 우울증, 조현병 등 심리적 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조 원장은 생각, 감정, 기억 세 가지 차원에서 건강한 자의식을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결론적으로 건강한 자의식이란 자신의 과거 기억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며,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깊이 있는 생각과 바른 언어 사용으로 비언어적 지식을 언어적 지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확립시켜 나갈 수 있다.

 

자아를 실현하거나 성찰하는 일, 자기를 계발하거나 자기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일, 건강한 자의식을 확립하는 일,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일, 모두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자기를 사랑할 때만이 자신에게 충실하고 진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나 스스로 노 저어가야 할 망망대해 아닌가? 이 세상에 ‘셀프’ 아닌 인생이 어디 있으랴.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방탄소년단의 ‘Answer : Love Myself’라는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서 사람 구실 할 때까지 나를 더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
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 버리기엔
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