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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부모님께 이해받고 싶은 마음, 제 욕심인가요?

기사승인 2020.11.02  09: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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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연세 채움 정신과, 윤혜진 전문의] 

 

사연) 

초등학생 때 자고 있었는데 친척 어른한테 성추행을 당했어요. 제 이름을 또렷이 부르면서 제 가슴을 만졌는데 어린 맘에 너무 놀라 엄마한테 말했지만, 엄마는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엄마도 아빠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잠결에 들었고요. 그러나 이 사건이 갈등을 불러왔던 것 같아요. 점차 친척들이 전부 싫어지고 우리 집이 큰집이라 우리 집에 명절 때마다 오곤 하는데 그것도 싫어졌어요. 아빠는 유교적 사상을 가지셨고 남들의 시선에 민감하신 분이라 싹싹하게 행동하지 않고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분노하시며 저를 인격적으로 무시하시곤 했어요. 결국엔 본인의 체면이 중요하셨던 거겠죠. 엄마는 아빠의 말을 따르시는 주의라 아빠와 저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간 후에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저한테 일단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진저리날 정도로 하시고요.

청소년기에도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직장 생활 후에 운 좋게 유학 중인데 사실은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고 유학을 가고 싶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 주변에는 유학한 사례도 없고 시골분들이라 제가 잘못될 줄 아셨던 것 같아요. 농약을 놓고 자퇴할 거면 그냥 여기서 죽자고 하셨었는데 왜 저렇게까지 할까 하면서 억지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유학을 왔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바라는 삶을 이제야 찾은 듯한 느낌. 그렇지만 상처 받지 않고 일찍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등학교 때 결국에 저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은 전혀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빠가 하는 말씀이 "그게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술에 취하면 남자는 그럴 수 있다."였어요. 세상 어떤 부모가 그런 말을 할까. 결국엔 자식인 저보다 친적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못하는 그 모습. 엄마도 결국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그냥 넘어가길 바라는 그 모습.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그 이후에도 제가 명절 때 나서서 돕지 않으면 모든 게 제 잘못인 것처럼 하셨고요. 본인이 뭐가 되냐며.. 제 성격이 안 좋아서 그런 것처럼 저를 깎아내리셨고요. 그 후엔 저 사건에 대해 꺼내질 않았어요.

 

그러다가 나이 서른에 유학에 오는데 굳이 굳이 친척들한테 간다고 말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싫다고 하니 문자라도 남기라고. 그 문제 때문에 결국엔 마지막까지 말도 안 하고 그냥 왔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서 아빠한테 장문으로 그 사건이 제게 너무 큰 상처라고 나도 내 자식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부모가 될까 봐 결혼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하니 그제야 미안하다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물론 부모님 모두 그 사건을 잊고 계셨고요. 저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어요. 잊으셨을 줄 알긴 알았지만 남 일도 아니고 본인 자식의 일인데 부모로서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하필 왜 제가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이 점점 늙으시는 모습이 보이고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후회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제 잘못이 하나 없음에도 참기도 하고 수그리는 일도 많았는데 정말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아빠는 원래가 고집이 세시고 엄마는 아빠 눈치를 보며 맞춰드리는 성향이라 저와 아빠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게 되면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굽히는 게 화가 날 지경이에요. 저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기억만 생각하면 저보다 친척 어른을 더 이해해주는 부모님이 더 밉고 그 외에도 저 사건에서 비롯된 부모님이 저를 이해해주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나이가 들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건 평생 응어리진 채로 살아야 할 것 같고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난해도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모님이었으면 더 행복했을 것만 같고 특히 아빠에 대한 감정은 애증이에요. 고집 세시고 사과할 줄도 모르시고 저를 이해 못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내 부모인 것이 싫었다가 서로 자주 안 보고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또 저도 맘이 약해지는 게 반복이네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혜진입니다.

어린이는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성적인 행동은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렵게 부모님께 이야기한 후에도 나의 두려움과 놀람, 슬픔, 분노 등의 감정에 대해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건을 축소시키거나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해주는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나의 보호자이고 나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부모님에 대해 실망스럽고 화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후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가해자와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도 정말 싫고 피하고 싶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부모님은 오히려 가족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화를 내시고 비난하면서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강요를 하셨어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서적인 학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에 대해 사과를 하라는 압박, 내가 원하는 대로 자퇴하면 부모님이 죽어 버리겠다고 하는 등의 협박 등 여러 상황에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강제로 억눌러야만 했던 상황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와 유학 가기 전 성추행 사건과 부모님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에 대해 표현을 하시긴 하셨지만 그동안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참아왔던 감정들에 비교하면 제대로 표현한 거라고 할 수도 없을 테지요.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이 밉고 화나고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부모님이 그래도 날 위해서 그러셨을 텐데, 이제 부모님도 늙어가는 처지인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의 감정을 충분히 풀어놓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우선 충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꼭 부모님께 대놓고 화를 내거나 따지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는 것에 대해서까지 억누르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죠. 나는 충분히 화가 나고 억울할만하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를 해주세요. 그리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을 표현해보세요. 속으로라도 부모님에게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하거나 따져보는 것, 일기를 쓰는 것, 믿을만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나아가서는 상담 치료를 받는 것 같은 방법이 있을 거예요.

부모님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 부모님이 실수도 많았고 단점이 있지만 당연히 장점도 있으시니까요. 미워만 하기에는 뭔가 찝찝하고 안쓰럽고, 그렇다고 미움을 억누르기에는 답답하고 억울하죠. 이런 감정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먼저 한참을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다 보면 억지로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자연히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길 거예요.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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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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