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풀어보는 정신건강 (1)

실생활 속 정신건강 문제를 전문의 대화로 알기 쉽게 풀이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이 묻고, 대한명상의학회 이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Q: 마음이 울적하거나 의욕이 떨어지면 혹시 우울증이나 ADHD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나요?

A: 그럴 때 우리가 흔히 우울증 아니면 ADHD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개 의욕이 없고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우울증이랑 비슷한 증상이고,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며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계속 이루지 못하는 것은 ADHD로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차이점은 사회생활은 멀쩡히 하고 겉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본인은 굉장히 괴롭다는 겁니다.

이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다는 거죠. 잘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나를 자꾸 몰아붙이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해버려 전혀 의욕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거예요. 왜 무기력이 계속되면서 회복되지 않느냐면, 이런 분들한테는 무기력 증상이 자신을 보호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과도하게 걸었을 때 무릎에 통증이 있으면 멈추고 쉬지만, 통증이 없으면 이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걷다가 망가지게 되는 거죠. 사실 통증이라는 건 원인과 결과가 하나이기에 내가 아프면 어제 무리했기 때문이고, 쉬면 좋아지는 게 명백합니다. 그렇지만 무기력증은 원인이 꼭 그렇게 정신적인 소모 때문에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기력증이 왔을 때 약간 자극적인 활동을 하면 회복되는 게 보이니까 하나로 연결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사진_픽셀

 

Q: 잘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크면 무리하게 되고 그 결과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는 건가요?

A: 무기력증의 원인 자체가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잘하려는 마음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일에서도 그렇고 공부에서도 그렇고 다 같이 나타나는데, 그냥 적당히 잘하려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잘하려고 하는 거죠. 다른 사람한테 헌신하고 희생하면서 잘하려다 보니까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피로감이 계속 쌓일 수밖에 없어요. 관계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죠. 지나치게 헌신적으로 하다 보니 상대방이 약간만 실망스러워도 금방 배신감이 들면서 속상하게 되죠. 무기력에 빠진 사람을 주변에서 볼 땐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계속 게으름만 피우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나 태도는 어떤 자극을 받으면 곧 돌아오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게으름을 피우던 사람이 갑자기 게임이나 자극적인 놀이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공부는 열심히 안 하면서 딴 길로만 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본인은 정말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되니까 못하는 거고 무기력해서 못하는 거예요. 무기력증을 치료하는 건 통상적인 치료하고 조금 달라요. 보통 치료를 하게 되면 어떤 목표를 정하고 내가 의지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서 점점 좋아지는 단계로 접어드는데, 무기력증은 내가 너무 나를 압박하고 몰아붙인 결과이기 때문에 푹 쉬어야 합니다. 쉬는 게 정답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몰아붙이는 게 반복되다 보면 계속 악순환이 이루어지면서 무기력증이 심각해지는 겁니다. 

 

Q: 하지만 현대인들이 일상을 멈추고 편안한 상태에서 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워낙 바쁘게 살아가거든요. 멈춤과 쉼은 정말 무기력을 의욕으로 바꿔줄까요?

A: 아주 엄한 엄마가 아이를 쉬지도 못하게 하고 놀지도 못하게 하면서 끊임없이 공부만 시킨다면, 아이는 견디다 못해 스스로 묻게 될 겁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이걸 하는 거지?’ 자기도 모를 거예요. 목적도 없고 동기도 없이 소진된 거니까요. 그리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겠죠. 더 심하면 자기를 힘들게 몰아붙이는 엄마와 싸울 겁니다. 엄마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겠죠. “나는 모르겠으니까 네가 그냥 알아서 해라.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아이도 똑같을 겁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제발.” 이런 게 우리가 흔히 보는 경우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똑같아요.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쉴 때는 쉬고 놀 때는 놀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내 욕심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기력 상태가 찾아오는 겁니다. 갑자기 무기력 상태에 빠지면 마음이 초조해지니까 더욱 거세게 자신을 몰아붙이게 되고, 이로 인해 무기력은 점점 심각해집니다. 앞에 예로 든 엄마 같은 경우 아이를 혼내는 거죠.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엄마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죠.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를 푹 쉬게 하고 놀게 하고 적절히 자극을 주면서 필요한 것을 갖춰주면, 아이는 알아서 열심히 공부해요. 왜냐면 나한테 잘해주는 엄마에게 나도 뭔가 인정받고 잘해주고 싶거든요. 내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고 보살피게 되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과도하게 틀어막거나 억지로 끌고 가게 되면 평상심을 유지하려는 압박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무기력으로 방어하게 되는 겁니다.

이 원리를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무조건 몰아붙여서 돌파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기력이라는 신호가 왔을 때 잠깐 쉬라는 거구나 하면서 그냥 푹 쉬고 자신을 보살펴주면 의욕은 곧바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의욕을 가지고 다시 일하는 게 확실히 더 효율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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