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20대 여성입니다. 할 일이 여러 가지면 한두 가지는 꼭 까먹는 일이 잦습니다. 예를 들면 요리에 쓸 물을 끓이고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물 끓인 것을 까먹습니다. 커피를 타 달라는 심부름을 받아서 물을 끓이면 커피 챙기는 걸 깜박해서, 물을 왜 끓였는지 모른 채 꺼두었다가 누가 알려주고서야 생각나곤 합니다. 남이 부탁한 일이든, 내가 직접 계획한 일이든, 일이 쉽든 어렵든 중요하든 아니든, 내가 바쁠 때든 한가할 때든 할 일이 여러 가지면 한 가지 이상을 온전히 기억하기 어려워 실수가 잦습니다.

저는 다양한 생각이 불시에 떠오르는 일이 잦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과제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메모하다가 게임을 하다가 해서 컴퓨터에도 창을 여러 개 띄워가며 합니다. 덕에 창의적이란 말도 많이 듣지만 그만큼 산만하고 엉뚱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멍 때리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눈에 띄게 멍 때리진 않지만 여러 가지 지시를 한 번에 들으면 머릿속에서 렉이 걸리는 느낌이라 자꾸 되묻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이 아닌 한, 집중하기로 한 일은 남들보다 집중해서 충실하게 하는지라 만성적으로 집중이 안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을 해야 할 때 기억이 안 날 뿐이지,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건 문제가 크게 없습니다. 오히려 오래전 일을 남들보다 구체적으로 기억하기도 하고요.

수시로 메모하고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지만, 메모하다가 뭘 쓸지 잊거나 잘못 메모해서 실수하는 일이 잦습니다. 저번엔 여러 과목 시험 날짜를 잘못 메모해놓고 몇 번이고 그 날짜로 확인하는 바람에 응시를 못해서 학점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멀리 놀러 갔다가 지갑이랑 짐을 도심 한복판에 두고 갈 뻔한 적도 있고요.

한 가지 이상 집중을 못하는 게 산만해서일까요, 기억력의 문제일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깜빡하고 산만한 경우가 있지만, 질문자 분은 조금 다르신 듯합니다. 그리고 집중을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해 보신 듯하네요.

 

먼저 집중력과 기억력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 합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은 서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개념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집중력에는 문제를 느끼시지만 기억하는 능력 자체는 남들보다 잘하시는 것도 가능한 일이죠.

집중력은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주변에 다른 자극이 있어도, 그런 자극들을 무시하고 원하는 업무를 지속하는 거죠. 집중력이 약하다는 것은 크게는 원하는 업무에만 몰입을 못하는 것, 또는 다른 자극들에 쉽게 몰입이 된다는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란 기억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유지하고, 다시 꺼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세 가지 모두를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억력이 좋다고 말하고,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기억력이 나쁘다고 표현하죠.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기억을 해야 하는 것에 몰입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기억을 입력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으로 됩니다. 또 기억을 다시 꺼낼 때도 어떤 기억을 꺼내야 하는지에 몰입하지 못하기에 잘 꺼내지 못하게 되죠.

질문자 분은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잘 되고 있으니 입력과 출력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이 과정은 방금 설명드린 것처럼 집중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집중력에 문제가 있고, 그 문제 때문에 기억력도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심한 불안이나 우울 상태에서는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며,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의식이 완전히 각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집중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질문자 분은 어린 시절부터 멍한 일들이 잦았고, 현재도 다양한 생각이 동시에 들거나, 깜빡하는 모습을 보이시네요. 검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어린 시절 ADHD가 있었고, 현재까지 그 증상이 이어지는 성인 ADHD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ADHD라고 하면 활동량이 많고 실수를 많이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만 생각하시지만, 활동 없이 멍한 시간이 많고 집중을 하지 못하는 형태의 ADHD도 존재합니다. 활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ADHD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 성인이 돼서 스스로 집중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게 됩니다. 다행히 성인 ADHD는 비교적 약물 치료 반응이 좋아, 약을 먹은 당일 바로 집중력의 변화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현재 알려주신 내용만으로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 무엇인지, 질병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셔서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보시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발견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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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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