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부모의 심리학> (9)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얼마 전 한 신문 기사를 읽다가 놀란 적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소설가가 자신이 치매인 것 같다는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나이로 치면 그럴 수도 있는 나이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에 저런 사람도 치매에 걸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그는 글을 쓰다가 갑자기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한창 젊을 때는 글을 쓰려 들면 마치 창고에서 꺼내 쓰듯 자신도 모르게 좋은 단어와 문장과 자료들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이제는 뻔히 아는 단어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고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치매(dementia)란 특정 질환을 가리키는 병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뇌 손상으로 기억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인지기능 장애가 생김으로써 예전처럼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포괄적인 용어다. 기억력과 관련이 있는 까닭에 일반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나 학자에게 나타날 경우, 더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염려하는 게 바로 치매다. 다른 질병과 달리 완치가 어려운 데다 수술이나 약물치료 등이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치매는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에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소중했던 기억이나 추억을 모두 상실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증상이 심할 경우 배우자나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치매를 걱정하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의외로 잘못 알려진 게 많은 것 또한 치매다. 오랫동안 치매에 관해 잘못 알려진 세 가지 오해가 있다. 그게 뭘까?

 

사진_픽사베이

 

노인들만 걸리는 병이다

첫 번째 오해는 치매는 노인들만 걸리는 병이라는 생각이다. 치매는 노인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60세 이전에도 얼마든지 치매가 발견될 수 있다. 이를 조기 발병 치매라고 한다. 물론 노인들보다 발령률이 높은 건 아니지만, 젊다고 해서 마냥 안전지대는 아니다.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일이 있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당시 주인공 여자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당당하게 살아가던 이 여성은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분노한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고, 회사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난 재원이었으나 이 모든 걸 한순간에 잃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만, 이들 곁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한국인의 치매 발병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최소 1.3배 이상 높고, 알츠하이머가 발병하는 나이가 평균 2년 이상 빠르다고 한다. 젊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40~50대의 경우, 치매가 발병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 치매 진단 또는 예방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치매 초기 증상임에도 단순한 건망증으로 치부해 버리기 쉽다.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더라도 치매의 가족력이 있거나 여러 가지 인지기능 저하가 의심되면 반드시 치매 전문 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MRI 검사, 인지기능검사, 유전자 검사를 포함한 정밀한 치매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기억력 손상이 곧 치매다

두 번째 오해는 기억력 손상이 곧 치매라는 것이다. 치매는 기억 손상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단지 기억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성숙한 뇌가 후천적인 외상이나 질병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손상 또는 파괴되어 전반적인 지능, 학습, 언어 등의 인지기능과 정신기능이 떨어지는 복합적인 증상이다. 계산능력이 저하되고, 사고의 폭과 깊이가 얇아지며, 계속해서 같은 말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보속증(perseveration)이 나타난다.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아무리 화제를 바꾸더라도 앞서 했던 말이나 행동을 지속하는 현상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거나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기도 하다.

치매 환자의 기능 수준을 평가하는 방법으로는 미국 뉴욕대 의대 라이스버그 교수 등이 제안한 전반적퇴화척도(GDS, Global Deterioration Scale)가 있다. 환자들은 일곱 단계 중 하나로 분류된다. 1단계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사람이다. 2단계는 지적 기능 상실에 대한 주관적인 불편감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3단계는 문제없이 잘 수행했던 복잡한 과제에서 지적 손상, 특히 기억력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4단계는 비교적 복잡한 일상생활의 과제들, 예를 들면 재정 관리를 처리하는 것까지 손상이 확장된 사람이다. 5단계는 적합한 옷을 고르는 데 수행 장애가 나타나는 사람이다. 6단계는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고, 개인위생 관리를 할 수 없게 된 사람이다. 7단계는 운동 및 언어 기술마저도 소실된 사람이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이다

세 번째 오해는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같은 병이라는 생각이다. 알츠하이머가 치매 유형 중 가장 흔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유형의 치매들도 있다. 치매의 원인이 되는 질환은 최소 50개 이상이다. 이 중 3대 원인 질환이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그리고 루이체 치매다.

1907년 최초로 보고되면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흔히 발생하는 치매의 원인으로, 전체 원인의 약 50%를 차지하고, 뇌졸중 후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는 약 10~15%에 달하며,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는 약 15%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대뇌 피질 세포의 점진적 퇴행성 변화로 인해 기억력과 언어 기능에 장애가 생기고, 판단력과 방향 감각이 상실되며, 성격도 변화되어 자기 자신을 돌볼 능력이 없어지는 병이다. 진행 과정에서 인지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성격 변화, 초조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 장애 등의 정신행동 증상이 흔히 동반되며, 말기에 이르면 경직, 보행 이상 등의 신경학적 장애 또는 대소변 실금, 감염, 욕창 등 신체적인 합병증까지 나타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MRI 검사했을 때 대부분 뇌 위축 소견이 발견된다.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해서 검사했지만, 다른 치매의 원인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어 반드시 한 번의 검사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20년 뒤 인류를 위협할 질병 가운데 하나로 치매를 꼽았다고 한다. 전 세계에 걸쳐 치매 발병률은 해가 갈수록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한국이 가장 빠르다. 치매의 무서운 점은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치매는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가 점점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전반적인 인지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건 아직 마땅한 치료 방법이나 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젊었을 때부터 치매 예방을 위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존엄성과 정체성은 내가 지킬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도, 나를 자신들보다 더 아끼는 부모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도 내 존엄성과 정체성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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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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