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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날 사랑한다면 제발 이러지 말아! - 의심이라는 이름의 질병

기사승인 2020.11.16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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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6)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낮에 텔레비전 종합 편성 채널을 돌리다 보면 연예인 패널들이 나와 다양한 화젯거리를 놓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대화 주제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불륜’이다. 주로 여자들이 남자들을 의심해서 갑론을박하지만,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새벽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만취해 들어온 남편 와이셔츠에 립스틱이 묻어 있었어요.”
“밤중에 낯선 전화가 걸려오면 남편은 꼭 베란다에 나가서 몰래 전화를 받더라고요.”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아내가 남편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은 차고도 넘친다.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는 곳도 있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사람을 시켜 뒤를 쫓는 아내, 두 집 살림하다가 들켜서 이혼당하는 남편, 바람난 남자를 둘러싸고 시댁과 친정 식구들까지 엉켜 난장판이 돼 버린 집안 등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의 소재는 끝이 없을 정도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몇몇 종합 편성 채널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공중파 텔레비전 채널을 비롯해 소설,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 장르에서 예외 없이 다루어지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와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듯하면서도 개연성 높은 전개가 공감과 이해를 얻는 요인이 크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는 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나만 소유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의심이라는 이름의 질병은 여기서부터 싹튼다.

 

사진_픽셀

 

일반적으로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을 의처증(疑妻症), 아내가 남편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을 의부증(疑夫症)이라고 한다. 사랑과 믿음을 전제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 상대방의 사랑과 믿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조(貞操)를 의심하는 망상성 장애의 하나가 부정망상(不貞妄想, delusion of infidelity)이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모두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외도를 하거나 불륜을 저지른 경우는 예외다. 배우자의 태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결혼의 전제 조건인 사랑과 믿음을 현저히 훼손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상대방을 의심하고 추궁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부정망상이 아니다.

부정망상은 불륜을 저지르거나 외도를 한 일이 전혀 없는 배우자를 병적으로 과도하게 의심함으로써 상대방을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한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설령 배우자가 의심스러운 짓을 하거나 누구라도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면 의심을 거두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부정망상 환자들은 아무리 분명한 증거를 들이대도 의심의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열 번이나 전화했는데? 누구랑 그리 즐겁게 통화한 거야?”
“휴대전화에 왜 잠금장치를 해놨어? 내가 보면 안 되는 내용이 얼마나 많길래 그래?”
“오늘 귀가 시간이 왜 30분이나 늦었어? 어디 들렀다 온 거야? 1분 단위로 말해 봐.”

대개 이런 식으로 쉴 새 없이 배우자를 몰아붙인다. 잠깐이라도 연락이 안 될 경우, 출장이나 외출 등으로 떨어져 있게 될 경우, 약속된 시간에 늦을 경우,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무신경하다고 느낄 경우, 배우자를 의심하고 행적 하나하나를 캐내려 한다. 상대방이 해명하면 할수록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 재생산된다. 별것 아닌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배우자를 계속 구속하고 감시하며 의심하는 이런 증상이 부정망상이다.

 

부정망상을 다른 말로 오셀로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아프리카 무어 출신 흑인인 주인공 오셀로는 베니스의 장군이 되어 원로인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데스데모나와 결혼한다. 그러나 오셀로에게 부관으로 선택받지 못한 부하 이야고는 앙심을 품고, 오셀로의 신임을 받던 다른 부하 캐시오가 데스데모나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보고한다. 이에 아내를 의심하던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눌러 죽인다. 나중에 아내의 결백을 알게 된 오셀로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셀로가 불륜의 증거로 믿은 건 손수건 한 장뿐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해 파멸에 이르는 한 남자의 비극이다.

이야고는 자신의 의도대로 아내에 대한 의심이 불타오르는 오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 주인이시여,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입니다.”

 

지나친 욕망과 집착은 질투를 부르고, 도를 넘는 질투는 의심이라는 벌판에 불을 지른다.

부정망상 환자들은 배우자의 부정을 확신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증거를 찾으려 한다. 배우자의 차에 도청장치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하고, 틈틈이 배우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배우자의 가방과 핸드백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두기도 한다. 흥신소를 이용해 외도와 불륜 현장을 촬영하는 결정적 한 방을 노리기도 한다.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망상으로 이상 행동을 하는 수도 있다.

통계상 전체 인구의 1~4% 정도를 부정망상 환자로 파악하는데, 30대에서 50대까지가 주요 발병 연령대다. 주로 편집증적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배우자에 대해 열등감이 있을 때, 마음속에서 외도나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도 이런 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부분에서는 거의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에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나아질 수가 없다. 현대 사회가 점점 더 개인주의, 익명성, 복잡성이 강화되고, 성 윤리나 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화하면서 부정망상 환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부정망상은 쉽게 치료하기가 어렵다. 환자와 배우자 모두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배우자는 환자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진지하게 상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환자와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것 자체가 난관이다. 그런 다음 충분한 상담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마음에 병이 들었음을 인지하게 되면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병행하게 된다.

둘째, 배우자는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자꾸 변명을 늘어놓거나 증거를 대면서 해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환자를 부정망상 속으로 더 깊숙이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변명과 해명으로 환자를 이해시킬 수 없다. 부정망상은 이성적인 설명으로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만이 환자를 질병에서 구할 수 있다.

셋째, 가족 중에 부정망상 환자가 있는 경우, 환자 혼자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배우자를 포함해서 가족 전체가 힘들고 괴롭다. 따라서 부부치료와 가족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

넷째, 환자의 배우자가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며 자책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사랑과 믿음을 더 많이 주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환자가 배우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배우자가 자책에 빠지면 환자의 치료가 더 어렵다.

다섯째, 환자의 자존감을 높이고, 부부가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배우자는 물론 가족 전체가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면서 일치시켜야 한다. 환자가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우리 가정이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 한 번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다시 활짝 여는 일을 절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관심과 사랑이 최고의 명약이다.

 

사랑은 상대를 구속하고 소유하는 게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부부 사이의 가정 폭력이나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 아닌 반인륜적 범죄일 뿐이다. 사랑은 믿음을 동반한다. 과도한 집착과 근거 없는 의심은 사랑을 무너뜨린다.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사랑과 믿음이라는 두 기둥이 흔들리면 누구도 그 집에서 살 수 없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은 끝없이 소유와 구속을 원하지만, 우리의 이성과 인격과 교양은 이를 제어한다. 제어되지 않는다면 이성과 인격과 교양이 고장 난 것이다. 정말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교를 떠나 애송되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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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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