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저는 요즘 들어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죽을 만큼 힘들고,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생각까지는 아닌데, 삶의 의미를 못 찾겠고. 삶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행복한 사람이에요. 가족들은 사이가 좋고 집안도 유복한 편입니다. 절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도 있고 친한 친구들도 많아요. 어딜 가도 사랑받고, 행복하게 잘 지내왔어요.

전공을 바꿔 대학원을 진학했고, 최근 졸업했는데 취업을 아직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주변 선배들이나 지도 교수님이나 코로나로 인해 시기가 좋지 않으니 조금 기다려보라는데, 서류에서부터 거듭 탈락하니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게 되고 사실 겁부터 납니다. 아직 잘 모르는 상태에서 취업을 하려고 하니 안 된다는 생각만 들고요. 괜히 전공을 바꿨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자격증을 보완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그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요. 학창 시절에는 공부도 잘했었는데 지금은 20분을 채 집중하지 못합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는 것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아요. 제가 왜 힘든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 죽음에 대해서 강하게 느낀 건 몇 달 전 면접을 보고 나서였어요. 나름 자신 있었고, 잘 볼 거라고 생각하고 간 면접이었는데, 정말 무례하고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받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면접을 망쳐버렸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서러울 건 아니었는데 면접을 보고 나서 한 시간 가량을 거리에서 울었어요. 허탈함과 무력감이 컸던 것 같아요. 무례한 질문에는 좀 더 당차게 대답할 걸, 그런 후회도 가득 들었고요.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까지 뒤척거렸는데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어요.

결국 새벽 내내 울다가 뛰어내리진 않았는데, 제가 죽으면 슬퍼할 부모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러지 못했어요. ‘멘탈이 강했다면 안 그랬을 텐데’라고 생각은 하는데 잘 되지는 않아요. 사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감당하기가 버거워요.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커왔나 하고 자책도 많이 하곤 합니다.

 

저는 사실 누린 만큼 많이 누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들도 많지만,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더 살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좀비가 나오는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저렇게까지 살려고 하는 거지, 그냥 남들과 같이 얼른 좀비에 물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을 하거든요. 남들에 비해 겁이 많은 건지, 아니면 포기가 빠른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어릴 때부터 항상 죽음을 준비해왔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때 포장 김에 있던 방부제를 모았었어요. 그걸 먹으면 죽는단 얘기를 들어서 언젠가 죽을 때를 위해 쓰기 위해서 모았어요. 나중에 ‘내가 이런 걸 왜 모았지’ 하면서 버렸지만요. 그렇다고 초등학생 때 힘든 일이 있던 건 아니에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풍족한 집에서 자라왔어요. 그런데도 제가 왜 그랬나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우울증일까요? 아니면 그냥 지금 의지가 약해진 것뿐일까요?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제가 밝고,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가끔은 저를 그런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도 요즘엔 그냥 힘들고, 무기력하고, 왜 더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에요. 취업이라도 해결된다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더 막막해요.

차마 부모님께는 털어놓을 수가 없어요. 두 분을 걱정시킬 수도 없고, 이런 제 상태를 아시면 실망하실 것 같기도 해서요. 남자 친구에겐 얘기했더니, 저처럼 행복한 사람은 우울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우울하게 여기기 때문에 우울해진다고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래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서 마음을 조금만 강하게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겨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홍대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사람들은 서로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며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지만,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자기의 힘든 일을 설명하면 '나에게 그 일이 생겼을 때 어떤 감정이 들까'라고 가정 또는 상상을 해보고 저 사람이 느낄 만한 감정을 추정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기에도 남부럽지 않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은 우울해서 매일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여러 어려운 일들이 많은데도 잘 극복하고 하루하루를 영위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객관적인 지표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결국 타인이 얼마나 힘든지를 100%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써주신 글의 제목과 내용에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의 내용을 보면 지금 그다지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성장과정은 행복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는 '남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부족한 면이 없기 때문에 내가 행복해야 한다'라고 스스로 생각을 강요하고 계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죽고 싶은 생각을 가끔 한다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은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고, 너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몇 번쯤은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00% 이성적인 상태에서 몇 년간을 고민한 후에 사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타인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서 발생하는 자살사고, 자살시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고, 대부분이 충동적입니다. 지금 느끼고 계신 죽음에 대한 생각도 취업 같은 스트레스 요인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 다시 생각해본다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강한 충동이 들어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울증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될 수 있고,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증에 준하는 증상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요인이 바탕이 되어 발생하는 병입니다. 요즘은 스트레스 요인들이 많아서 스트레스로 인해 심해지는 우울증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전형적인 우울증은 특별한 스트레스 요인 없이도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도, 삶이 허무하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하던 일이나 공부를 더 이상 못하게 되는 것이 우울증의 일반적인 그림입니다.

 

우울증이 단순히 본인의 노력으로 좋아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본인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 힘으로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힘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감정이 지속된다면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가까운 병원을 방문해서 평가를 받아 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지, 받는다면 어떤 형태의 치료가 나에게 적합한지는 그 이후에 결정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디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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