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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의지하게 되는 심리

기사승인 2020.11.20  04: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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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선의 <부모의 심리학> (10)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아이들이 어릴 때는 빨리 자라서 학교도 가고, 군대도 가고, 결혼도 하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아직 어리기에 실제 그렇게 되려면 멀었다는 안도감에서 그런 기대감이 싹튼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쑥쑥 자라 중고등학생이 되어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부모 말을 안 듣거나 우습게 여기게 되면 애를 태우며 속을 끓인다. 부모들이 자식이었던 시절, 자신들도 부모 말 안 듣고 반항하며 자랐으면서도 내 자식이 그러면 참기 어렵다.

부모로서 처음으로 큰 상실감을 맛보는 건 장성한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다. 머리를 짧게 깎고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무겁고 쓰리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아버지는 애써 쓴웃음을 짓지만, 대부분 어머니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두 번째로 찾아오는 큰 상실감은 자녀들이 결혼할 때다. 이제는 정말 내 품을 떠나는구나, 앞으로는 내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선택한 짝의 배우자로서 살아가겠지,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해진다. 자녀들이 날아간 둥지엔 결국 부부만 남는다.

 

인생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누군가의 의존을 받아주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돌보면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면 누군가에 의해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의존과 돌봄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인생의 수레바퀴와 같다.

정신분석과 의료인류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임상심리학자 도하타 가이토 박사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쓴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진정으로 의존할 때 자신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저녁밥이 있다는 것에 일일이 감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해주는 일에 아이가 일일이 감사를 전한다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가 제대로 의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존 노동은 당연한 일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제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받는 이가 자신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의 돌봄을 받으며 자라는 것,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노력과 노동이 동반되지만,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진정한 의존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과 같다면, 반대로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것도 그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통약자는 자리에 앉음으로써 양보한 이의 기운을 북돋웠고, 배우는 친구는 공부를 가르치는 친구가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왔다.”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계가 바로 부모와 자식 관계다. 어떠한 대가나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진_픽셀

 

그러나 정말 그럴까?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가 어린 자녀를 돌보는 상황이라면 이 같은 관계 설명은 대부분 맞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취업난이 심각해 3포 세대, 5포 세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는 장성한 자녀와 연로한 부모 사이에서도 이 같은 관계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 즉 연로한 부모를 장성한 자녀가 돌보고, 장성한 자녀에게 연로한 부모가 의존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설명이 타당할까?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헌신은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이지만,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과 헌신은 본능적이지도 않고 무조건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청춘 기록’에서는 한 중산층 가정 구성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젊었을 때 아들에게 잘해준 게 없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어 아들에게 얹혀산다. 눈칫밥을 먹어야 하기에 발언권도 없다. 할아버지에게는 손자가 둘이다. 큰손자는 공부를 잘해 은행에 다니며 돈을 벌기에 발언권이 세다. 작은손자는 얼굴만 잘생겼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무능력자라서 구박만 받는다. 집안의 중심은 자수성가한 아버지다. 여전히 일하며 돈을 벌기에 틈만 나면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고 작은아들을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대역전극이 펼쳐진다. 할아버지가 모델이 되어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작은손자 역시 대스타가 되어 연예계를 주름잡는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몸에 탈이 나 일할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번 돈을 아들인 가장에게 건네준다. 너를 위해 번 거라고 하면서. 작은손자 역시 자신이 번 돈으로 아버지인 가장의 빚을 갚아주고 집도 사준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무시하고 윽박지르던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돌봄을 받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짐을 느낀다. 비로소 그는 생각한다. 이것이 가족이구나, 이게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구나, 하고 말이다. 의존과 돌봄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존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의지하게 되는 심리 때문에 갈등한다.

 

나이 들어 은퇴하고 경제력을 상실한 채 점점 몸까지 불편해지기 시작할 무렵, 부모가 갖는 심리 상태가 이런 것이다. 젊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자식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부모든, 마음은 간절하나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부모든 큰 차이가 없다.

‘저희만 잘살면 됐지 뭘…… 나는 자식한테 절대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식들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전화를 걸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다가 겨우 전화를 걸고는 수화기 너머 자식 목소리가 들려오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만 묻다가 전화를 끊는다.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입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하지만, 자식들은 부모 목소리만으로는 무슨 일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민감하나 자식은 부모에게 항상 둔감하다.

“나 아직 거뜬하다. 너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잘살 수 있어.”

모처럼 자식들과 한자리에 모일 때면 부모는 이렇게 호언장담한다. 자식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자식은 부모에게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간접화법으로 이야기한다. 말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야 한다. 자세한 번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 요즘 외롭고 힘들다. 너희들이 좀 더 자주 전화도 하고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읽어야 부모 말씀을 제대로 들은 것이다.

 

학식이 있든 없든, 출세했든 안 했든, 돈이 많든 적든, 나이 든 부모는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거나 몸이 편치 않은 부모의 경우는 자식들에 대한 의존 심리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아직 건강한 부모라 하더라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식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젊은 시절 어린 자녀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빛바랜 앨범처럼 진한 그리움이 되어 파도처럼 마음을 채운다. 노년을 지탱해주는 추억과 그리움의 상당 부분이 자녀들과 관련된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이런 부모 마음을 알까? 설령 안다 해도 자신들 또한 어린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늙은 부모 얼굴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

이것이 씁쓸하고도 슬픈 우리네 인생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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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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