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얼마 전 인터넷에는 한 젊은 남성이 비슷한 또래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여자에게 가해진 남자의 폭력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장소는 부산의 한 지하상가였다. 두 남녀가 실랑이하다 싸움이 벌어지면서 남자의 일방적 폭행이 이어졌다. 여자의 머리를 다섯 차례나 휴대전화로 가격한 남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자의 머리를 발로 찬 다음 자리를 떠났다. CCTV로 현장을 목격한 상가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한 뒤 여자에게 다가갔으나, 피해 여성은 신고를 취소해달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며칠 지나 당시 CCTV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갔고, 해당 사건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사람들의 공분이 들끓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연인 관계인 양측 모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결국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처벌이 가능한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가해 남성을 검찰에 넘겼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갖는 의문은 두 가지다. 연인 사이라면서 왜 저렇게 폭력이 난무할까 그리고 잔인한 폭행을 당한 여성이 왜 남성의 처벌을 원치 않는 걸까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데이트폭력의 특징과 한계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채 지속해서 자행되는 데이트폭력은 폭력 중에서도 아주 질이 좋지 않은 범죄다. 그렇지만 약자인 피해자는 강자인 가해자를 신고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선처를 호소하거나 합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게 피해자들이다. 가해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수사나 처벌이 진행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데이트폭력이 왜 빈번히 일어나는지 근본 원인을 알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남녀관계는 종족 보존을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소유욕과 집착이 따른다. 기질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의 소유욕과 집착이 더 강하다. 이전에 버림 당하거나 상처 받은 경험이 있으면 이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

뇌과학적 판단으로는 사랑을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판단력의 부재가 큰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 비판과 논리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동이 둔해진다. 판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당한 폭력의 경험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이 경험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이나 편견으로 작용한다.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리라 다짐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말썽을 피웠을 때 손찌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사진_픽셀

 

가해자들에게 왜 사랑하는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느냐고 물으면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때린 겁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때려야 할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는 법입니다.”

폭력이 마치 피해자의 잘못에 의한 것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한 일이라는 황당한 답변이다. 스스로 폭력을 사랑의 행위로 정당화하는 이들은 점점 폭력에 중독되는 성향을 보인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과도한 소유욕과 이로 인한 병적인 집착이 심각할수록 폭력의 양상도 잔인해지고 빈번해진다.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심리도 한몫한다. 상대방에게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오히려 연인을 난폭하게 지배하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크고,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욕구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사랑을 시험해보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에 자기 연인에게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해준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만큼 헌신적이다.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연인에게 모든 것을 맞추기에 자신의 자존감은 다 내팽개친 것처럼 보인다. 연인과 언제나 함께하고 싶고,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사람의 말과 행동 어디에도 폭력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것은 연인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내면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거짓 행동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위장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이를 사랑이라고 믿는다.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여성은 얻어맞으면서도 상대 남성이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이러는 거라고 착각한다. 순간적인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폭력에 익숙해진다. 데이트폭력을 당하면서도 헤어질 수 없는 이유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이 중 45%가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데이트폭력을 당하면서도 왜 결혼하는 것일까? 남녀의 대답이 비슷했다. 첫 번째 이유가 ‘결혼을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서’(남자 41.8%, 여자 41.2%)였고, 두 번째가 ‘상대방을 계속 사랑한다고 느껴서’(남자 34.7%, 여자 21.6%)였다.

가해자는 때리는 데 익숙해져 폭력을 사랑이라 믿기에 결혼하는 게 당연하고, 피해자는 맞는 일이 습관이 되어 폭력이 생활이라 믿기에 결혼을 받아들인다. 결혼하기 싫어도 상대방이 두려워 결혼하는 사례도 있다. 데이트폭력이 상당 부분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고, 가정폭력은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맨 처음 폭력이 시작되었을 때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언어폭력도 폭력이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이 폭력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둘째, 가해자와 공간적, 시간적, 심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셋째,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부모나 상사나 선배 등 믿을 만한 주변 사람이나 관계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받는 게 좋다. ‘112’나 여성 긴급 상담 전화 ‘1366’번으로 신고해도 된다.

넷째, 자신을 비난하면 안 된다. 내가 못나서, 내가 빌미를 줘서,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폭력이 일어난 게 아니다. 자신을 비난함으로써 폭력을 용인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다섯째, 폭력 직후가 아니면 확보하기 어려운 증거를 자세히 기록하고, 녹음이나 문자 등의 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이를 토대로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할 수도 있다.

 

폭력은 실수가 아니다. 버릇이다. 사랑은 더더욱 아니다.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피해자 쪽에서 즉시 연인 관계를 끝내는 것이 좋다. 이후 상대방이 스토킹하거나 괴롭힌다면 모든 법적 제도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 폭력은 관용과 순응이라는 먹이를 먹으면서 점점 공룡이 되어 가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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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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