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나?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시간에는 무수한 반복과 노력을 통해 자기 마음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봤다. 스스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 다루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과정의 반복만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더 좋아질 것이다. 만약 하루하루 조금씩 바뀌어 가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여정에 조금만 더 참여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시간에는 내 마음의 조금 더 깊은 곳까지 찾아가 보자.

마음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난 다음에는 또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나는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진 픽사베이

 

<나는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가?>이다.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다섯 번째 이유다.

 

자신의 앞으로 끼어든 차를 보고

왜 어떤 사람은 ‘큰일날 뻔 했잖아!’라는 생각을 하고

왜 어떤 사람은 ‘저 놈이 감히 나를 앞지르다니!’라는 생각을 하고

왜 어떤 사람은 ‘저 사람 굉장히 바쁜 일이 있나보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것일까?)

 

자신의 인사를 받지 않고 지나치는 지인을 보고

왜 어떤 사람은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에 화를 참지 못하고 쫒아가서 따지고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봤을까?’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왜 어떤 사람은 ‘나는 인사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종일 우울하게 지내고

왜 어떤 사람은 ‘날 못 봤겠지’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것일까?)

 

왜 같은 상황임에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까?

 

민호는 외모도 훌륭하고 능력도 뛰어난 남자이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민호를 꺼린다. 항상 오만하고, 같이 있으면 무시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호는 홀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민호의 세상엔 어머니가 없었다.
민호의 어머니는 민호가 어릴 때 아버지와 민호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민호의 세상엔 아버지만 있었던 것이다.
민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부족해서 민호의 어머니가 도망을 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호만은 잘난 남자로 키우고 싶었다.
민호의 아버지는 민호가 잘할 때만 아니 최고일 때만 민호에게 칭찬을 하고 관심을 가졌다.
민호의 아버지는 민호에게 필요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다.


민호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민호의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오직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만 중요하게 여겼다.
민호가 조금 나쁜 짓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호는 언제나 1등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쁜 짓을 할 때보다 1등을 놓쳤을 때가 더 문제였다.
자신을 그렇게 예뻐하던 선생님이 1등을 한 친구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처참함은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등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보며 항상 최고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생각 깊은 곳에는 거대한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민호의 앞으로 어떤 차가 끼어들었다. 민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너무 쉬운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민호는 ‘저 놈이 감히 나를 앞지르다니!’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앞지른 차를 추월하기 위해 경쟁했을 것이다.

 

이것은 민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1등이 아니면 쓸모없어’라는 ‘생각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민호는 ‘건방진 놈, 감히 내 인사를 무시했어? 두고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비단 예를 든 이 두 상황만이 아니다. 다른 여러 상황에서도 민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1등이 아니면 쓸모없어’라는 ‘생각의 뿌리’는 항상 민호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들은 이 뿌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이 ‘생각의 뿌리’를 핵심신념 또는 스키마라고 이야기한다. 스키마는 상황을 바라보는 사고의 기본적인 틀이다.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이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도록 만든다. 쉽게 말해서 ‘생각의 뿌리’=스키마는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색안경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객관적 세상은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이지만, 빨간색 색안경을 쓴 사람은 앞을 봐도 빨간색, 옆을 봐도 빨간색, 뒤를 봐도 빨간색 일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 세상을 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빨간색 색안경은 객관적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저마다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창틀이 있다. 사진 픽사베이

 

이러한 사고의 틀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나에 대한 개념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둘째, 나 이외의 주변에 대한 개념이다.
내가 타인과 주변 환경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셋째, 미래에 대한 개념이다.
내가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민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뿌리’(=사고의 틀=스키마)를 위와 같이 나누어 보자. 

민호는 ‘나는 1등을 해야지만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민호는 ‘1등외에 나머지 사람은 쓸모가 없어, 그저 1등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라는 타인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호는 ‘1등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나는 사랑받지 못 할거야’라는 미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의 뿌리’를 가진 민호가 자신을 앞질러 가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지내기에는 민호 자신도, 민호 주위 사람도 너무 힘들 것이다. 1등이라는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1등을 해야지만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외롭겠는가. 1등이 아니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이런 ‘생각의 뿌리’는 민호의 예에서 봤듯이 인생의 중요한 경험, 예를 들어 잊지 못할 사건이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타고난 유전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하지만 '생각의 뿌리’ 역시 바꿀 수 있다. 단지 지금까지 한 노력보다 조금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할 뿐이다.  잊지 말자. 생각이 바뀌면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것을.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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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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